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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Sep 22. 2024

친구가 없는 이유

나눠주는 여유, 기다리는 여유


엄마는 친구가 없었다. 나도 지금 시점에선 친구가 많지는 않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족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한정된 시간과 물질은 가족에게 쓸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에 대한 부침마저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날마다 마주하는 부부관계와 일상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유부맘은 벅차다. 작년쯤 처음으로 직장에서 인간관계로 인한 마음고생과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반대로 그만큼 직장과 가정생활이 안정되었구나 싶었다. 그동안 우정을 비롯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사치로 여겨질 만큼 나의 일상은 퍽이나 퍽퍽했다.


엄마는 일생이 퍽퍽했다. 친구도 사람노릇을 할 수 있어야 만나는 거라고 했다. 사람노릇이란 밥을 한 번씩 사고, 때마다 경조사를 챙기는 일을 의미했다. 아픈 제 새끼를 제 때 병원에 데려가는 일조차 버거웠던 그녀에게 친구를 챙기는 일은 분수에 넘쳤을 것이다. 그런 자신의 사정을 친구에게 보이것부터, 과거와는 완전히 딴판이 되어버린 외모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꺼려졌을 것이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변하게 했는지 묻는다면 그것은 가난과 우울이었다. 누구든 그녀를 만난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친구를 만나는 일은 그녀에게 사치이자 수치였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좀체 친구를 만나러 가는 일없었다.


"친구는 나중 가면 다 필요 없어."


엄마는 자주 친구 무용론을 펼치곤 했다. 그것은 사실 친구라는 존재가 인생 자체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었다. 엄마의 인생에 한정하여, 한정된 자원을 친구에게 나눠줄 여유가 없다는 말이었다. '안 주고 안 받기'는 엄마가 자주 외치는 구호였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라는 것을 엄마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지킬 수 없으면 관계도 지켜낼 수 없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그녀의 삶에서 친구 무용론은 점점 더 공고해져 갔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유로 친구가 별로 없는 남편을 만났다. 결혼 후에도 친구를 만나러 가는 일이 거의 없다. 뭐든지 가족과 함께 하는 남편이라 서로 의지하며 두 아이를 육아할 수 있었다. 사실상 남편과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이니,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온전히 한마음이 될 수 있는 베스트프렌드였다. 그렇게 나도 친구 무용론을 받아들이게 되나 싶었다. 자원의 한정성은 내게도 어느 정도 해당되지만, 그것보다도 인생의 가치관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는 것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었다. 


물질의 가치와 지식의 가치와 노동의 가치가 신앙의 가치보다 높다 말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개별적 가치를 깨달아가고 있던 나는 신앙의 길을 걷는 친구에게 그 가치를 제대로 전달할 길이 없었다. 삶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을 나눌 뿐인데 친구는 나를 검증하려 들고, 나는 친구를 이해시키거나 공감을 얻기 위해 변명하듯 변증해야 하는 상황이 마뜩잖았다. 사역자와 평신도로서 가는 길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는 결론을 내보았지만, 우리는 천성을 향하여 가는 성도 아니던가. 가는 길이 다를 리 없다. 다만 우리 모두 배움의 과정에 있을 뿐이다. 친구 사이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내가 듣고 싶던 말, 네게 하고 싶은 말》


"친구는 인생에서 꼭 필요한 존재야. 친구는 소중한 거란다. 같은 반 아이와 친구는 달라. 같은 반 아이 모두와 친구가 될 수는 있지만, 서로 소중히 여기기로 약속하고 친구가 되는 거야. 그러니까 친구가 많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소중하게 여기겠다는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가 중요한 거야. 너부터 친구에게 그 약속을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만약 친구가 너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거나 함부로 대한다면 꼭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해. 말하지 않으면 모를 수 있거든. 속상하고 서운하거나 기분 나쁘다고 해서 말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돌아서지는 마. 친구에게 내 마음을 받아들이고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약속을 지키는 거야. 친구 사이에는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단다."



*사진 출처: Pixabay, Мария Ткачу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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