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영상 제작의 모든 것
2. 기획했다고 하지마
<기획도하고 촬영도하고 편집도하고 디자인도하고 모션그래픽도하는 영상피디가 알려주는 광고 영상제작의 모든 것>
2. 기획했다고 하지마
안타깝게도 나는 제대로 된 영상 기획자를 본 적이 없다.
회사에서건 외주로 일을 하건 건너 건너라도
'저 사람 기획 참 잘해'에 해당하는 저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나는 기획자라기보단 기술자에 가까워서 마케팅 팀 혹은 광고를 맡긴 업체에서
주는 기획안을 보고 그대로 재현해주는 일을 주로 도맡아 했다.
나에게 온 기획안 10개 중에 9개는 다음 중 하나에 해당한다.
정보의 나열
스토리의 부재
레퍼런스 복제
고도의 기술 요구
귀찮음
정보의 나열은 그야말로 모~든 정보를 영상 안에 다 집어넣는 것이다.
성우를 쓰게 되면 지출이 생기기 때문에 자막으로 쇼부 보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트렌드에 맞춰 러닝타임은 1분 이내로, 한 컷당 초 수는 4초 정도를 제시한다.
<000 프라이팬을 활용한 소불고기 레시피 영상>
s#1 000 프라이팬은 도자기 소재의 세라믹으로 제작된 건강한 팬이며
과불화 화합물을 포함하지 않아 건강해요.
s#2 스테인리스 통 3중 몸체로 열 전달력이 뛰어나며
인피티니 프로페셔널 코팅으로 눌어붙지 않아요.
저렇게 기획안이 왔는데 그대로 제작하면 자막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안 보인다고(고래고래) 초 수를 늘려달라 하니 재량껏 자막을 줄이는 능력은 필수다.
자막의 길이는 눈으로 자막을 읽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히는 시간을 기준으로 잡으면 된다.
정보의 나열은 결국 스토리의 부재로 이어진다.
광고 영상은 광고를 통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거나 소비로 이어져야만 한다.
왜 내가 이걸 먹어야 하는지, 입어야 하는지, 발라야 하는지, 타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면 굳이 영상을 볼 필요도 없고 시간낭비다.
생각보다 이런 영상이 많기 때문에 기획은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레퍼런스 복제는 나도 많이 했던 방법이고 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레퍼런스를 복제할 때 영상 안에 담긴 스토리, 표현 방식을 보는 것이
아닌 기술적인 부분만 본다는 것이다.
<00 키즈 인라인 스케이트 광고 영상>
내레이션
(성인)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참 많죠?
(아이) 모퉁이를 돌면 숲의 요정이 있어
안녕 요정님?
사막을 탈출하자
헉? 와아(고양이 발견)
아빠~
(성인) 아이의 세상이 넓어질 수 있도록
더 안전하게
내 아이가 타는 거니까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고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세상을 구경하는 콘셉트로
전개는 빠르지만 킥보드의 장점까지 눈에 잘 들어온다.
기획에서 저 영상은 돈을 많이 쓴 티비광고에요 라는 핑계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고도의 기술 요구는 영상을 잘 몰라서 하신 말들이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쳐버리면 된다.
마지막 귀찮음은 아마 일도 많아 죽겠는데 내가 이것까지 해야 하는 마음으로
작성한 원 탑 기획안이다. 온갖 오타와 잘못된 띄어쓰기 더덕더덕 붙인
레퍼런스 복제 시안들이 뭉텅이로 온다.
이런 기획안을 보면 기술자들도 힘이 빠진다.
제발 이렇게 줄 거면
'기획했다고 하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