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에 벌렁 누워 발을 굴렀다. 왜 안 되냐고 왜! 동네 강아지들조차 평화롭게 뒹구는 발리의 해변에서 쫄쫄이 수트를 입고 화가 난 사람은 나뿐이었다. 옆에서 친구가 깔깔 웃으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아니 무슨 일이시죠? 원래 연연하는 스타일 아니시잖아요. 왜 이렇게 화가 나셨죠?”
“너무… 잘하고 싶다고요. 맛을 알았어요. 쬐끔 맛을 보니까, 잘하고 싶어서 화가 나네요?”
하루 이틀은 재미있었다. 현지 강사들과 얼굴을 익히고 오랜만에 파도에 부딪히며 보드에 올라타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틀 정도 지나자 슬슬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기 전에 호텔 바닥에 엎드려 패들링 연습을 하고, 리뷰 시간에 물어볼 질문을 생각했다. 그러니 잘 안 되면 짜증이 났다. 또 시작되었군.
친구가 잘못 알았다.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천불이 끓고 있다. 잘하고 싶어서. 제발 열심히 하지 말자고, 취미는 취미일 뿐이라고 선을 그으며 좋아하는 마음이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압사하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이지, 나는 타고나길 엄청 연연하는 스타일이다.
80세부터 컴퓨터 수업을 꾸준히 들어 올해로 10년 차 수강생이 된 우리 외할머니가 그랬다.
“은지야, 수업을 들으러 가서 나만 못 알아듣고 자꾸 물어보면 그렇게 부에가(화가) 난다?”
“그게 왜 화가 나, 할머니, 모르면 자꾸 물어보면 되지.”
“나보다 늦게 배운 사람도 끄덕끄덕 알아듣는데, 나만 모르면 화가 나지.”
그런 할머니가 귀엽고 또 멋져서 나는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화날 일도 많다, 할머니. 할머니 나이에 컴퓨터 배우러 다니는 것만 해도 멋진 거라니까?”
은퇴 후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엄마도 비슷한 말을 한 적 있다. 민화 수업에서 배운 풀 그리기를 복습하면서,
“아우 짜증나.”
“왜?”
“나만 못해, 나만.”
“처음 배우니까 당연히 못하지. 다른 분들은 오래 배웠다며. 처음부터 잘할 거면 뭐 하러 배워?”
“그래도 짜증나. 왜 안 되냐고, 잘하고 싶은데.”
그때도 나는 깔깔 웃으며 “귀엽다, 귀여워. 화날 일도 많다” 했는데, 남 말할 처지가 아니다. 화가 나 죽겠다. 이것도 유전인가, 고작 며칠이나 됐다고.
서핑을 하고 와서 낮잠을 자려다 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나는 다 애매하다? 처음 배우면 다들 소질이 있대. 나도 그런 것 같아. 조금 열심히 하면 잘할 것 같은데 또 그게 아니거든. 그래서 찔끔찔끔 이것저것 애매하게 재능이 있는 것 같아. 뭐 하나 특출한 게 없어.”
“나도 그래. 나도 뭐든 배우면 신동이라고 해. 근데 아니야. 그냥 딱 그만큼의 재능만 있어. 재미 붙일 만큼만.”
“짜증나. 이래서야 뭐, 사는 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되잖아.”
“재밌잖아. 쬐끔씩이라도 소질이 있어서 이것저것 해보면서 살 수 있잖아. 재미있지 않아?”
“재미는 있지.”
“그거면 충분하지.”
“그러네. 그럼 엄마도 풀 그리면서 화 좀 그만 내.”
전화를 끊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재미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재미가 세상을 구할 거야, 그렇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