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오래된 소설에 세 친구가 나온다. 한 명은 ‘절대로’라는 말을 자주 하고, 한 명은 ‘어차피’라는 말이 입에 붙었고, 한 명은 ‘그래도’라는 말을 주로 쓰는데 셋 다 자기가 자주 쓰는 말대로, 딱 그렇게 산다. 나는 어떤 말을 자주 할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이왕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즐겨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도.
이번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기로 했다. 마음먹기가 어렵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이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아이 때문에 아무것도 못했다고 억울해하며,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같은 말을 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어려서 안 되고, 고3이라 안 되고, 그러다 늙어서 안 되는 거 아닐까. 아이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나대로, 내가 살고 싶은 모양으로 살아야겠다, 그래서 ‘자유부인’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마음이 자유로운 엄마가 되어야겠다. 이 여행은 그 시작이 될 것이야!
비장한 각오가 무색하게 정작 시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아들과 손자를 두고 가는 며느리가 예쁠 리 없겠지만 감사하게도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고, 모처럼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이 기대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일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엄마 없는 동안 더 살뜰히 챙길 테니 마음 놓고 건강하게 다녀오라며 작은 응원을 건넸다.
출발 하루 전,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혼자 서울행 버스에 오르는 길. 괜찮다는 대도 아빠는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준다고 한 시간 일찍 퇴근했다.
“어리바리해서 잘 갈 수 있겠나.”
“나 어리바리하다고 하는 사람은 아빠밖에 없거든.”
“잘 다녀와, 애기 걱정은 하지 말고.”
아빠는 버스터미널 한편에 차를 세워두고 아빠표 건강 스트레칭을 하며 버스가 떠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아이 걱정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나와, 내 걱정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아빠. 내가 정말로 괜찮은 것처럼, 아이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