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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Dec 06. 2022

12월의 설렘과 슬픔

우리 집 가풍(사실 없다)은 대체로 낭만보다는 합리주의적 사고를, 미래보다는 현실을, 미신보다는 과학을 추구하는 경향에 가까웠다. 고로 나는 어릴 때부터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는, 아니 존재 자체를 몰랐던 어린아이였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생일이야. 우리와는 상관없지.’

이 말을 했던 게 엄마였던가, 아빠였던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누가 말해도 저렇게 말했을 것 같으니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부처님 오신 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큰 불만 없이 그저 빨간 날이라 좋아하는 어린이에서 똑같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이 내게는 큰 차이가 없었다. 어제와 같은 평범한 하루가 늘 기다리고 있기에 지구가 한 바퀴 빙글빙글 자전하는 24시간. 숫자에 불과했다.

그러다 아뿔싸. 12월의 설렘을 알고 말았다.


스물네 살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면 들뜨고, 조명이 가득한 거리, 쌀쌀한 날씨지만 가벼운 사람들의 발걸음을 보면 나까지 덩달아 설렜다.

정말 단순한 기억 때문에 설렘이 시작됐다. 1년 동안 함께했던 독서 모임원들과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나서 1년을 마무리하는 독서 모임을 했다. 서로에게 책 선물을 하고, 즉흥적으로 이태원에 놀러 가서 예쁜 독립서점과 거리의 상점들과 카페를 들렀다. 그때 처음으로 ‘이게 크리스마스 분위기구나!’ 하고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행복해했던 기억이 나를 12월이 되면 설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오늘도 크리스마스 캐럴 재즈를 듣고 있다. 괜히 설렌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12월이 슬픔만으로 가득했던 날들이 있었다.

2020년의 12월은 어떤 설렘도 느낄 새가 없었다. 유독 마음이 힘든 해였는데, 그럴 때는 연말도 쉽게 흘러가지 않는지, 일이 많아서 연속으로 밤샘 작업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홀로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필 코로나로 끊임없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좁은 원룸에 갇혀 매일 사람도 만나지 않고 일만 하던 때였다. 그러다 생전 흘리지도 않는 코피를 흘리며, ‘내 인생 뭐지.’ 싶었던 회의감이 대기권 밖으로 끝없이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달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가끔 SNS를 볼 때도, TV 프로를 볼 때도, 누구와 연락을 하기만 해도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였다. 다들 12월의 설렘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세상이 설렘과 따뜻함으로 가득할 때 높디높은 트리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짙어져서 슬픈 사람을 먹고 있을 거야.

그렇게 상상했다.


나는 다음 날 일어나고 싶지 않아서 그러기를 바라며 편의점으로 달려가 보드카를 샀다. 그 와중에도 취향에 맞는 맛있는 걸로 골랐다.

남들이 모르게 깊이 잠들었다가 나는 깨어났다.


세상은 너무 아이러니해서 아름다운 순간이 가장 혐오스럽기도,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 아름다울 때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싱글맨>의 대사를 차용함을 밝힌다.)


12월이 설레서 좋지만,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혐오스러운 사람이 어딘가 있을 텐데. 아름다움이 견디기 어려워서 슬픈 사람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나를 비참하게 만든 적이 있을 텐데.

그래도 12월의 설렘이 아름다워서 좋다고, 살다 보면 맘껏 설렐 날이 찾아오리라고 내가 깨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날이 있다.


12월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편안하고 아늑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지.

12월이 슬픈 사람에게는 같이 울자고 해야지.

12월이 아픈 사람에게는 꼭 안아줘야지.

그래서 올해의 12월은 더 설레고 싶다.

친구들에게 내 마음이 전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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