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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28. 2022

가자, 초심 찾으러

인천에서 발리까지는 7시간이 걸린다. 국적기 직항을 이용할 경우에 말이다. 그나마도 코로나로 직항이 운행되지 않다가 이제 막 풀리기 시작한 터라 가격이 터무니없었다. 경유 항공권을 찾다가 3년 전보다 저렴한 티켓을 발견했다. 7시간 거리를 14시간 걸려 도착하고, 자가 환승(자동 환승되지 않고 경유지에서 스스로 출입국을 다시 해야 한다)을 해야 하며, 기내 반입 수하물 7kg만 허용하는 열악한 조건이었다.


머릿속의 행복 회로를 돌렸다. ‘언제부터 직항 타고 다녔다고? 경유지에서 공항 대기 시간이 길어서 그렇지, 비행시간은 비슷하잖아? 싱가포르 창이 공항이 그렇게 좋다던데, 공항 구경하고 밥 먹고 와이파이 잡아서 일도 하다 보면 6시간쯤이야. 자가 환승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남는 게 시간이니 문제 생겨도 해결하면 되고, 짐은 수영복만 챙기지 뭐.’


후회하지 말고 대한항공 타고 가라는 남편 말을 무시하고 덜컥 최저가 항공권을 구매했다. 혼자 떠나는 주제에 돈이라도 아끼자는 마음이 은연중에 들었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 말대로 출발도 하기 전에 7kg에 발목이 잡혔다. 7kg은 생각보다 훨씬 적은 무게였다. 더 이상 뺄 게 없다 싶을 만큼 짐을 줄여도 무게는 아슬아슬하게 7kg를 웃돌았다. 결국 16인치 캐리어를 배낭으로 바꾸고, 마지막에 아이패드까지 빼고서야 드디어 6.5kg. 겨우 무게를 맞추고서야 고난의 짐 싸기가 끝났다. 나, 잘 갈 수 있을까.


현관 앞에 배낭 하나를 덩그러니 내려 두고 침대에 누웠다. 졸지에 배낭여행이 되었군. 노트 하나 달랑 들고 떠나는 배낭여행 얼마만인가! 옆에서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남편은 산발을 하고 드디어 자리에 누운 나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은지야, 이거 휴가야. 초심 찾아오라고 보내는 휴가.”

“어떤 초심? 배낭여행?”

“은지가 요즘 오빠를 너무 신경도 안 써.”

“아아, 내가 바빴잖아.”

“알지 알지 우리 은지 바쁘지. 그래도 오빠를 너무 신경 안 써. 휴가 가서 초심도 찾아와.”

“알겠어. 몇 년으로 돌아가?”

“2020년?”

“왜 2020년이야?”

“그때 우리 애기도 태어났고, 은지가 오빠도 많이 사랑했고.”

“그으래? 오케잇.”


남편은 다정한 사람이다. 한번 말한 걸 두고두고 기억하는 사람. 기억하는 것을 당연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내 꿈을 나보다 더 응원하는 사람. 한결같고 또 성실한 사람. 매 순간 뜨겁게 열기가 솟아나는 사람은 아니지만, 따순 온기를 언제까지고 잃지 않는 사람이다.


이 여행의 시작이 남편이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열탕과 냉탕을 자주 오가는 내게 남편의 존재는 커다란 위안이자 평온이다. 실질적인 육아와 가사 참여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든 잘하고 있다고 지지해주는 그 덕분에 가까스로 균형을 잃지 않고 산다.

그럼에도 가끔은 아이와 나 사이에서 쫓기듯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남은 게 없이 텅 빈 느낌이 들곤 했다. 내 몸은 하나고 시간과 에너지는 정해져 있으니 그럴 때마다 남편은 뒷전이 되었다. 나를 잃어버리는 대신 그를 잠시 잊는 쪽을 택했다. 먼저 여행을 제안한 건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낀 남편 나름의 처방이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의 미션은 ‘(여러모로)초심 찾기’로 정했다. 가자, 초심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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