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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an 25. 2019

사랑의 기쁨과 슬픔 - 2

나는 추억이란 영화 속의 배우를 사랑해 꼴사납게 우는 관객

나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현실 자각 능력이 떨어지는 관객.

나는 추억이란 영화 속의 배우를 사랑해 스크린을 향해 허공에 손을 젓고 술 한 모금으로 메마른 마음을 채우고 꼴사납게 우는 관객.

남들은 해괴하다며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보겠지만 허공에 내미는 간절한 손은 닿지 않는 사랑을 쫓고 있네.

꼴사납게 끄윽 끄윽 눈물과 콧물을 삼키며 펑펑 울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들어오면 허둥지둥 누가 볼까 젖고 붉고 쓰라린 눈을 거친 옷깃으로 비벼내는 겁쟁이.

나는 영화관을 나서려다 그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모두가 떠나간 좌석에 홀로 앉아 스크린 속 어둠과 함께 사라진 추억을 홀로 곱씹는 어리석은 자.

오늘은 부디 이 곳에 모든 걸 두고 떠나리 맘을 먹지만, 바보 같고 모자라 금붕어보다 못한 나의 몸뚱이는 다음날 또다시 그런 결심 따위 기억하지 못하고 불 꺼진 영화관으로 향하는 관객.


기억은 오늘도 아름다운 영화 세트장 앞에서 추억을 어설프게 연기하는 배우.

지난 나의 과오를, 지난 너의 잔인함을, 질척임 속에 울며 두었던 나의 패착[敗着]을, 그런 나를 바라보며 네가 두었던 어리석은 대완착[大緩着]


나의 일말의 자존심이 추억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게 뒷좌석 어딘가 구석진 곳에 몸을 구겨 넣었으나, 끈끈이에 얽힌 생쥐 꼬리처럼 살이 에는 고통 속에서도 환각에 취해 이끌리듯 또다시 저 멀리 화면으로 손을 뻗는 관객.


과거란 타이틀 속 추억의 연기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멜로는 아니다.

아마도, 그 내용은, 언제나 그러하듯 나만 이야기하고, 나만 울고 나만 그리워하고 나만 아파하는 뻔한 신파극.

나만 행동하고 나만 들뜨고 나만 상처 받고 나만 화가 나고 나만 내가 미운 모노드라마.

"너는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은 했을까? 어느 날 문득문득 작은 얼룩처럼 이라도 나를 기억해줄까??"

스크린 속 배우가 되고 싶었던 나는 추억을 향해 모자란 사람처럼 질문한다.

나의 얼굴 위로 눈물이, 입술에는 미소가 걸리지만 나는 추억이 될 수 없고, 스크린에 클로즈업된 너란 추억의 깊고 짙고 새카만 눈동자에는 그토록 그리운 나의 추억이 아닌 홀로 남겨진 나만이 비친다.

짙은 눈동자 속 추억의 마음을 읽으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결국 나의 과잉된 마음만 오롯이 독대하며 홀로 울고 또 운다.


이제 나는 눈을 감고 떠올려 본다. 눈이 아닌 머리로. 오래전 날들을 선으로 그려보지 않고, 형태가 구분되지 않는 어떠한 공감각적 덩어리로 떠올려 본다.

우리 이별의 마지만 순간을.  

마지막을 예감했던 날.

추억이 아닌 진짜 이야기.


그날 나는 너에게 잘 보이려 수없이 눈물을 닦고 머리를 매만지고 입술을 덧칠하며 마지막엔 나의 웃는 고운 모습만을 기억하길 바라고 또 바랬다. 하지만 헤어짐의 택시 문이 닫히고 각자의 길을 반대로 떠나가는 순간 너에게 나는 내가 아무리 새겨두려 노력했던, 저녁을 먹기 전부터 연습해왔던 예쁜 모습이 아닌 빠르게 스쳐가고 눈앞에서 반대로 멀어지는 잔상으로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처음 눈을 떴을 때 이유 없이 눈물이 났어 너무나 많았던 우리의 약속은 지킬 수가 없나 봐.

아침은 아닌,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롤러코스터의 '너에게 보내는 노래'


잠이 오지 않는 밤, 라디오를 듣는 순간 나는 음악을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너와 함께 들었던, 기억할만한 곡 하나 없는 것이 슬프다. 그나마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 당시엔 들리지도 않았던 노래 가사들을 더듬으며 기억하기 어려운 곡의 제목들을 찾아본다. 돌돌 말린 뇌 주름 속 어딘가에, 언젠가 늙고 기력이 쇠할 때 즈음 오래된 술집에서 데자뷰처럼 느껴지는 어떠한 곡을 듣곤 그때 이 곡이 흘러나왔다고 진실을 망각하고 싶다.  


다시 사랑이란 걸 할 순 있을까?

이 힘든 감정을 다시 시작할 용기가 마음속에 피어나긴 할까?

나는 아직도 과거의 것들을 더듬다 베이고 긁혀서 아파하는데 미래를 소진해 버리고 있는데 과연 나는 다시 설레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까?


너에게만은 언제까지 잊혀지고 싶지는 않아.

너 하나만 있다면 세상 모든 것들을 다 가진 것만 같았는데 언젠가 어떤 날에 어디에선가 이 노랠 듣는다면 나를 기억해.  

- 롤러코스터 '너에게 보내는 노래' -  



*역시나 사진은 부끄럽지만 친구가 찍어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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