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Nov 13. 2024

조용한 세계에 살지만 시끄러운 사람


나의 아버지에게는 귀가 잘 안 들린다는 핸디캡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유난히 말소리가 작았다. 아빠의 청력은 장애라고 하기에는 애매했지만 소통에는 크고 작은 장애가 있었다. 청력이 약해서인지 그는 목소리가 컸다. 대화할 땐 으레 으어? 하는 말로 되물었다. 나는 그 자체로 답답함을 느꼈지만, 어렸을 땐 그저 아빠의 나이가 많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김창옥 강사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와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공교롭게도 강사님 또한 아버지의 청력 장애로 인한 소통의 부재를 겪었다. 불통을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경험한 그는 그것에서 오는 좌절감을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 같다고 표현했다. 나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내가 그간 아버지를 마음껏 미워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아주 가끔 찾아왔던, 네 명이 한 방에 모인 자리에서 함께 티브이를 보던 시간. 대부분의 날들은 사극 드라마를 좋아하던 그가 티브이를 독차지했고 우리는 볼멘소리를 하며 작은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이 결방할 때나, 세 모녀가 힘을 합쳐 시위할 때나 마련되었던 시간.


티브이를 보며 우리가 한 마디씩 던질 때 그는 또다시 어? 하며 되물었다. 그러나 티브이 프로그램의 전개를 따라가느라 세 모녀 중 누구도 그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는 그저 가족이 함께 모여 있는 시간이 내심 좋았는지 엷은 미소를 띤 채 화면을 응시했다. 아빠 볼륨에 맞추기엔 소리가 너무 컸기에, 우리의 볼륨에 맞춰놓아서 잘 들리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티브이를 바라보며. 그는 그렇게 조용히 우리를 들어주었다.


가끔 생각했다. 그의 외로움에 대해. 권위가 추락한 가장의 무게에 대해. 잘 들리지 않던 그의 세상에 대해. 무지하고 몽매하여 답답했을 그의 인생에 대해.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그의 주변은 시끄러웠다. 그가 집에 오면 매일 틀어놓던 티브이 소리도, 그와 통화하는 전화기 너머의 사람들도, 그의 옆에 있던 엄마도 목소리가 커졌다. 물론 엄마는 그의 답답한 처사 때문에 더 목소리를 높였던 것 같지만. 나는 내 목소리를 높이면서까지 그와 소통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힘을 들여 말을 하더라도 말이 통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 내가 엄마와 대화하는 중 그가 되묻는 말들에 대해 나는 별것 아니라고 하거나, 그와 둘이 있을 땐 아예 말을 걸지 않았다. 그 모든 과정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대화에 종종 끼고 싶어 했으나 자주 소외되었다.


되묻는 데에도 어느 정도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는 걸 직장생활을 하며 알았다. 나는 청력에 문제가 없었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되물을 땐 상대의 수고로움과 그것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나 스스로에 대해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도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건, 무시당할 걸 알면서도 되묻고 더듬어갈 수밖에 없었던 건 내게 맡겨진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 정도 책임감이 없이는 직장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인분이든 0.8인분이든 나의 몫을 다해내는 것, 그 과정에서 나는 적어도 알은체나 변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빠가 대화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딴소리를 할 때 우리는 자주 그를 무시했다. 모르면서 알은체 하는 그의 허세가 싫었고, 버스도 제대로 타고 내리지 못해서 비싼 요금의 택시만 타고 다니던 그의 행세가 싫었다. 몇백 원에 벌벌 떨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고, 버스비를 아끼려고 무거운 식자재를 들고 오던 엄마와 너무나 대조적이라서.


그것이 자신의 부주의함과 부족한 방향 감각, 인지능력을 숨기기 위한 행동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와 많이 닮아있던 나는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다가와 으어? 하고 되물었던 건, 나를 향한 그의 관심에서 비롯된 물음이었을까. 내가 당신을 무시하는 걸 알면서도, 또다시 무시당할 걸 알면서도 나를 알고자 했던 의지였을까.


당시 나이로 마흔 가까이에 결혼을 하고, 자녀를 기르며 쉰이 되고 예순이 되고 일흔이 넘는 동안 내가 본 아빠의 변화는 할아버지에서 좀 더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언니를 손찌검하던 시절의 꼿꼿하고 엄하던 아버지는 어디로 가고 실없이 자주 너털웃음을 짓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나는 너무 일찍 힘이 빠져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슬픈 마음이 들었다. 늙어버린 그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한 시절이라도 아버지라는 존재에 기댈  없었던 내가 가엾기도 했. 그는 있는 힘껏 불어보아도 어딘지 바람이 새서 부풀어 오르지 않는 풍선 같았다. 한껏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르다 터져버린 풍선은 아니었다. 풍선의 형태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그 기능을 하지 못한 풍선이었다. 적당히 부풀어서 통통 튕겨가며 추억을 만들 새도 없이 바람이 빠져버린 풍선과도 같았다. 그는 내가 기댈 새도 없이 너무 일찍 늙어버렸다.



* 사진 출처: Unsplash

이전 07화 내가 생각하는 가장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