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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Jun 26. 2023

우리는 서로의 마을이 되어 주었다

은경축과 두 교황 

결혼한 지 25주년이 되면 은혼식. 

가톨릭 신부가 서품을 받은 지(신부가 된 지) 25주년이 지나면 은경축.

어제 20대 초반부터 형제처럼 지내 온 신부님의 은경축 축하 미사가 있어서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신부님은 말하길, 

오늘 은경축 축하 미사는 

제 힘으로 서서, 제 힘으로 걸어온 훌륭한 사제를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다. 

본인은 누군가 늘 곁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부축해줘야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부족하고 괴팍한 신부였으며 

따라서 오늘 이 자리는 25년의 여정 속 마디 마디마다

자신이 사제의 길을 계속 걸어가도록 성령을 대리하여 도운 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대접하기 위한 자리다. 

은경축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 분들의 은경축이다. 


식사와 답례품 준비 때문에도 필요했겠지만

RSVP로 참석 여부를 물었던 것이

한 분 한 분을 위한 감사말씀을 따로 준비하기 위해서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한 번씩 일어나서 신부님의 감사 인사와 다른 분들의 따뜻한 박수를 받았다.  


본인도 감사인사를 전하며 자신의 과오와 부족함을 숨기지 않았던,  

동기 신부님도 강론 중에 주인공의 나약함과 괴팍함을 놀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200여명의 참석자들 모두 신부님의 그런 면면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웃었던, 

오랜만의 아주 따뜻한 미사였다. 


먼길을 다녀오고 동네 공원을 산책하던 저녁 

아내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성령이 되어 주고

서로의 마을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자리에 대해서 끝없이 고민하는 모습이 더 사제의 모습 같지 않나?

라 덧붙였고 나는 공감했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두 교황'도 그랬다. 

오소독스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요즘의 신의 목소리가 들이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며 

교황직에서 사임하겠다는 장면이나, 

인간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 시기에 

동료들을 지키지 못 하고 일종의 배신을 한 일에 대해서 괴로워하며 

그 이유를 들어 교황의 자격이 없다고 하는 장면에서 사제들의 완벽하지 않음은 여실히 드러난다.

모든 사제는 결국 자신의 부족함을 안고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의 마을이 만든다.   

 

어떤 벗이 제일 좋은 벗일까? 

오늘의 배움을 살리자면, 

서로에게 마을이 되어 주는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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