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김정태라는 분이 책을 출간하고 학교에 와서 강연을 해주셨다. 강연의 내용은 그분이 쓴 책의 제목과 같았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지방국립대에 다니고 있던 나는 그 책의 제목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스펙으로 치자면 내세울 것 없는 처지이기도 했고, 스토리는 내가 좋아하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들었던 강연과 책은 내게 꽤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정말로 스토리가 강성하는 시대가 왔다.
내가 브런치 스토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에세이의 가치를 알아봐 주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용기 있게 드러내며 담담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다. 에세이를 가장 좋아하고 가장 쓰길 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예술혼을 불태운 시나 소설 등의 문학작품들 앞에서 작아지는 마음이 있었다. 자격지심이었다.
어떤 글이든 둥둥 떠다니는 생각과 감정을 낚아내고, 문자로 표현하고,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기까지 고민 없이 탄생하는 글은 없다. 기본적으로 자기 검열의 과정이 있고, 나는 여기서 김종원 작가님이 강조하신 '글을 읽는 사람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담는다. 이것은 감성적인 마음만은 아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수많은 실용서의 저자들에게서도 나는 이 마음을 읽는다.
그러므로 문학적 가치를 떠나, 장르를 떠나, 글을 쓰는 과정에서 메시지와 읽는 사람을 충분히 고민하고 고려했다면 당당해도 된다는 결론을 냈다. 그리고 브런치에서 만난 수많은 스토리들이 나의 결론을 지지해 주었다. 확신을 얻게 되었다.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나의 스토리가 종이책으로 출간된다면? 잠시 즐겁고 난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다음 책을 준비하게 될까? 다음 기회가 또 있을까? 나는 왜 세상에 나의 스토리를 들려주고 싶은가? 내가 궁극적으로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작가의 삶은 어떨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내가 추구하는 작가의 모습은, 노트북 앞에서 머리를 싸매고 한껏 신경이 곤두선 채 글자를 노려보는 모습이 아니다. 마감이 일상인 인기 작가라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은 좋아하는 것과 업이 일치하는 자의 숙명이리라.
작가의 삶보다도 그저 매일 쓰는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순간 내 영혼은 가벼워졌다. 글을 매일 완성하여 발행하지 못할지라도 한 줄이라도 내 안에서 꺼내 쓰는 삶. 임시저장된 내 서랍 속 글 한 줄은, 길을 잃은 어느 날 따라가 보기 좋은 소풍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소풍 준비물은 핸드폰과 손가락이면 충분하다.
발간한 책이 발견되는 것, 그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추구하는 가치가 일치하는 것, 그것에서 오는 감동은 어떤 모양일까.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 꼭 나와 같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글이지만, 그 속에서도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반갑다. 어쩌면 나도 모르고 있던, 잊고 있던, 외면하고 있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어떤 글이 브런치 스토리팀에게 발견될지 모르겠다. 어떤 글이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Pixabay, Lubos Hous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