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글레넬그 비치로 도망친다
우리, 멘탈의 도피처를 마련해두자
회식을 하다가 대성통곡했다. 상대방이 상무님이든 정년퇴직을 앞둔 부장님이든 가리지 않고 한 명씩 붙잡아가며 사는 게 힘들다며 엉엉 울었다. 오리고기 실컷 잘 먹고 웃고 떠들던 애가 갑자기 울음이 터졌으니 처음에는 다들 주정인가 하다가, 그칠 줄 모르고 서럽게 우니까 각자 이유를 추측하며 걱정했던 것 같다. 일이 많아서 힘든가, 요즘 직장인 사춘기가 2년차에 온다던데 지금이 그럴 땐가, 회사에서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걸까, 집에 무슨 일이 있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유가 모두 달랐던 것처럼 위로하는 말과 방식도 천차만별이었다. 울면서 귀가하는 나에게 택시비를 쥐어주고 원래 그때가 힘들 때라고 문자를 보낸 사람도 있었고, 직접 묻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 것 같은지 묻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조용히 다가와 "요새 일 많아서 힘들지?" 하고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온 삶을 통틀어 소진되어 있었다. '해야만 한다.' '잘 해야만 한다.' 당위에 대한 강박에 지배 당한 채로 사는 삶을 버틸 수 없어서 급격한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틀라스는 신화 속 인물이라 지구를 계속 짊어지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한낱 사람인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책임감을 어깨에 들쳐 매고서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울었을 뿐이다. 술도 왕창 마셨겠다, 정말 사는 게 힘들어서 울었다. 상담을 받고 있었으므로 내가 힘든 이유는 알고 있었고, 방법을 찾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니, 믿고 있었다. 그러니 걱정하는 마음이 진심인 것을 알아서 고마웠던 것과 별개로 "지금이 한창 힘들 때라서 그렇고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유효한 위로가 됐던 건 V로부터 받은 메일 한 통이었다. V는 1년 동안 함께 근무한 첫 사수였고, 이후 원래 자리를 찾아 다른 팀으로 이동했으나 종종 우리 팀 행사에 함께하고는 했다. 보임하게 된 V를 축하도 할 겸 마련된 회식 자리라 V도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다가, 내가 스물여섯 살이 아니라 여섯 살짜리처럼 우는 바람에 내내 옆에서 나를 달래주어야만 했다. 다음날 출근해보니 이른 아침 V가 보낸 메일이 와있었다. 바다 사진과 노래 가사만 있는 단출한 메일이었다. 제목도 모르는 노래지만 힘내라는 내용의 가사였고 선곡이 V다웠으므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위로가 된 건 노래 가사가 아니라 바다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바다는 V가 스페인에서 5년 동안 근무할 때 살았던 동네의 바다였다. V는 힘들 때 그날 그곳의 바다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그저 한 장의 사진과 한 마디의 말이었는데, 하루종일 숱하게 받은 그 어떤 위로보다 효과가 좋았다. 그날 이후 나에게 요령 같은 것이 생겼다. 종종 힘에 부칠 때에는 몸은 여기에 남겨 두고서 멘탈만 챙겨서 글레넬그 비치로 도망친다. 당장 직면한 고통을 억지로 참고 견디기보다는 잠시 모든 감각을 동원하며 오롯이 행복해했던 그때의 기억 속으로 도피했다가 조금 괜찮아지면 다시 돌아온다.
4학년 여름방학 때 채용연계형 인턴으로 일한 덕분에 졸업 직후 채용이 보장되어 있었으므로, 마지막 학기 학점을 모두 사이버 강의로 채운 채 노트북을 들고 학기 내내 여행을 다녔다. 당시 교환학생을 가있던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 달 동안 호주에 갔었고, 그가 기말고사를 치는 동안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자리도 비켜줄 겸 3박 4일 동안 혼자 애들레이드로 여행을 떠났다. 애들레이드는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의 주도이지만 아담한 도시라 돌아보는데 하루면 충분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부지런하지 못한 여행자라 시티를 둘러 보는데만 이틀이 걸렸다. 아침잠이 많아 자의로 오전을 버리고, 호주는 6~7시면 거의 모든 상점과 기관이 문을 닫는 탓에 타의로 오후를 버리며 이틀을 보낸 뒤 마지막 날의 일정을 고민했다. 보통 애들레이드에 오면 캥거루 아일랜드나 빅터 하버로 근교 여행을 떠나거나 와이너리 투어를 간다고 하던데 모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시티에서 40분 가량 떨어진 글레넬그로 가서 하루종일 바다를 보기로 결정했다.
쫄보라서 여행지에서 대중교통을 타기만 하면 구글맵으로 내가 어디까지 왔나 계속 확인하는데, 글레넬그는 트램 종점에 위치했으므로 불안해하지 않고 창밖 구경을 실컷했다. 기찻길을 따라 높이 자란 나무와 낮게 지어진 집이 번갈아가며 줄지어 있는 것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상점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부스럭거리며 내릴 준비를 하던 로컬 승객들을 따라 트램에서 내리자마자 처음 본 장면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채도를 한껏 높힌 듯 새파란 하늘과 커다랗고 하얀 구름, 높이 쭉 뻗은 야자수들과 고풍스러운 건물, 그리고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 온 동네가 "너는 일상을 떠나 여행을 온 거야!"라고 있는 힘껏 외쳐주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의식하지 않은 채 교각과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따뜻한 라떼와 브리또를 사서 교각의 바로 오른편 벽돌 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파란 색지에 하얀 물감을 힘있게 꾹 눌러 그은 것처럼 생겼던 기다란 구름, 넘실거리다가 해변에 도래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던 파도, 햇빛이 바다로 뛰어들자 표면에서 금빛으로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 같았던 반짝임, 해변에서 배구하는 아이들의 웅성임, 뭉근하게 전해지던 볕에 달궈진 벽돌담의 따뜻함. 물아일체의 경지란 이런 걸까. 어느샌가 감각이 나인지, 내가 나인지 알 수 없었다. 힘들 때 스페인의 한 바닷가를 떠올린다던 V의 말에, 다른 그 어떤 곳도 아닌 글레넬그 비치가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모든 당위와 도리로부터 벗어나 오직 감각만이 존재했던 그 순간 그 장면, 그날의 글레넬그 비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회사 기숙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후배가 나를 보자마자 울음이 터져서 말없이 안아준 날이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어도 지난 해 7월의 내가 느꼈을 힘듦과 결이 비슷한 감정인 것 같아서 다음날 후배에게 메일을 썼다. 글레넬그 비치 사진을 몇 장 첨부하고, 나는 힘들 때면 그날의 그 바닷가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우리 힘들면 버티고 서있지 말자, 행복했던 기억을 마음의 피신처로 삼아 종종 도망치자, 그리고 괜찮아지면 돌아오자, 말했다. 만약 지금이 버거워서 괴로운 사람을 만난다면 아마 나는 같은 위로를 건넬 것 같다. 꼭 바다일 필요도, 반드시 여행지일 필요도 없이, 그저 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던 장면을 대피할 곳으로 마련해두자고. V에게는 스페인 카르타헤나의 어느 한 바닷가, 나에게는 호주 남부 글레넬그 비치, 그에게는 또 그만이 아는 어느 날의 어느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