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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Oct 18. 2021

아파서 공부를 하지 못했던 아이

#2-1. 내가 만난 아이 (유리)

유리(가명)를 처음으로 만난 건, 유리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개인교사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받은 거의 첫 학생이나 다름이 없던 학생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그러하듯, 초등학교 4학년인 시점엔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에 과외를 신청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유리도 그랬다.

첫 방문에 매우 귀찮은 듯한 얼굴에, 언제 수업이 끝나는지 묻던 그런 당돌한 학생이었다.

첫 수업이 끝난 후, 이 학생과는 한, 두 달 수업하고 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리가 고2가 될 때까지 난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니깐 내가 개인강사를 시작할 때부터 거의 끝날 때까지 유리는 나와 수업을 진행한 거였다.


첫 수업이 끝나면 보통 어머니와 상담을 진행한다.

유리와도 수업이 끝난 후 어머니와 상담을 진행하는데 어머니께선 좀 놀라운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 유리가 좀 새침하지요. 선생님께서 조금 너그럽게 봐주세요. 아이가 조금 많이 아파요.
희귀병인데 아픈 날은 몸이 심하게 붓고, 학교도 못 가고 그래요.
그래서 성격이 조금 예민하고, 까칠할 때도 있고, 숙제는 못할 때가 많을 거예요. 그래도 학습의 끈은 놓지 못하기에, 선생님께 이렇게 부탁드려요. 기본적인 것들만이라도 가르쳐 주세요.
아이가 많이 아픈 경우엔, 수업을 못할 수도 있는데 한 달 수업료는 빠지지 않고 꼭 드릴게요.
수업을 못하게 되는 경우엔 제가 미리 문자를 드릴게요.
어려운 부탁이란 거 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왜 그렇게 새침했는지, 모든 것을 다 귀찮아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점점 마음의 문을 열었고,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자 어머니께서는 수학에서 영어를 그다음은 국어와 기타 과목을. 다시 말해 전과목을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거의 매일 유리를 만나러 와야 하는데 그건 학습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기에 수학과 영어만 제가 하기로 하고 기타 과목은 다른 선생님을 섭외하여 수업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기타 과목을 부탁한 선생님과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3달을 넘기지 못했다.


어머니의 예상대로 유리는 수업은 빠지기 일수였다. 처음엔 수업을 안 가도 어머니께서 매달 거금을 현금으로 수업료를 지불하니 내 입장에선 나쁠 것이 없었다. 물론 20분 전에 수업을 취소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난 다음 수업까지 카페에서 수업 준비를 하거나, 책을 읽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6개월 그리고 1년 가까이 되어가자 왜 어머니께선 이렇게 학습을 시키려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어, 수학 그리고 기타 과목 과외비만 해도 몇십만원 가까이 되는 금액에다가 아이의 병원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이상의 단위로 돈이 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유리네는 이제껏 내가 만난 학생들 가운데 가장 부유한 형편을 갖고 있었기에 이렇게 비용이 나가도 그걸 지불할만한 능력이 되는 가정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만나본 부자들은 돈을 절대로 허투루 쓰지 않았다.

유리 어머니도 그걸 절대 모르는 분이 아니신데, 이렇게 계속 내가 유리수업을 맡아주길 바라시는지 난 그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마침 어머님이 계셨기에 정중히 말씀드렸다.

'어머니, 유리가 요새는 몸이 좀 괜찮은가요?'

'네.. 그래도 요새는 학교도 꼬박꼬박 가고 괜찮아요'

'아~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지난달에는 딱 4번 방문한 거 같은데 이렇게 계속 수업을 진행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요. 아무래도 숙제를 제대로 하기 힘드니 성적을 올리는 데에 한계가 있어서요. 수업비도 매달 주시는데 이대로 괜찮은가 해서요.'

선생님.
저도 강사생활을 해봐서 선생님이 저희 유리를 위해 시간을 빼두신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당연히 매달 수업료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거고요.
저도 유리가 너무 힘들면, 과외 안 해도 된다고 했는데 유리가 하겠다네요.
숙제는 다 못해도 엄마가 조금 이해해달라고.
전 그것으로도 만족해요. 아이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 커서 생각하는 힘도 없어질까 봐 그래서 조금이라도 배우게 하는 것이니깐 성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엄마 입장에선 아이에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해줘야 제가 조금은 마음이 노여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자, 난 더 유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성적이 잘 나오게 하기 위해 프린트도 미리 많이 가져다가 혹시 수업에 빠지면 풀 수 있도록 미리미리 챙겨뒀다.

어떤 엄마가 학생에게 공부를 시키면서 성적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다만 아이의 현재 건강이 학습보다 소중하기에 건강을 지키며 최대한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3년 정도를 수업했다. 그러다 유리가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 잦아지면서 수업은 무기한으로 연기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유리가 좀 괜찮아지면 선생님께 연락드려도 괜찮냐고 여쭤보셨고, 난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 후 어머니께 연락이 온 건 1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회사를 통해서였다.

유리 어머니라는 분이 선생님 아직도 수업하시냐며 연락이 왔다고 했다. 회사 시스템을 통해 보니 어머니의 예전 번호가 아니었다. 전화를 드리니, 어머니께선 공교롭게도 유리와 어머니 모두 휴대폰을 분실하여 선생님 번호를 찾을 수 없었다 하셨다. 그래서 처음 과외 신청했던 회사명을 기억하고 회사에 전화하셔서 날 찾으신 거였다.

애타게 찾아주신 감사한 마음에 수업 스케줄이 꽉 차있었지만, 최대한 조정하고 조율하여 유리수업 시간을 확보하였다. 그렇게 유리와 또 2년 정도 수업을 진행하였다.

유리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그리고 고등학생으로 자라는 동안 유리의 증상은 변함이 없었고, 또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유리가 결국 진로를 바꿈에 따라 고2 때 수업은 종료되었다.




얼마 전, 유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유리인데 자신을 기억하냐며. 잘 지내시냐며. 자신은 벌써 20살이 되었다며.

물어볼 것이 있어 연락을 준 것이었다. 반가웠다.

이를 계기로 처음으로 수업 종료 후,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어머니께선 너무나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셨다. 유리는 어머니의 길을 따라 일본 유학을 준비 중에 있다며.

꼭 한번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가계에 방문하기를 바라셨다.


유리는 예전과 똑같지만, 전보다 더 밝아졌다고.

선생님하고 수업했던 시간들이 참 많이 기억에 남는다는 인사말을 잊지 않으셨다.

나 역시 그랬다.

유리가 얼마나 아팠는지 난 가늠할 수 없지만,

곁에서 지켜본 어머니는 아이가 너무 고통스러워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와 끝까지 수업하려고 했던 너의 의지와 노력은 강사로서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지,

아니면 영영 못 볼지 모르지만,

어디서든 항상 건강하게 네가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는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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