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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Oct 21. 2021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2-2. 내가 만난 아이 (지율, 지훈, 지음)  

우리나라엔 교육열이 높은 동네가 지역마다 존재한다. 내가 수업을 했던 동네도 교육열이 높기로 소문난 곳이었는데 높은 교육열만큼 그만한 경제적 여력이 되는 가정들이 많았기에 소개를 받아서 수업을 가면 내가 살던 세계가 펼쳐지기도 했다.


한 번은 궁궐같은 대저택소개받아 수업을 간 적이 있는데, 어머니께서 대뜸 날 보더니 우리 아이를 어떻게 케어하실건지 브리핑을 해보라고 하셨다.

정확하게 '브리핑'이란 단어를 쓰셨다. 당황스러웠다.

학생의 현재 상태는 묻지도 않으셨고, 당신에게 과외를 맡기면 내 아이가 전교 1등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대놓고 물어보시는 듯했다. 어머니로서 충분히 물어보실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방법과 시기가 부적절했다.

학생의 현재 학습상태는 매우 엉망인데 그걸 강사인 내가 다 뜯어고치길 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더군다나 처음 방문한 자리에서 그렇게 물어보는 건 분명 내 입장에서는 상대가 결례를 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현재 학생 상태를 조목조목 언급하며, 학습습관과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전교 1등은 차치하고 전교권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직설적이고 가감 없는 멘트를 날렸다.

당연히 수업으로는 연결되지 않았고, 그때부터 소위 '있는 집'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버렸다.


지율이 어머님을 뵌 건, 그 일이 있은 후 두 달 뒤였다.

소개를 받고 간 지율이네 집은 100평 정도 되는 듯했다. 그 전까진 이렇게 큰집을 구경한 적도 없기에 집이 얼마나 큰 지조차 가늠이 어려웠다. 사실 강사의 동선은 극히 제한적이라 집이 얼마나 큰지는 수업이 지나고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지율이 어머님도 삼남매를 키우다 보니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지만, 매우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여쭤보셨다. 지율이는 초6, 지훈이는 초5, 지음이는 초4였기에 아직 과외하기엔 모두 이른 나이였지만 어머니께선 지율이부터 우선 시키길 원하셨다.

아이들 모두 외국에서 1년 살다온 터라 수학이 뒤쳐졌다고 생각하셨고, 과외수업으로 최대한 쫓아가고 싶어 하셨다. 지율이를 시작으로 지훈이 그리고 지음이까지 3명의 아이를 번갈아가며 총 5년 가까이 한 집에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지율이가 국제학교를 가게 되어 수업이 종료되면 둘째와 셋째 수업을 잡으셨고, 둘째가 뺀질대서 수업을 잠시 쉴 때면 둘째의 친구나 첫째의 친구를 소개해주셨다. 그렇게 5년 가까이 아이들을 지도하며 그 집을 들락날락거렸다.

수업 전에 저녁을 챙겨주기도 하시고,

다음 수업지까지 어머니 차로 데려다주시기도 하시고,

하루는 수업 대신 아버님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하셔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특별한 날에는 선물을 챙겨주시기도 하셨고,

과외교사를 넘어선 환대를 받기도 했다.

가끔은 수업을 하러 온 건지, 사촌오빠가 사촌동생들 공부 가르쳐주러 들른 건지 착각이 들만큼 편해져 있었다.


하지만 편해진 만큼 난 더 아이들을 관리하려 했다.

어머니가 안 계실 때에는 문자로 숙제와 수업상황을 남겨두기도 하고,

수업 집중도와 숙제 완성도 또한 주기적으로 보내며 본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삼 남매는 부모님의 성향과 성품을 닮아서 그런지, 모두 착하고 올바르게 커갔다.

삼남매 모두 수학을 힘들어하여 성장하며 진로가 조금씩 바뀌기도 했지만, 배우는 동안 성실했고, 무엇보다 밝았다.


브리핑을 원했던 그 궁궐같은 집의 학생은 조금은 어두웠고 처음 본 나를 판단하려고 했다.

사춘기가 와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첫 테스트 때부터 틱틱거렸고 어머니와의 상담에선 결국 이 집에선 수업을 안하리라 마음먹었었다.


난 아직 부모가 되지 않았지만,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을 깊이 공감한다.

부모의 모습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기도 하고, 부모님이 과외교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아이들도 은연중에 따라 배우는 듯했다.

학원으로 옮기게 됨에 따라 하던 5년간 이어오던 수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자, 너무 아쉬워하시며 식사대접을 해주셨다. 빈손으로 갈 수 없기에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떡과 책을 선물로 들고 갔는데, 어머니께선 식사 자리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나눠먹을 간식과 커피 쿠폰 그리고 손글씨 카드를 내게 건네주셨다.


얼마 전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잘 지내시냐며 전화를 주셨다.

첫째 지율이는 어느새 20살이 되어 올해 미국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율이는 선생님과 수업하던 때가 그립다며 미국 가기 전 꼭 한번 뵙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한마디라도 해주는 건, 강사 입장에선 참 고마운 일이었다.

지난날의 시간을 좋게 기억하고, 그리워한다는 건 그래도 허투루 수업하지 않았구나란 생각을 들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남매 가정이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수업을 하며 받은 환대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명확한 교육철학 때문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삼남매 모두 같은 과정으로 키우지 않으셨다. 아이의 성향과 특성에 맞게 필요한 교육을 넣으셨고, 그에 따라 아이들은 자라났다.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커갈지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바르고 성실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와 생각대로 자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쁜 학원생활과 코로나로 인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조금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좀 더 크고 위드코로나로 바뀌면 분명 어머니와 식사자리를 하게 될 것 같다.

그때 좀 더 어머니의 교육철학에 대해 다시금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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