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가 남편을 통해 제안을 해왔다. 작년 겨울, 필리핀 영어캠프에 조카들을 데리고 다녀온 후 만족도가 높았다는 이야기는 직접 전해 들었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영어실력이 제법인 조카들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자녀들을 데리고 고생하며 다녀온 시누이의 열정이 그저 대단하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나의 시누이(이하 나니, 대한민국 사회에서 시누이는 어감이 좋지 않아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좋다.)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뭍밑으로는 끊임없이 발을 동동 구르는 백조와도 같다. 뒤따라오는 자녀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앞장서서 헤엄치며 물살을 가르고 방향을 내어주는 엄마 백조 말이다. 조카들을 위한 그 여정에 이번에는 어머님과 우리 식구가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모든 것은 넓은 숙소로부터 시작했다. 괌에서 우리가 머물렀던 SUMMER TOWER2
결혼 후 시댁 식구들과의여행은꽤 많이 한 편이었지만 이번 건은 스케일이 달랐다. 첫 번째로 다른 점은 아이들의 캠프 일정으로 인해 보통의 여행보다 체류 기간이 길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그만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이었다. 이미 여름 캠프를 작정하고 알아보던 나니는, 넓고 좋은 숙소가 저렴한가격에 나온 것을 보고 우리에게까지 제안을 해 온 것이다.
캠프는커녕 괌에 가볼 생각조차도 안 하고 있던 우리는 이것이 과연 우리의선택지에 포함될 일인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무급휴직 중이었고, 남은 기간 동안 최대한 생활비를 아끼다가 복직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가 비싸고 싼 것인지, 된장인지 고추장인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나니는 완성된 요리의 냄새를 풍겼다.
나는 생각했다. 우선 A부터 Z까지 내가 계획해서 아이들을 영어캠프에 참여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복직한다면 이렇게 긴 휴가를 떠날 수는 없을 것이다.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팀원들의 평균 여름휴가일자는 연속 3일, 보직자도 5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올해는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여러 번의 여행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나니는 믿을 만한 여행 가이드였다. 여행사를 차렸다면 꽤 성공했으리라 확신할 정도로, 우리는 그녀와 함께 하는 여행에 늘 만족했다. 우리는 그녀의 기획력과 통솔력을 재능이라고 생각했고, 그녀는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가족 모두를 위해 앞장서서 미리 알아보고 예약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했다.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그녀의 선택에 나는 늘 감탄했고, 우리는 그녀와 함께 하는 여행을 그녀의 이름을 본떠서 '나니투어'라고 불렀다.나니투어는 항상 별점 다섯 개였다.
'이건 기회다!'
나니가 제시한 요리의 레시피를 보고 우리의 가슴은 단번에 부풀어 올랐다. 모든 시의성과 의미를 갖다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물려있던 주식을 건드리지 말고 잘 버텨보려던 계획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것은 위기일까, 기회일까. 아무리 봐도 기회가 맞는데, 돈 앞에서만큼은 모든 게 위기처럼 보였다. 차트를 매일매일 째려봐도 수익률은 마이너스 30퍼센트를 넘어가고 있었다.
사업을 하는 나니네와 우리는 가계 사정이 같지 않았기에, 2박 3일 국내여행은 그럭저럭 같이 다녔어도 2주 가까이 되는 해외여행과 캠프까지 같이 참여시킨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단 말은 들어봤는데, 물길을 가르는 백조 뒤를 따라가도 되는 걸까 자꾸만 고민이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