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는 손절했다. 대신 위기를 기회로 뒤집으리라는 강한 포부와 함께. 올해 초부터 나는 육아휴직과 함께 무급생활을 시작하며 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던 참이었다. 돈이 없으면 무엇도 못 하리라는 경직된 사고방식을 버리기로, 무급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돈과 시간의 노예처럼 살지 않기로, 또한 돈이 없어 못 하더라도 자족하는 삶을 살기로, 부는 없더라도 부요함을 누리며 살기로 매일같이 다짐하던 중이었다.
매일 가진 못했던 괌 숙소 내 헬스장. 왜 매일 가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풍경이다.
실제로 나는 체력증진을 위한 운동과 독서를 매일 하면서, 올해 초부터 옷 한 벌 사 입지 않고도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무급의 기간을 보낸다는 것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일과 같았다. 나는 하루하루를 아껴놓은 달콤한 캐러멜을 까먹듯 입 안에서 살살 녹여가며 음미하고 있었다.
그러다 맞이하게 된 괌이라는 기회는, 역설적으로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다면 붙잡지 못할 기회였다. 자녀 입시에 대한 로드맵을 이미 완성한 나니는 초등학교 5학년인 첫째 조카가 중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해외여행은 접을 예정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예정대로 복직을 한다면 향후 2년 안에 만족도 5점 만점에 5점, 별 다섯 개인 '나니투어'로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조카와 1학년인 나의 딸은 특히나 사이가 좋았다. 그러나 곧 사춘기가 시작되면 데면데면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보고 배울 것이 많은 조카들과 어린 시절에라도 많이 어울리게 해주고 싶었다. 낯선 땅에서 같이 캠프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서로 의지가 될 터였다.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나니의 열정을 발끝이라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오랜 방황 끝에 나의 꿈을 찾은 것까지는 좋은데, 나의 시선과 손길이 아이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하는 게 내심 미안했기 때문이다.
헬스장과 붙어있던 수영장. 아이들은 캠프에 다녀오면 매일 노을이 질 때까지 수영을 했다.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나니의 마음과 실제적인 노력들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게 많은 도전과 자극이 되었다. 이십 대 시절 치열한 노력 끝에 어려운 고시를 패스하고 자신의 뜻을 이뤄낸 그녀는, 그 열심과 헌신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옮겨놓는 중이었다. 총량의 법칙에 따라 한 박자 늦은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나로서는 똑같이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에게 여러 교차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돈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는 기회로 여겨지는 괌이었다. 여기서 주식 수익률이 더 마이너스로 떨어지거나 혹은 오른다 하더라도 시간이 없다면 괌은 결코 붙잡지 못할 기회였다. 붙들고 있다면 당장 손해는 안 보겠지만 날려버린 기회는 손해일까 아닐까. 처음부터 계획에 없었던 선택지였기에 손해는 아닐 것이 분명했는데도, 놓치기 아까운 기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돈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시간이 있음에도 못한다'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마침내 결정했다. 벗어나지 못하던 고정관념과 손절할타이밍이었다. 마음속으로만 그려보던 돈에 대한 자유를 실현시키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자유를 위한 탕진이 아니었다. 쥐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돈에 대한 담대함, 가지고 있어도 돈에 묶여서 못 쓰는 시간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겸허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