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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Nov 07. 2024

나와 글 사이의 여백이 부족해서

내가 에세이를 쓰는 이유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가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슬쩍 댓글을 달게 된다. 가볍게는 응원글부터 나눔글까지. 나눔글은 글에 대한 내 마음까지 적는 것인데, 마음을 나누다 보면 진심이 툭 튀어나올 적도 있다.


아직은 문장마저 줄이고 싶지 않다는 허사이 작가님의 문장에 먼저 마음이 움직이고 손가락이 움직였다. 댓글을 남기며 나도 몰랐던 나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아직은 문장마저 줄이지 않고 싶다는 표현이 좋네요. 저도 아직은 있는 그대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에세이를 쓰다 보면 나와 글 사이에 조금은 더 여백이 있는, 시와 소설도 써보게 될 날이 올까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에세이는 다른 것을 특별히 고려하지 않고서도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시의 함축적인 표현이라던지, 소설의 캐릭터라던지 글에서 기능하는 장치적인 요소들까지 고려한다는 것은 아직 내겐 역부족이다. 마음을 구석구석 살피며 받아쓰기하듯 적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에세이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쓸 수 있는 건 에세이밖에 없어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좁은 선택지 안에서조차 기호를 담을 수 없는 불행이 만연하기에, 나는 감사하고 만족하며 에세이를 쓰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정여울 작가님이 말하길 에세이스트는 시인의 언어적 감각, 소설가의 스토리텔링, 칼럼니스트의 순발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아우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에세이를 진정으로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장르도 잘 쓸 수 있다고.


시인에게는 단 몇 줄의 문장만으로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결정적 장면을 포착해 낼 수 있는 언어의 연금술이 필요하지요. 소설가에게는 이야기를 통해 끝내 진실로 가닿을 수 있다는 믿음과 엄청난 끈기, 캐릭터와 스토리를 조각해 낼 수 있는 관찰력과 상상력, '이런 이야기가 사랑받을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싸울 수 있는 대담함이 필요하고요. 칼럼니스트에게는 그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글감을 찾아내는 뛰어난 순발력과 현실세계에 늘 깊이 발을 들여놓는 참여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에세이스트는 이 모든 걸 갖춰야 하지요.
-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78-79p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다면 나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백이 부족한 거라고 믿어도 되겠다. 나와 글 사이의 여백이. 에세이는 글쓴이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작가와의 거리가 좁은 장르다.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에세이를 쓴다. 자칫 일기로만 끝날 수 있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을 에세이로 쓸 수 있는 것은, 글을 통해 이끌어낸 내 삶의 의미가 누군가에게도 유의미하길 바란다는 것. 그 바람을 실현시키고자 꿋꿋하게 에세이를 쓰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굳세게 살아내고자.


에세이를 통해 마음을 쓰고 꺼내놓고 휘발시키며 그 안에 있는 짐들을 덜어내고 나면, 글에도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될까. 글을 통해 있는 그대로를 쏟아놓고 배열하는 마음에 대한 고민이, 어떤 메시지와 세계관에 대한 고민으로 뻗어나가고, 단어와 문장같이 글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깊어질 수 있을까.


에세이책만 줄곧 써오던 고수리 작가님이 소설책을 써냈다. 그녀처럼 에세이책을 펴낸 적도 없건만 왠지 용기가 났다. 그러니 어떤 글이든 스스로 경계 짓지 않기로 했다. 다만 능력치에 대한 한계가 아닌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방법의 선택이라고. 아직은 나와 글 사이에 조금의 여백도 허락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라고. 시와 소설, 그리고 특별히 에세이를 쓰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 밑줄 문장 출처: 허사이 작가님의 브런치북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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