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는 낭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 May 26. 2021

나의 그림자, 안녕

그림자를 끌어안는 법

끊어진 단면들과 단편들을 안고 조각난 기억과 의식으로 살았다. 거대한 무의식에 눌리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그림자는 나를 붙잡아 현실을 살아가지만 과거에 살고 있게 한다.


융은 '그림자'를 본능적으로 번식과 생존에 초점을 둔 도덕과 관계가 없는 정신의 인류 발생 이전의 동물적인 측면. 인간의 어둡고 사악한 측면을 나타내는 원형이라 했다. 



관계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 

환자의 생사를 결정하는 '골든 타임'이라는 게 있듯, 관계에 있어서도 '골든 타임'은 꼭 존재한다. 망쳐버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관계를 망쳐버린 당사자에게 이전과 다른 심각한 고통, 더불어 지난한 세월을 지불하도록 권한다. 그럼에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일을 비로소 해내고야 만다면 이전과 같은 과오가 다시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신뢰 위에 다시 실제하는 관계로 시간을 같이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영유아기, 유소년기를 거쳐 가장 든든한 뿌리가 되어줘야 할 나의 '관계'는 골든 타임을 놓친지 아주 오래되었다. 출생 이후 20년 동안 그 이상, 폭언과 폭행은 이어졌다. 청소년 이후는 힘이 생겼지만 특별하게 반항하거나 폭력을 되돌려 주진 않았다. 물리적 가해는 그것이 어떤 이유가 있었다 해도 정당화 되기는 어렵다. 솜방망이 처벌로 종결된 정인이 사건에서 나도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며, 한 영혼을 추모하며 눈물이 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골든타임을 여러번 놓치며

몇 년은 과거에서 몇 년은 현재에서 살았다

부모와의 관계가 전혀 건강하지 못해 어려서는 의기소침했지만 마음은 굉장히 교만에 가득찼고, 20대 때는 아까운 세월을 탕진하고, 어떤 인간상이 건강한가를 알지 못해 방황하고 상처 주는 관계를 이어갔다. 결혼을 하면 원가족과의 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데 몇 몇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인생 에피소드에서 전혀 터닝포인트가 될만한 이벤트는 일어나지 못했다. 


골든타임이 될 뻔한 순간을 여러번 놓치며 그렇게 살아가고 여전히 어쩔 수 없는 시간은 흐른다. 나의 부모님은 많이 (좋은 쪽으로) 변하긴 했지만, 부모님이 변하는 속도가 잃어버린 혹은 놓쳐버린 관계를 회복하기에 이제 그것을 쫓기에 많이 늦어버렸다. 


결혼 전 받게 된 상담, '통합'되지 않은 '나'인 상태에서 '통합이 된 나'로 살아야 한다는 상담선생님 말씀처럼 내가 하나의 나로 완성이 되지 않아 혼란스럽고 괴로운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 둘을 연달아 낳고 몇 년은 과거에서 몇 년은 현재에서 겨우 겨우 살아낸 듯 하다. 



연년생이 될 뻔한 두 남매로 인한 육아의 매운 맛을 보고 정신 못차리다 되돌아 보니 아이들은 어느덧 부쩍 자라있다. 이제 엄마와의 '관계'를 고민할 줄 아는 그들을 본다. 친구와의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법을 고민하고 묻는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관계'라는 것의 존재를 알고,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생각한다.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가 전부다. 태어난 아이에게 부모는 이 세상이며 곧 자신이다. 아이를 낳고 함께 지내보니 아이들은 말을 참 안듣는 것 같아도 꼭 기억하고 있을 때가 있고, 엄마가 괜찮다면 괜찮은 줄 알고 아니라면 아닌 줄 알고 있더라. 


한 생명에게 전부이자 전체인 관계, 태어난 생명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특권이 부모에게 주어진다. 동시에 부모는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축복, 가장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회복되지는 못하더라도 이어져가는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을 톺아본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함께 쌓아가야 할 것들을 고민한다. 


지난 글들도 톺아본다. 어떤 과거에 사는 글, 과거에 멈춘 글을 되돌아본다. 내년 가을이면 어쨌든 상담 대학원으로 돌아가 보겠다고 일단은 정해둔 상태다. 공부하는 상태를 유지한다면 과연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조각난 '나'를 모두 합쳐 완성하게 될 것인가, 인생 과제다. 




덧, <어니스트의 멋진하루> 어니스트가 길을 잃었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해봤지만 아무도 돕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누군가는 꼭 어니스트가 그 정글 속에서 나올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어둡고 음습한 정글에서도 반드시 돕는 손길은 있었다. 내기 기억을 하든지 아니든지. 




매거진의 이전글 계단, 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