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가 내게 분담해 준 역할은 캠프에 가는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는 일이었다. 가끔 우리 가족 나들이 때 싸갔던 소풍도시락 사진은남편의 핸드폰을 통해 시댁 식구들에게 전송된 적이 있었다. 시누이는 '나니투어' 공식 가이드답게 모든 일에 관여했다. 숙소, 항공편, 유학원과 컨택하는 일, 렌트와 현지 생활 전반에 걸쳐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았다. 현지에서는 전대와 같은 가방을 차고 다니며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챙기는 등 총무 역할까지 했다. 대략적인 관광지는 남편이 사전에 조사했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이 가고 싶은 곳 목록에 불과했다.
동선까지 고려한 거리, 입장료나 주차장 등 세부적인 정보는 나니의 서치를 거쳐야 했다. 우리 가족끼리만 여행할 때는 내가 하는 역할이었다.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어디를 가면 좋을지 결정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나의 가족에 국한하여' 행복한 고민이었다. 시누이와 시어머니까지 만족시킬만한 선택은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내게 배분된 역할은 아주 마음이 놓이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 네 명만 만족시키면 될 일이었다. 그래봤자일곱살과초등학생들이었다.
도시락 돌려막기
같이 살고 있는 두 명의 아이들은 이미 임상 실험을 통해 만족도 파악이 끝났고, 조카들의 난이도는 높지 않았다. 워킹맘인 데다 조카들 교육 스케줄 뒷바라지에 바쁜 나니는 예쁜 도시락을 만들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소풍 도시락을 싸느라 구매했던 주먹밥 틀 세트는 매우 유용했다. 특별할 것 없는 재료였지만 아이들은 맛있게 먹어주었다. 특히 평소 입이 짧은 조카는 매일 도시락을 비워주었다.
"숙모 솜씨가 좋던데요?"
결코 만만하지 않은 나니의 딸, 어물쩍 넘어가는 게 통하지 않는3학년 조카에게 인정받았다.나는 단연코 요리솜씨가 좋지 않다.숙소에서 국까지 담당했던나니의 국물 맛이 훨씬 좋았다. 그럼에도 겉보기에 예쁜 숙모의 정성을 아이들이 먹어준 것이다. 심지어 우리 아이들은 남기기도 했다. 평소에 먹는 양으로는 뒤지지 않는데 여러 번 먹으니 물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남긴 게 우리 아이들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숙소 근처에 있던 페이레스 마켓
숙소 근처의 마켓에서 거의 매일 장을 보는 일상은나쁘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이마트와 홈플러스조차 자주 가지 않던 나였다. 대형마트는 한 번만 들어갔다 나와도 기가 빨리고 진이 빠졌기 때문이다. 어차피 요리해 먹는 음식 메뉴는 정해져 있는데 무슨 물건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매대에서 매대로 이동하는 나의 발에도 카트처럼 발이 달렸으면, 카트가 나를 끌고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딸아이 친구 엄마는 고기는 정육점에서, 과일은 과일가게에서, 나머지는 마트에서 장을 볼 정도로 식재료에 깐깐한 반면 나는 집 근처 동네 마트에서 배달 가능한 최소금액을맞춰서 장보기를 고수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땐 쿠팡 로켓배송을 이용했다. 내게 장보기를 비롯한 쇼핑은 가계 사정상 넘어서기 힘든 수많은 선택지를 들이미는 유혹이었으나, 여덟명이 먹을 식재료를 구매하는 일은 양에서부터 나의 통을 크게 만들었다.
괌에서의 생활비는 미리 책정했기에 하루의 최대 결제금액은 정해져 있었지만, 어쨌든 평소 내가 지출하던 4인 가족의 비용을 넘어선 큰 금액이었다. 내가 다 먹을 것도 아닌데 그저 신이 났다.어느새 장보기는 일상이 되어익숙해졌다. 들어서자마자 나까지 신선식품으로 취급하듯빵빵하던 마켓의 에어컨 바람까지도.
언제나 그렇듯 시어머니나 시누이는 내게 큰 것을 바라지 않았다. 오직 남편만이 내게 자잘하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느낄 뿐이다. 손이 많이 가는 남편이지만 그렇다고 손을 많이 뻗치지는 않는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주되 가정 안에서도 어느 정도는 각자도생의 삶을 꾸리고 있었다. 문제는 가족여행 중 그것이 정 없는 모습으로 비칠까 염려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들 사랑이 지극한 시어머니와 하나뿐인 오빠의 동생인 시누이가, 내가 남편에게 살갑지 않은 모습을 달가워할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괌 공항에 도착한 첫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나는 남편을 감싸고 돌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