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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Sep 11. 2018

귀를 쫓는 모험 - 메니에르 병

소금의 부재와 이뇨제의 복용은 나를 응급실로 내몰았다.


울고 싶지만 꾹꾹 속을 눌러 참아보았다. 슬프진 않지만 토해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귀가 아팠던 날들의 매일이 그랬었다.


앞의 글에 이어 이야기를 적자면, 병원에서 메니에르 판정을 받은 날, 나는 집에서 계속 울었으나 눈치 없이 생존을 요구하는 배가 허기짐을 알렸다. 병원에서 말한 데로 소금이 없이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 말인즉슨 간장도 사용할 수 없으며 고추장, 된장 같은 장류도 먹기가 어렵다. 나트륨 함량이 높은 과자, 이온음료, 그리고 짠 버터가 들어간 빵도 먹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한단 말인가?


무언가를 찾아 고민할 만큼의 기운조차 없던 나는 맨밥에 물을 말고 소금 간 없이 계란 하나를 구워 처음으로 소금 없는 단출한 식사를 먹었다. 그리고 단단한 방울토마토 3알을 약처럼 삼켰다. 입안이 맹맹했다. 토마토의 신맛이 평소보다 강했다. 평소 먹는 즐거움으로 힘겨운 날을 버틸 때가 많았는데 귀는 나에게서 큰 즐거움 하나를 삭제했다.

약 봉투를 를 꺼내 처방받은 알약과 이뇨제 한 컵을 마셨다. 온몸이 나른하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팔다리가 흐느적 풀어졌다. 몸에 힘이 없었다. 그리고 이내 삐빅 삐빅 경고음 같은 날카로운 이명이 일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삶 자체가 깜빡하고 간을 빠트린 나물처럼 맹맹하고 물러진 것 같았다. 몸엔 늘 힘이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말하고 싶은 욕구도, 생각하려는 뇌의 동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그저 전문 병원을 예약할 수 있는 월요일이 되길 오매불망 기다렸다. 평소엔 그렇게 싫어했던 월요일이 참으로 느릿느릿 돌아왔고, 월요일 아침 9시가 되자마자 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검사 예약을 했다.


병원에서 내가 받은 귀 검사는 아래와 같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약 1시간을 넘게 받았던 것 같다. 검사 비용도 몇십만 원으로 꽤 많이 나갔다. 대부분이 어두운 암실에서 진행됐고, 조금 무섭고, 낯설고, 이상했다. 마치 내가 화성이라도 가기 위해 검사를 받는 기분이었다.


기본 청력 검사

들리는 소리를 말로 전하기

눈동자의 흔들림을 확인하는 검사

의자에 앉아 뱅글뱅글 돌기

귀에 뜨겁고 차가운 바람을 집어넣어 반응 보기

눈을 가리고 머리를 흔드는 검사

내이 압력 검사


놀랍게도 이 모든 검사의 결과, 나는 매우 정상이었다. 애매한 기쁨과 당혹스러움을 얼굴에 고스란히 내비치는 나와 달리 의사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나에게 회전성 어지러움이 있냐고 물었다.

"아니요, 어지러움은 아니고... 현기증은 있어요."

"일단 전반적으로는 메니에르 같은데 이뇨제를 먹고, 소금을 끊고 경과를 지켜보죠. 술, 커피 모두 끊으시고 밀가루나 기름진 것도 줄이세요."

"검사 결과가 모두 정상인데도 제가 메니에르인가요?"

"드물게 회전성 어지러움 없는 메니에르도 있습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혈액순환 약을 먹으면서 상태를 조절해야 해요."


무언가 석연찮은 병원 방문, 권위적인 느낌마저 드는 노년의 의사, 유명하다는 이 병원 역시 나에게 3주 치의 이뇨제와 혈액순환제를 처방해주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석연찮들 내가 무슨 힘이 있을까. 전문가가 말했고, 나는 당장 귀의 먹먹함과 이명이 이토록 두려운데 무엇이든 시키는 건 다 해보아야 하지 않겠나.


나는 나트륨 배출에 좋다는 바나나를 한송이 사서 집으로 갔다. 그리곤 두부를 물에 담가 소금기를 뺐다. 그렇게 소금이 조금이라도 빠진 두부를 굽고, 밥과 간 없는 계란을 먹었다. 바나나 한 개를 먹었다. 입 안이 텁텁했다.

며칠 후 너무 기력이 없어 소금 간을 하지 않은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었다. 좋은 고기는 간이 없어도 맛있다던데 나는 진한 소금의 짠맛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이었나 보다. 바질과 로즈메리, 마늘을 잔뜩 넣으니 그나마 먹을만했다.

어느 날은 파스타가 너무 먹고 싶어서 직접 토마토를 조물조물 으게고 마늘과 바질, 오레노, 후추, 월계수 따위를 잔뜩 넣어 소스를 만들어 먹었다. 소금도 설탕도 없는 소스는 토마토 특유의 신맛과 단맛이 고스란히 느껴져 신선하긴 했으나 소금 간 없는 통밀면과 소스는 맛이 있다고 하긴 애매했다.


간을 하지 않은 미역국을 끓였더니 너무 맛이 없어서 조금 먹다 국을 버렸다.

그냥 멸치 다시물에 계란 하나를 풀어 간 없이 밥을 먹었다.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으로만 소스를 한 아보카도 샐러드를 자주 먹었다.

회사에선 점심을 사 먹지 못했다. 그저 감자나 고구마, 바나나 등을 먹거나 샐러드를 싸와서 먹었다.

피자, 햄버거는 커녕 빵도 먹지 못했다.

무염 버터를 사서 고기를 구울 때 넣어먹었다. 그나마 풍미가 살아 입맛을 돋워 줬다.

회사 회식 참석은 물론 할 수 없고, 간단한 외식 조차도 할 수 없었다.

하루에 2잔 이상 마시던 커피를 끊어야 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지 못했다.

밖이 추워 귀가 더욱 멍멍해져 늘 집에 있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늘 나트륨 함량을 보고 음식과 재료, 음료를 골랐다.

우유와 오렌지주스가 생각보다 나트륨 함량이 높아 놀랐다. 결국 좋아하던 우유와 오렌지주스를 끊고 밍밍한 맛의 아몬드 우유만 사서 마셨다.

족욕을 시작했다.


그렇게 4킬로의 몸무게가 한 달 만에 빠졌다.

원래 저혈압이었는데 더욱 심해졌다. 혈압이 최저 54. 최고 79가 나왔다.

혈소판 수치가 떨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위험 수준이던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으로 떨어졌다.

늘 현기증이 나고 몸이 추웠다.


얼핏 보기엔 다이어트 식단과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건 그냥 저염식의 삶이 아니었다. 이뇨제를 먹어 매일 몸에 얼마 남지도 않은 나트륨을 다 뽑아냈고 근육을 풀어내는 부작용 때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도 평균 이하였던 몸무게가 더 줄어드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나는 극심한 근육통에 울며 바닥을 기다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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