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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Nov 09. 2022

또다시 일상이 무너졌다.

ep129. slchld_Lone Summer 

결국 두 번째 걸리는 코로나였다. 

독감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항원검사 결과는 1분도 채 되지 않아 두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 : 일주일간 자가격리하시고요.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드릴 건데 약이 안 받으면 원격으로 다시 요청하세요. 

나 : 네.....


머리가 아팠다. 가장 바쁜 시기에 코로나에 걸린 것도 그렇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기에 나로 인해 옮기면 어떡하지란 걱정이 내 모든 사고를 뒤덮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전화를 해야 할 순서대로 차례차례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코로나에 걸린 강사를 위해 학원에서 마련한 1인 숙소가 있다는 것을 팀장님께 듣고 집에서 옷 몇 가지를 챙겨 급히 이동했다. 


숙소엔 온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장비와 일주일간 생활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도구들이 모두 세팅되어 있었다. 

당장 급한 건 내일 시험을 봐야 하는 학생들을 오늘 봐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원에선 급하게 전화를 돌렸고, 난 온라인으로 학생들이 풀어야 할 자료들을 편집해서 학원으로 전송했다. 

팀장님의 도움으로 전쟁과도 같았던 하루가 끝나자 몸은 정말 죽을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기침은 나를 집어삼킬 듯이 계속 나오고, 목은 침을 삼킬 때마다 칼로 살을 도려내는 듯 아파왔다. 내게 한 번도 그럴 일은 없었는데 식욕도 전혀 느껴지지 않아 멍하니 앉아 30분째 간간히 기침만 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또 그럼에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아플 땐 잘 먹어야 한다며, 스스로 다독이며 쿠팡과 마켓컬리에서 식사할만한 것들과 필요한 것들을 잔뜩 주문했지만 3일 동안은 하루에 죽 한 그릇만 겨우 먹을 뿐이었다. 

몸이 이렇게 아팠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내겐 없었다. 

그래서 지금 마주한 이 몸의 고통이 적응이 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혼자 일주일간 있을 수 있으니 누군가에게 전염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출근길과 퇴근길이 없이 바로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몸이 아프니 이런 장점 또한 모든 과정이 다 지나고 이제야 생각날 만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진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금요일이 되니 몸이 한결 나아짐이 느껴졌다. 

어제와는 다르게 기침도 잦아들었고, 목의 통증도 조금은 완화되었다. 일주일 내내 마신 생강차 덕분인지 목을 쓰는 데에도 크게 부담이 줄어들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이번 주 일요일 결혼식이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미안하게 결혼식을 참석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전해야 했다. 꼭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잠시 눈을 붙이고 있을 때 알람이 울렸다. 

띠링. 

입금 : 0,000,000원 


이번 달 월급이 들어왔다. 아팠을 때 받는 월급이라 그런지 더 고맙기도 했고 아픔에도 일할 수 있음에 또 감사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한 달 한 달 월급에 의존해 살아가는 소시민이기에 그 평범한 일상과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삶이 무너져 내렸을 때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Bad things at times do happen to good people...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아주 재밌게 봤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아기를 잃은 산부에게 양석형 교수가 남겨준 쪽지의 내용. 

불현듯, 그 문장이 떠올랐다.

우린 살면서 예상치도 못하게 불행한 일을 마주하기도 한다. 

마치 사고와 같아서 대비가 전혀 되지 않는 그런 상황에 불현듯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찾아오는지...

나만 억울한 것 같고...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시련이 찾아온 것만 같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저 문장을 떠올리게 될 것 같았다. 꼭 나여서가 아니고, 누구에게나 불행은 찾아올 수 있는 거라고. 

불행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지.

불행의 시작을 예측할 수 없었듯, 불행의 끝도 단정할 순 없겠지만 

결국 시간이 흘러가며 불행도 또 우리에게 찾아온 행운도 잊혀진다는 사실을 우린 경험의 조각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 같았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삶이라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예상 범주 안에서 삶이 굴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예상치 못하게 겪는 불행이나 

의도치 않게 받게 되는 행운도 

이제는 덜컥 겁이 난다. 


그저 내가 노력한 만큼, 내가 감당이 가능한 내 몫만큼의 삶을 살아내는 것. 

그 정도만 바랄 뿐이었다.  


오늘 추천할 노래는 숙소에서 몇 번이고 들었던, slchld의 'Lone Summer'란 노래. 

몸이 아프니 기분이라도 처지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밝은 노래를 들으려 했는데 이 노래의 멜로디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격리기간이 끝난 지금도 계속해서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그 음악.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 노래를 듣고 기분이 좋아지시길. 가사는 슬픈데 멜로디는 흥겨운 그런 노래. 

추천합니다. 

https://youtu.be/vaBjzvpC3Oo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다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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