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유는 휴가가 생기면 발리로 떠났다. 다녀온 후에는 발리가 너무 좋다고, 서핑이 너무 재밌다고 노래하듯이 얘기했었는데, 그때마다 언젠가 한 번은 같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발리에 대한 로망이 있거나 서핑에 관심이 생겼다기보다는 유가 그렇게까지 재미있어하는 걸 오랜만에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애가 재미있어하는 걸 같이 해보고 싶었다.
언제라고 약속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시간이 맞았고 실행에 옮겼다. 그때 유는 조금 먼저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기대도 계획도 없이 발리로 떠났다. 서핑에 관심이 없었던 내게 발리는 신혼여행지 후보 중 하나였지, ‘서퍼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지 몰랐다. 마침 우리는 서핑하기 좋다는 건기의 한가운데, 초보 서퍼의 천국이라 불리는 꾸따 비치에 있었다.
유는 중급반이라 새벽부터 먼바다에 나가 있고, 내가 속한 초급반은 아침 9시에 한 번, 오후 3시에 한 번 해변 코앞에서 파도를 탔다. 대략의 스케줄은 이러하다. 아침에서 일어나서 서핑을 한다. 밥 먹고 낮잠을 잔다. 오후 서핑을 한다. 밥 먹고 마사지를 받는다. 잔다.
아니, 하계 훈련도 아니고 왜 그렇게 서핑을 한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주일 내내 영문도 모른 채 열심히 스케줄을 소화했다. 이런저런 고민이 많던 시기였는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였고, 몸을 움직일수록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맛이었구나. 발리의 맛!
3년 만에 발리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에도 제일 먼저 꾸따 비치의 풍경을 떠올렸다. 온몸에 골고루 내리쬐는 햇볕, 바다 위에서 맞이하는 아침, 몸을 맞고 부서지는 파도, 그늘 아래 쉬는 시간, 노을과 맥주, 자유로운 강아지들…. 그곳에서 서핑을 해야지, 넘실대는 파도에 온몸을 부딪쳐야지, 실컷 햇볕을 쬐야지, 만끽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