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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28. 2022

목걸이를 꿰는 사람

잘하고 싶다고 발이나 동동 구르는 게 전부인 나와 달리, 서핑 캠프에는 서핑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다. 근육이 붙으면 파도를 좀 더 안정적으로 탈까 싶어 PT를 받고 왔다는 사람(부작용으로 살이 너무 많이 빠져 수트가 줄줄 내려간다)부터 패들링을 잘하려고 어깨 운동을 집중적으로 하고 왔다는 사람, 발리에 7년째 살고 있지만 서핑 외에 다른 것은 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까지…. ‘서핑 정진’을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 나의 여행 메이트, 유가 있다.

유는 휴가를 끌어 모아 발리에 서핑을 하러 가고, 월급을 끌어 모아 자기 보드와 보드를 싣고 다닐 차를 사서 주말마다 양양과 고성 해변을 어슬렁거린다. 언젠가 발리에서 새벽에 서핑하고 낮에 일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런 열정이 늘 신기하고 부러웠다.


딱히 잘하는 건 없지만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 그것이 나를 수식하는 적당한 문장일 것이다.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고 무엇이든 배우는 걸 좋아하는데, 시간은 유한하고 몸은 하나이니 당연하게도 깊이는 없다. 책이나 잡지를 만드는 일도 그와 비슷해서 나는 이렇게 생겨 먹은 사람인가 보다, 하며 살았다.


스물다섯 즈음 별자리점이라는 걸 본 적이 있다. 다른 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한마디가 또렷이 생각난다. “넌 목걸이는 꿰는 사람이야.”

웬 목걸이? 눈썹이 매섭게 생긴 여자는 내게 어떤 일을 하든 엄청 뛰어난 성과나 성공은 없을 거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알알이 예쁜 구슬을 모아서 목걸이를 꿰듯 내가 하는 모든 경험이 구슬이 되어줄 거라고, 그 목걸이가 완성되면 그제야 ‘아 내가 이렇게 예쁜 목걸이를 만드는 중이었구나!’ 깨닫게 될 거라고 했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다 하라고, 네가 꿰는 목걸이는 구슬이 알록달록할수록 더 예쁠 거라고 덧붙였다. 믿거나 말거나 그 말은 기댈 곳 없던 나의 20대에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다. 이러다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냥 져버리는 건 아닐까 고민이 될 때마다 그 말을 떠올렸다.


30대가 되고 한동안 그 말을 잊고 지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고 결혼을 했고 아기를 낳았다. 목걸이고 뭐고 매일 눈앞에 펼쳐지는 일과를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나는 왜 깊이 빠지지 못할까?” 오랜만에 유와 그런 얘기를 하다가 잊고 있던 목걸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깊게 빠지지 않을지는 몰라도, 해보고 좋은 건 꾸준히 하잖아. 놓지 않고.” 취미라고 이름 붙여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자잘한 일들이 떠올랐다. 바쁘거나 힘들거나 돈이나 시간, 혹은 둘 다 없는 와중에도 하고 있던 일들. 이렇게 마음 가는 대로 끄적이는 글과 그림을 포함해 3년 만의 서핑도, 수영도, 합주도 놓지는 않는구나. 취미라기엔 얄팍하지만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째 일상에 찾아들어 활기를 넣는 그것들이 나의 구슬일까. 나는 지금도 구슬을 꿰는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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