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잘못되었다.
꿈에 그리던 발리에,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드디어 도착했는데 좀처럼 흥이 나지 않는다. 틈틈이 ‘여기가 발리라니!’라는 생각을 했다. 3년 전에는 감격에 겨워 했다면, 이번엔 정반대의 마음이었다. 기대가 컸던 걸까, 발리가 문제인가, 내가 문제인가.
조악한 기념품 가게, 발리처럼 보이려고 애쓴 식당, 무지막지한 오토바이 행렬, 희롱에 가까운 호객, 못생기게 해변을 차지한 노점… 모든 게 지겹다는 생각과 함께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꾸따는 코로나 여파로 바다까지 폐쇄되었던 터라 빈 가게들이 많았다. 해변에는 전에 없던 노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비치 보이들은 빈백과 파라솔을 깔아 두고 돈을 받았다. 어쩐지 호객도 더 집요해진 것 같았다.
컨디션도 한몫했을 것이다. 발리에 온 지 이틀 만에 몸살이 났다. 오랜만에 파도에 두들겨 맞아서 그런지,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코가 맹맹하더니 머리가 아프고 목도 칼칼했다. 설마 코로나 아닐까 걱정했지만 자가 키트도 음성이고 증상도 영락없는 몸살이었다. ‘여행을 떠나오기까지 긴장의 연속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꼬박 하루를 공항에서 보내고 종종거리며 새벽에 숙소에 도착해, 서핑한답시고 바다에서 종일 분투했으니 몸살이 날 수밖에. 하루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 꾸역꾸역 스케줄을 소화하다 결국 이틀 만에 타이레놀 두 알을 먹고 뻗었다. 밤새 땀을 뻘뻘 흘리며 앓았다고 한다.
다음날, 어쩐지 가벼워진 몸으로 해변에 나갔다. 컨디션을 회복한 것만으로도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
“Long time no see!”
바다에서 익숙한 얼굴이 걸어 나온다. 3년 전에 발리에서 처음 만난 유의 현지 친구들이었다. 각자 서핑을 하러 나온 친구들을 우연찮게 해변 여기저기에서 만났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익숙한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먹으며 처음으로 ‘아, 발리구나!’를 외쳤다. 묵은 피로와 긴장 같은 것들을 다 털고 새롭게 여행이 시작된 기분이다.
여기가 발리라니, 우리가 지금 발리에 함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