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공항에 도착한 후 렌트한 차를 몰고 가는 길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남편의 역할은 운전기사. 아이들을 캠프에 매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고, 각종 관광지로 이동할 때마다 운전대는 그의 차지가 되기로 했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자마자 사달이 난 것이다.
평소 본인의 성미만큼이나 운전을 급하게 하는 남편은, 장롱면허인 나와는 달리 운전경험이 풍부한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죽으나 사나 운전대를 남편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나와는 입장이 다른 그녀들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대를 남편에게 양보한 것은 어디까지나 역할을 분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시작부터 사고를 친 그에게서 운전대를 냅다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지만 다시 한번 그를 믿어주기로 한 셈이다. 대신 그에게 향하는 그녀들의 잔소리, 아니 살고자 하는 아우성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괌에서의 첫 날. 괌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아우성
"오빠, 천천히 좀 가!"
"너는 왜 이렇게 운전을 거칠게 하니."
시속 40km도 안되었지만 양쪽에서 다른 차라도 보이면 어머님과 나니는 꼭 한 마디씩 거들었다. 진입로나 출구, 커브길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무조건 속도를 줄이거나 멈춰 서길 요구했다. 두 여자의 높은 고음의 목소리가 교차되어 잔소리 내비게이션의 화음을 이루었다. 구글 내비게이션의 안내음이 남자 목소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잔소리 내비게이션은 드라이빙이 안정될 때면 적막했고, 조금의 위기라도 보이면 깜짝 놀란 경보음처럼 한꺼번에 쉴 새 없이 울렸다.
잔소리를 별로듣지 않고 자란 나로서는 결혼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남편의 잔소리였다. 원 가정에서 내가 무엇이든 잘했기 때문에 잔소리를 안 들은 건 아니었고, 나의 부모님은 자식에게 늘 미안해서 할 말이 없는 부모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편의 잔소리는 일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본인의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을 몰아붙이는 잔소리 내비게이션을 동시음으로 경험하고 있자니 남편이 안쓰러워지기까지 했다. 만약 이곳에 가장 철두철미한 캐릭터인 아버님까지 계셨다면 남편은 운전대를 빼앗기는 것도 모자라 영혼까지 털렸을 테고, 그 역시도 살고자 하는 아우성으로 나머지 여행 일정에서 자체적으로 열외 되었을지 모른다.
사실 우리 가족끼리 다녔던 국내여행에서도 급정지나 덜컹거림은 예삿일이었고, 조수석 문짝 옆에는 찌그러진 흔적까지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운전대는 남편이 쥐고 있고,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선 그가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수석 문짝이 찌그러지는 사건이 있던 날, 평정심을 잃은 그에게 나는'다른 차를 찌그러뜨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우리가 모두 안전하니 되었다'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내가 다시 연수를 받아 운전을 시작하고 남편보다 나은 운전실력을 갖추게 되면 태도는 달라질 수도 있다.그러므로 그 순간, 나는 내가 장롱면허인 것에 감사했다. 남편을 온전히 믿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Hey, Dog! 아저씨 주차실력 어때? 그뤠잇!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감정이나 태도 면에서 남편이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를 그의 가족은 늘 바랐다.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듯 지나친 투명성은 옆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염려에서였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에게 질렸던 나 또한 그의 가족이 되어 살아보니, 내가 사랑했던 그의 장점으로 인해남들에게 오해나 비웃음거리를 사게 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딜 가든거침없이 혹은 눈치 없이 솔직한 그의 언행에 전전긍긍하게 되었고, 먼저 선수 치거나 대신 포장하는 후속 작업까지 나의 몫이 되었다. 나를 만나기 전에는 그녀들의 몫이었을 터. 그렇게 평생 구멍 난 곳을 메우기 위한 두 여자의 노력이 폭죽처럼 터져버렸다. 결코 상처 입히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그의 주변을 빛나게 해 주려는 의도였지만, 너무 가까이에서 이르게 터져버린 폭죽은 그에게 소음을 넘어선 굉음과 함께 파편으로 상처를 입혀버렸다.
우리에겐 바다같이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처 입은 남편의 마음을 어루만지리라 결심했던나마저도, 나를 향한 남편의 또 다른 잔소리에 터지고 말았다.
"당신이나 잘해!"
나는 처음으로 열외를 선언했다. 모두가 나간 후 혼자서 숙소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이건 진짜 가족여행이다. 이제부터 가족여행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