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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 Mar 14. 2021

스물아홉의 나를 내가 인터뷰하기

컨셉진 한달 인터뷰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매일 하나의 질문을 드립니다.'

'당신의 지금을 한 권의 책으로 기록합니다.'


컨셉진이라는 잡지 회사에서 진행하는 한 달 짜리 셀프 인터뷰에 도전했다. 하루에 하나 질문을 받으면, 오늘이 가기 전에 질문에 대한 답변을 특정한 플랫폼에 올리고 인증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부지런히 답해보다가, 비슷한 내용으로 반복되는 질문에 흥미를 잃어 답하지 않다가, 최종 수정 기간에 마음 먹고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완성했다. 장장 8시간이 걸렸다. 컨셉진이 멱살을 잡고 끌어준 덕분에 31개의 질문에 빼먹지 않고 답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이 돈을 내야 뭘 해도 한다.


질문의 결이 비슷해서인지, 내가 한결같은 인간이때문인지 31개의 물음에 모두 일관된 태도의 답변이 달렸다. 덕분에 인터뷰집의 제목은 쉽게 정했다. "언제나 오늘인 사람"라고. 과거가 힘을 못 쓰는 사람. 미래가 겁을 주지 못하는 사람. 어떤 길을 지나왔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방향키를 잡은 두 손을 언제나 꽉 쥐고 순간의 균형을 맞추며 커다란 파도에도 뒤집히지 않는 사람. 끝내 어떤 대륙에 닿기는 할 사람.


31개를 모두 연달아 읽으면 어떤 이야기인지 단번에 알아챌 텐데, 퍼블릭하게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어 일부만 브런치에 옮겼다.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나를 비출 수 있되, 작성한 나도 마음에 드는 답변을 골라 보려 했다.


언제나 오늘인 사람


윤윤의 지금,

서른을 직전에 둔 스물아홉. 이상향으로서의 '어른'의 모습을 상정해두고 수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직전의 어른일 수밖에 없는 사람.


스무 살, 첫 홀로서기를 시작한 동네를 사랑하게 되면서 영영 '서울에 살으리랏다' 다짐했다. 먹고 살고자 울산에서 잠시 근무했으나 서울에 대한 향수로 매주 KTX를 타다가 결국 때려치우고 재상경했다. 작년부터 일하는 여성들의 커리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에서 PM으로 근무하며 '일존못' 구간을 지나고 있다. 부족한 것은 오직 시간과 경험 뿐이라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있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귀납법으로 살기로 마음 먹었다.



2. 당신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혹은 준비하고 있나요? 그 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기업 사내교육팀에서 일하다가, 스타트업 PM으로 이직한 지 1년 정도 되었어요. 교육에 소명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을 꿈꿨고, 교육 직렬 행정고시를 치려 했고, 모두 접고 전공을 살려 취직해야 했을 때 주저 없이 HRD를 선택했죠. 하고 싶었고 자신도 있었어요. 최선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 제공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는 흔들린 적 없었고 운 좋게 첫 직장 첫 조직에서 첫 직무로 원하는 일을 하게 됐어요.


하지만 소명은 이상의 영역이고 직장은 현실의 영역이라는 것을 점차 깨달았어요. 커다란 조직의 느린 의사 결정 속도, 이미 자리 잡아 바뀌지 않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문화, 생각의 결을 같이 할 수 없는 동료, 나에게 주어진 아주 제한적인 권한 같은 것이 더 치명적이더라고요. 전 직장에서 결핍을 느꼈던 부분을 채우고 싶어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어요. 이제 다시 여기서 어떤 점은 견딜 수 있고 어떤 점은 참을 수 없는지 하나씩 알아가야죠.


하고 싶은 일을 고를 때는 대입법을 쓰지만, 일해야 하는 조건을 고를 때는 소거법으로 풀어내야 되는 것 같아요. '최선의 교육 환경을 만들고 제공한다'라는 답을 대입해서 문제를 풀다가 안 풀리길래, 지금은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비즈니스로 명료하게 해결한다'는 답을 대입해서 수식을 써내려 가고 있어요. 그 문제를 어느 교실에서 어떤 선생님 아래 어떤 친구들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푸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는 겪어가면서 하나씩 선택지를 제외하며 찾아가야죠.



3. 지금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다섯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생략)


두 번째는 K-pop인데요. 어릴 때는 선망의 대상으로만 바라 봤는데 지금은 작품을 감상하듯 봐요. 전하려는 메시지, 멜로디와 리듬, 안무와 표정, 스타일링까지 4분 가량의 종합 예술이잖아요. 무엇을 담아내고 표현하고 싶었는지 알고 싶어서 아티스트나 업계 종사자의 인터뷰나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해요.


세 번째는 좋아하는 정기 콘텐츠의 연재 혹은 방영일을 기다리는 일이에요. 주 단위로 행복을 골고루 촘촘하게 구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요? 주로 예능과 웹툰을 선호해요. 오로지 웃음과 흥미의 영역이기 때문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일과 커리어"의 대척점이기 때문에, 극단을 또 다른 극단으로 중화하는 거예요. 균형은 중요하니까. 언제나 일과 관련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고여있거든요. 비염 치료할 때 식염수를 코 안으로 콸콸 흘려서 막힌 코를 뚫잖아요? 비슷해요. 머릿속에 남지 않아도 되는 재미를 머리 속으로 때려 붓고 깔깔 거리면서 뚫어내는 거예요.


(생략)



4. 삶은 즐거울 때도 힘들 때도 있어요. 당신의 삶에도 분명 많은 시련이 있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삶의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시련은 이겨내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고통이 남기는 흔적은 어찌 되었든 자아의 일부로 남으니까 사실 안고 가는 것이 맞죠. 하지만 시련에 잠식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새기는 말이 있어요. "이게 전부는 아니야." 바구니가 있을 때, 그 바구니에 시련만 담겨 있으면 시련이 100%지만, 즐거움과 행복, 기쁨을 바구니에 채우면 채울 수록 전체에서 시련의 비중이 점차 작아지잖아요. 0일 수는 없지만 0.1%로는 제가 만들 수 있죠.


어디선가 본 이야기인데, 삶이 불행하게 느껴지는 건 '나쁜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좋은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삶의 균형은 나쁜 것을 덜어내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채워서 맞추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을 믿어요. 제가 그 말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시련의 비중을 0.1%까지 떨어뜨릴 수 있는 원동력 아닐까요?



9. 지금까지 당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한 마디 혹은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


"바꿀 수 없는 것에는 쿨하게, 바꿀 수 있는 것만 뜨겁게."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예요. 고등학교 은사님이 해 주신 말씀인데, 한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 때 상담을 받았거든요. 그때 제게 착한 아이 컴플렉스가 있다고 하시면서 저 말씀을 해 주셨어요. "내가 어떻게 해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은 내가 아무리 잘해도 바뀌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는 그 마음은 얼마나 괴로우냐. 나는 네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도 결국 알게 되겠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 뿐이야." 이때부터 저 문장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았어요. 사람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전방위로 적용 가능한 말이거든요.


어떤 사안을 만날 때마다 저 문장을 떠올려요. 이거 '내가 애 쓴다고 바꿀 수 있는 일이야?'하고 아주 냉정하게 생각해봐요. 내가 애 써서 해결되는 일이면 최선을 다해서 해봐요. 근데 생각해봤을 때 내가 애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면 그 사실을 받아 들여요. 우선 내가 괴로우면 안되니까. 그리고는 그 안에서 내가 뜨거울 수 있는,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찾으려고 해요. 


한 10년 정도 저런 마음가짐으로 살았더니, 나의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정말 써야 할 곳에 쓰면서 살 수 있더라고요. 정말 내게 중요한 사람들만 소중히 할 수 있기도 하고요. 삶이 크게 비참해질 일도 없어요. 무언가 잘 안 풀릴 때 그 화살을 내게 돌리지 않게 되거든요.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실제로 해내는 일이 더 많아져요. 그래서 주변에서 상담을 청할 때면 저도 저 말을 가장 많이 해주는 것 같아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는 마음이 얼마나 괴로우냐.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면서 살자"고요.



13. 당신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장래희망을 '다정한 할머니'로 삼았어요. 바라는 지점이 있어야 사람이 열심히 살잖아요. 그런데 목표가 '다정한 할머니'니까 할머니가 될 때까지 타인과 나 자신에게 다정해야만 하고요. 그럼 더 나은 삶을 살 수밖에 없더라고요. 꿈을 이뤄야 하니까. 저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인데, 영화 <코코>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나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 속이 나의 사후 세계더라고요. 나와 함께한 추억, 내가 미친 영향, 내가 남긴 흔적이 남겠죠. 그래서 다정한 추억, 다정한 영향, 다정한 흔적을 남기자고 생각해요. 그럼 그게 더 나은 삶일 거라고 믿거든요.



17.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행복을 정의해주세요.


이전에는 행복에 정의가 있다고 믿었어요. 만족감에 가까운 개념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순간을 판단하는 기준처럼 사용했어요. "지금 내가 행복한가 아닌가"를 질문하고 "그렇다"라고 답을 내리면 다행인 것, "아니다"라고 답하면 무언가 잘못된 것. '지금 나는 행복하지 않다'라고 결론 내렸던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다 불만족스러웠던 거더라고요. 울산에서 근무했을 때, 이전 연애가 힘들었을 때, 처럼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행복은 하나의 감정이더라고요. 기쁨과 슬픔, 두려움처럼요. 더 이상 "지금 내가 행복한가 아닌가"라고 자문하지 않아요. 그냥 어떤 순간 문득 "와, 지금 너무 행복하다!"라고 느낄 뿐이에요. 대신 어떤 순간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잘 기억해둬요. 입맛에 맞는 술과 음식을 알게 되었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과 깔깔 거리며 웃거나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나눴을 때, 아껴둔 돈으로 5성급 호텔에서 하루 묵었을 때, 바쁜 시기에 적당히 끊어내고 떠난 휴가에서 마주친 바다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을 때. 그리고는 일상 속 불행의 비중이 일정 수준 이상 커지지 않도록, 그런 순간을 부지런히 채워 넣어요.



24. 당신의 습관 중 좋은 습관과 고치고 싶은 습관을 이야기해주세요.


좋은 습관은 말버릇인데요. "그럴 수 있지"와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거예요. "그럴 수 있지"는 다름을 수용하는 말이고 "어쩔 수 없네"는 한계를 인정하는 말이에요. 저 말을 내뱉으면 실제로 세상에 이해 못할 일이 없더라고요. 아무리 기계처럼 진심 없이 말해도 막상 입 밖으로 저 말을 하고 나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돼요. 고치고 싶은 습관은 나열하면 끝이 없을 것 같은데요. 어쩐지 자괴감이 들 것 같아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한 30년 살아 보니, 그때 가서 급하면 알아서 고치더라고요. 미래의 제가 알아서 하겠죠.



26. 당신은 당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나요? 당신이 당신답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당신다움에 대해 정의해주세요.


농담처럼 주변에 "주제 파악, 자기객관화 하나로 먹고 살아 왔습니다"라고 말하기는 하는데요. 이게 나다움을 한 마디로 정의하고 있는 것과 또 다른 것 같아요. '나다운 것이 뭐냐'는 질문에 답할 수는 없지만, '어떤 순간에 무엇이 나답게 행동하는 것인가'는 결정할 수 있거든요. 아까 17번에서 행복에 대해 답한 것과 비슷해요. 나다움은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이기보다 일종의 상태예요. "지금 이것이 나다운가? 나답지 않은가?"라는 질문 대신 "이렇게 결정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결정하면 내가 자연스럽고 편안한가? 아니면 뭔가 꾸며내듯 불편하고 마음에 걸리나?"라는 질문을 제게 던져요. 생각했을 때 자연스러우면 그건 나다운 결정, 아니라면 나답지 않은 결정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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