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이 없다. 엄마가 요청해서 간간이 아이들 사진만 아빠의 카톡으로 전송한 게 다였다. 나도 사진을 보낼 때 별다른 문자를 쓰지 않는다. 전화 통화도 주로 엄마와만 하는 편이다. 청각이 좋지 않은 아빠는 목소리한질라 큰데,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작았던 나는 큰 소리를 싫어하는 탓에 적극적으로 소통을 시도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 '한질라'는 '조차'라는 뜻의 방언이다. 아빠를 표현하는 엄마의 말습관이다.)
그런데 아빠가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문자는 없지만 수신된 한 장의 사진에는 엄마와 언니와 내가 담겨 있었다. 추석 연휴에 언니네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어설픈 구도에 누구 하나 잘 나온 사람은 없건만 아빠의 시선이 투영된 사진에 마음이 뭉클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순간이 아빠의 마음에 담고 싶었던 장면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부모님이 사는 집은 우리가 모일 수 없는 환경이다. 어릴 적부터 친구를 데려갈 수 없을 정도로 정돈되지 않은 데다 고물과 쓰레기가 가득한 집이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엄마의 저장강박증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는데, 결혼생활 전반적으로 엄마에게 극한의 경제적 궁핍을 경험하게 한 아빠는 함께 사는 동안 톡톡히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을 독립이라기보단 탈출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우리는 그 집에 사는 동안 힘들었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산다는 건 익숙해지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자기 살림이라는 이유로 무엇 하나 버릴 수 없게 하던 엄마는, 내가 몰래 처분한 물건들도 처키의 인형처럼 다시 갖다 놓기 일쑤였다. 어린 시절 봤던 그 영화의 주인공이 공포라는 감정만 느끼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갖다 버리고 불에 태워도 다시 나의 공간에 나타나는 존재. 앞으로도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 나 혼자만 노력해서 바뀔 수 없는 환경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절망에 가까운 공포다.
나의 경우엔 그것이 지독한 무기력과 우울로 이어졌다. 물건을 정돈하거나 쓸고 닦아 청소하면 깨끗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도 우리 집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벽면에 핀 곰팡이와 빗물 샌 자국, 밤이 되면 어디선가 기어 나오는 검은 벌레들은 내가 감히 손을 댈 수 없으면서도 매일 바라보고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부모님은 환경을 개선해 볼 의지가 없었고, 가구와 쌓인 물건들을 모두 들어내고 방역해야 할 수준의 집에서 나는 겨우 발디디고 몸을 누이며 살았다.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 백일 동안 집에서만 지냈던 겨울, 찬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꼭꼭 닫아두었던 안방 구석에 곰팡이가 피었다. 환기를 제때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다. 눈에 보이는 건 이만큼이지만 벽을 뜯어보면 더 많이 퍼져있을 거라고 했다. 남편과 아이를 시댁에 보내놓고 지물사에 가서 초배지와 도배 풀을 사 와 모서리 벽면을 모두 뜯어냈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곰팡이균을 박박 지웠다. 분무기에 락스 물을 넣고 뿌리고 말리기를 반복했다. 이사 올 때 업체가 남기고 간 도배지까지 붙이자 감쪽같아졌다. 힘들었지만 뿌듯했다.
버젓이 보이는데도 방치했던 탓에 내 마음에 아직도 까맣게 남아있는 엄마 집의 곰팡이를 생각하며, 그 지긋지긋한 곰팡이 균이 이 집에서는 절대 살아남지 못하게 할 각오로, 씨를 말릴 기세로 하루를 꼬박 씨름한 끝에 지금까지도 안방의 모서리 벽면은 깨끗하다. 내 삶에는 여전히 이렇게 뜯어내고 닦아내야 할 부분이 남아있지만 더 이상 그때만큼 무력하진 않다. 안방의 모서리를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그 한 부분을 위해 스무 배가 넘는 면적을 뜯어낸 건 아주 잘한 일이었다고. 나는 그것을 혼자서 덧붙이고 마무리했다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아빠의 사진 메시지에 대한 화답으로 아이들 사진과, 연휴에 찍었던 늦은 생신축하파티 사진을 보내드렸다. 혹시라도 사진 폭탄에 묻힐까 싶어서 아빠가 보내준 사진에 대한 소감은 제일 마지막에 덧붙였다. 지금까지도 나의 문자 메시지에 대한 답은 없지만 확인하셨으니 되었다. 아빠의 사진은 내 핸드폰에 담긴 부모님의 사진과 함께 고스란히 가족밴드에 업로드되었다. 9년 전에 내가 개설한 가족밴드의 멤버는 나와 언니뿐이고, 지금은 나만 이용하고 있지만 괜찮다. 그곳에 저장되는 건 우리 모두니까.
좋은 환경에 깔끔한 주방을 갖춘 언니네 집으로 모일 수 있게 공간을 내어준 형부와 언니에게도 감사했다. 친구를 데려오는 건 고사하고, 아무리 가리려 해도 가려지지 않는 배경 속에서 영상통화는커녕 그곳에 있는 나조차도 거울에 비춰보기 싫었던 심정을 떠올려볼 때, 아빠가 카메라를 들고 저 사진을 찍었던 건 단순히 우리의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안락한 소파에 앉아서 찍어 보낸 아빠의 사진에는 평온한 풍경이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아빠의 편안한 시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