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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Sep 24. 2024

가난을 가난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내가 정말 두려운 것은


와플대학 대표인 손정희 장로님의 인터뷰를 들었다. 분투해 오신 의 여정 앞 마음까지 절로 낮아진다. 빨래를 개다가 낮은 마음을 생각한다. 낮은 마음은 낮은 처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가난한 처지였을  다니던 교회의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섬김을 실천했던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나의 엄마를 생각했다. 내가 봤던 엄마의 부지런한 모습이었다.


결혼 이후 내가 가장 하기 싫었던 은 설거지였다. 나의 엄마는 설거지를 하며 자주 우셨다. 아마도 가족들에게 등 돌린 채 뒤돌아선 상태에서 옛날을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내가 설거지를 하다 보니 그랬다. 단순 노동에 가까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자주 상념에 젖었고, 설거지를 하며 울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며 우셨을까. 지금 나의 주방보다 훨씬 더럽고 열악했던 엄마의 주방에서, 낡은 싱크대 앞에 선 엄마는, 아궁이와 샘 곁에 쪼그려 앉은 자신의 열일곱 시절을 떠올리진 않았을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여덟 명의 형제 중 유일한 여자로서 식모같이 살다가 겨우 꾸린 가정에서도 그녀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가 다니던 기관의 행사 날, 아이가 부모를 칭찬하는 시간에 공교롭게도 나는 '뽀드득 설거지상'을 받았다. 매일 우리를 위해 밥그릇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엄마에게 아이가 주는 상이었다. 딸아이는 왜 하필 그 부분을 칭찬하고 싶었을까.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참고 하는 게 티가 났던 걸까. 아니면 설거지하는 나의 뒷모습이 딸의 눈에도 쓸쓸해 보였던 걸까. 그래서 격려해주고 싶었던 걸까. 여러 마음이 교차했지만 아이가 주는 상을 기쁘게 받았다.


지금은 작은 6인용 식기세척기를 들여놓았고, 설거지타임을 위한 유튜브 재생 목록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 집안일을 활기차게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설거지를 통해 그릇은 깨끗하게 할 수 있어도 내 마음까지 깨끗해지진 못했다. 달그락달그락, 설거지를 할수록 내 마음에 무엇인가 자꾸만 부딪혀 소리를 내었다. 외부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잠시 그것을 잠재울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답은 내 안에 있기도 하지만 답이 없거나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뿌리 깊은 관성 때문에, 마음에 이미  길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시선을 외부로 옮겨보는 것도 좋다. 좋은 것을 보고 듣고 건강해진 시선은 결국엔 내게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자연스레 낮은 마음을 갖게 된다. 가난한 자가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를 갖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것은 단순히 모아둔 재산이 별로 없는 것과는 다르다. 모아둔 재산이 없는 대신 사회적인 명예를 가진, 그로 인해 먹고살 만한 형편은 되는, 예컨대 종교시설에 소속된 목사님이나 스님 혹은 공식적으로 재산이 29만 원인 정치인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철저하게 자본주의 논리를 적용받는 노동자와 소시민들돈을 버는 과정에서 사회적 풍파를 뭇매처럼 맞을 수밖에 없다. 명예는커녕 자존심도 지켜낼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의 유무에 따라, 즉 경제적 수준차이에 따라 사회적 계급이 엄연히 존재한다. 가난을 겪어본 자는 안다. 그래서 마음에서까지 높낮이를 재고 싶진 않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과 마음이 낮아지는 것에는 상당히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다만 마음에 있어서만큼은 낮을수록 유익하. 이러한 이유로 성경에서도 말하기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했나 보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마음도 높아질 수밖에 없기에.


그러나 가난하다고 해서 마음이 낮은 것은 아니다. 부유하다고 해서 늘 마음이 높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낮은 마음은 어떻게 갖게 되고 유지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부자도 낮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낮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은 낮은 마음이 아니라 가난한 마음이다. 낮고 높음은 그것을 가르는 기준이 있다. 즉 상대적 개념이다. 사전적으로 가난은,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하여 몸과 마음이 괴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특히 정신적으로 나를 먹이는 마음의 양식이 궁핍하여 괴로운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시소처럼 잠시 낮아졌다가 다시 높아지는 마음이 아닌, 채움이 간절한 궁핍의 상태가 복되다 하셨다. 가난하고 배고플 때 음식이 귀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이 가난할 때 우리는 가벼이 여겼던 가치들을 발견하게 된다. 물질세계에서 가난하고 돈이 궁하면 돈을 좇겠지만, 마음이 가난한 상태에서는 '진짜'를 찾는다. 배고프다 하여 허겁지겁 주워 먹다가도, '진짜'로 채워지지 않는 이상 체하고 게워내길 반복할 뿐이다. '진짜'를 찾는 가난한 심령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물질세계에서 부유해도 마음이 가난할 수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마음까지 부를 것이다. 영어성경에서 '의'는 righteousness라고 기재되었다. 이는 정직, 정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다는 것은 정의를 구하는 마음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 정의 앞에서 나의 불의까지도 심판받길 각오하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나를 둘러싼 세계뿐만 아니라 내가 정직하게 바로 서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의를 구할 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하셨기 때문이다. 배부를 것이라 하셨기 때문이다. 정의의 심판대 앞에서 불의한 내가 멸망해야 마땅하나, 대속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나는 의롭게 되고, 심지어 굶주림과 목마름까지도 해결된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것을 믿고 바라고 구하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가난하면 이 땅에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적어지기에, 높은 확률로 마음까지도 가난해질 수 있다. 그러나 진수성찬이 차려졌어도 먹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일까. 마음이 가난하여 바라본 천국이 이미 나의 소유라 해도, 당장 마음이 부르지 않는다면 천국을 누리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무엇으로 나를 채우고 있는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가. 아니면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음식과, 해갈이 되지 않는 다디단 음료만 들이켜고 있진 않은가.


물질이 가난하고 마음이 가난해도 의에 주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물질적 가난은 굳이 경험할 필요도 없지만, 경험했다면 가난이 가난으로 끝나게 해서는 안된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의 가난까지 겪어야 하며, 가짜로 배부른 느낌이 아닌 내 영혼을 영양으로 가득 채우고 찌우는 진짜 배부름을 경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생 앞에 정직해야만 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말이 아닌 삶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가치일 것이다.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돈이 없거나 능력이 없어서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 너는 이미 천국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 그러나 반드시 그것을 누려야만 너의 삶이 풍성해질 수 있단다. 사탕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실제로 먹어보는 것이 다르듯이 말이야. 그런데 밥을 먹어야 할 때 간식거리로만 군것질을 하면 충분히 배부를 수 없겠지? 배고프다고 해서 대충 때우거나 아무거나 먹게 되면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어. 그러니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정직하게 너의 것을 채워가도록 하렴. 할 수 있다는 믿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정직하게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서 말이야. 그러나 무엇보다 네 자신을 속이지 않도록 조심하렴. 네가 그것을 정말 믿는다면, 자연스럽게 그에 맞는 행동이 뒤따르게 된단다. "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파란색으로 표기한 부분은 성경의 각 본문을 인용하였습니다.


* 이 글은 신학적인 해석과는 무관합니다. 책의 문장을 사색하듯 한글로 번역된 성경구절을 묵상해 본 기록입니다. 단어별 뜻과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원하신다면 성경의 원문(헬라어)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사진 출처: Pixabay, Gretta Blanke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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