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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30. 2022

좋아하는 걸 나누는 기쁨

동기가 여럿이었던 지난 캠프와 달리 이번엔 나 홀로 초급반이었다. 혼자인 것도 서러운데 하필 파도가 새벽에 들어와서 비기너를 탈출하기까지 동트기 전 깜깜한 골목을 혼자 지나야 했다. 하지만 걱정 없다. 내게는 든든한 서핑 버디(라 쓰고 보호자라 읽는다)가 있으니까.  


“어머니, 이제 그만 좀 오세요!”

3년 전에도 유의 별명은 ‘열혈 학부모’였다. 서핑숍에 내가 등장할 땐 언제나 유가 함께였다. 선생님들은 매니저다, 학부모다 하며 놀리기 바빴고, 어쩌다 내가 혼자 있는 모습을 보면 낯선 현지 강사가 다가와 친구는 어디 갔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녀는 내가 서핑을 하는 동안 해변에 앉아 자식 운동시키는 엄마처럼 ‘잘한다 잘한다’ 하며 파도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쉬는 시간에는 간식이나 음료를 사서 먹였다. 수업이 끝나면 미리 알아본 맛집에 데려가 밥을 두 그릇씩 먹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남편에게 보낼 영상을 찍어주고, 같은 자리에서 다음 서핑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을 일주일 내내, 그것도 아주 기꺼이 반복했다. 마지막 날 노을 앞에 앉아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유는 ‘좋아하는 걸 나누는 기쁨’ 때문이라고 했다.  


발리로 여러 번 휴가를 떠나왔던 유는 아는 사람이 많았다. 쉬는 시간마다 유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유의 친구라는 이유로 그들과 금세 친해졌다. 어느 날은 현지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수업이 끝난 우리는 적당히 물기만 털고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스랑안에 있다는 친구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근처 꽃집에 들러 얼마 전 출산했다는 친구의 아내를 위한 꽃도 샀다. 투박하게 신문지로 둘둘 말아준 꽃을 품에 안은 채 다시 오토바이를 탔다. 잠깐 여행 온 게 아니라 꽤 오래된 친구네 놀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좁은 골목길에 뜬금없이 나 있는 대문을 열면 여러 채의 집이 한 마당을 공유하는 대가족 집이 나온다. 세 채, 아니 네 채쯤 그것도 다 다른 모양의 집이 마당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있고, 그 아래 닭과 오리와 강아지 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함께 간 친구들은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웬 할아버지와 아주머니 몇 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좇는다. 친구의 삼촌과 고모라고 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노는 와중에 친구네 아버지 어머니 삼촌 동생 누나 와이프가 자연스럽게 옆에 와서 같이 노래 부르거나 먹을 걸 갖다 줬다. 다정한 눈빛들. 커다란 나무 아래서 닭과 오리가 울고 바람은 기분 좋게 불고 처음 듣는 발리 노래도 흥얼흥얼 하게 되는 밤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를 알려주고 올 걸 그랬다며, 한국에 돌아가면 기타를 배우자고, 다시 발리에 오는 날 그 집 마당에 앉아 <담배가게 아가씨>를 불러주자고 다짐했다. 아자자자자자자, 자자, 자자자자자! 그 부분이 중요하니 반드시 창피함을 무릅쓰자고. 좋아하는 걸 나누는 기쁨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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