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명을 받고 이름표를 붙이듯 명찰 하나를 늘린다. 아는 것. 이름을 아는 것이 내겐 중요했다.
‘언니는 왜 모든 병명을 언니에게 붙이고 싶어 해?’
병명을 붙였다 뗐다 하는 건 아니라고, 나는 그저 나를 알고 싶을 뿐이라 말하고 싶었는데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가. 나는 옷처럼 우울을 입고, 환자 행세를 하며 대접받고 싶은 걸까. 사람들이 나를 약자로 소중하게 다뤄주길 바라는 걸까.
1.
초등학교 5학년 국어 시간이었을 거다. 장애인에 관련한 작문을 한 뒤 발표를 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원체 수줍음이 많았던 탓에 지목당해 발표한 게 분명했다. “…장애인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도와줘야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자마자 선생님이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에요.” 하고 단호하게 말해서 나는 선 채로 곧 귀에서 증기를 뿜어내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붉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움이라는 연료로 아주 활활 타서 볼이 익어갔던 생생한 기억이 있다.
그렇게 동정은 내 안에서 어렵고 조심스러운 감정이 되었다. 선생님의 지적은, 그 동정 안에 있을 시혜적인 태도와 타인을 불쌍한 존재로 낙인찍는 무례를 향한 것이 틀림없었지만 열두 살의 머리로는 아마 다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생생한 부끄러움은 동정이 나쁜 거라고, 그렇게 알려줬다.
‘그런데 세종대왕님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한글을 만들었다고 그랬는데, 동정은 왜 나쁜 거지?’
구시렁거려봤자 입 밖으로는 한 글자도 튀어나오지 못하는 말이었다. 연민에 대하여 나는 늘 미숙했다.
2.
스무 살, 시골 촌 동네에서 갓 상경한 티를 팍팍 내던 시기, 길가의 노숙자를 보고 혼자 문화 충격을 느꼈다.
사람들은 마치 그가 보이지 않는 유령이라는 듯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스쳐 지나갔고, 바닥에 눌어붙은 껌딱지만큼이나 납작 엎드려 있었음에도 아무도 걸려 넘어지지 않았다. 나는 적선하지도 않으면서 머뭇거렸다. 그냥 지나간다면 내 안에 커다란 무언가가 변할 것 같았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유령 보듯 그를 지나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유령이 되었다.
3.
‘언니는 자기 연민에 휩싸여 있는 것 같아.’
자취방 현관문을 열자마자 불시에 총격전이 시작됐다. 이마에 총알을 맞은 것 같은 충격과 얼얼함이 나를 관통한 순간, 나의 수많은 나쁜 부분 중에 하나만 콕 집어서 나를 저격(정의)한 게 맘에 들지 않았다.
‘아니거든? 난 자기 연민에 휩싸였을 뿐 아니라 자기 학대를 즐기는 데다 존재하는 게 슬퍼서 매일 발을 동동 구르는 미치광이라고.’
그때 이런 유머라도 있어서 받아쳤다면 좋았을 텐데.
‘언니를 너무 연민에 가둬두지 마.’라는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고, ‘자기 연민’이라는 단어만 환청처럼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그리고 내가 우울증이 아닌 것 같다는 말만이.
‘어떤 이의 우울은 죽음으로써 증명되는 걸까.’
극단적이고 슬픈 생각을 했더랬다.
부록. 슬픔
한없이 가벼워서 풍선처럼 붕 떠올라 날아다니고 싶은데 나는 풍선으로 태어나지는 않았나 보다. 무거운 돌로 이루어져서 중력이 자꾸만 끌어당기는 탓에 바닥에 납작 붙어 있다. 나의 중력은 슬픔일 때가 많다.
단단하게 박혀 있는 말뚝처럼 내 중심에 슬픔을 누군가 꽂아 넣어 나를 빚은 것 같다. 조물주가 아무래도 나를 만들 땐 슬픔 80퍼센트 비율로 쏟아붓고는 ‘어, 이게 아닌데…’ 하다가 그냥 태어나게 한 게 분명하다.
저울의 눈금이 슬픔으로 기울어진 인간이라서 기쁨으로 열심히 달려야 한다. 그런데 그게 그리 슬프진 않다. 내 슬픔을 존재에 다 소모해서 그런가.
나는 그저 존재하는 게 슬펐다. 왜 좋은지도 모르고 계속 애정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얘기를 상담받을 때 한 적이 있다. 횡설수설하는 이야기를 긴 인내심으로 들은 끝에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오소리 씨는 존재하는 걸 슬프다고 느끼는 사람이네요.”
나는 그 말을 또 냉큼 주워섬기며 살았다.
에필로그.
나는 연민의 수조에 잘 잠기는 사람이다. 몸을 쇠사슬로 꽁꽁 묶고, 물이 차오르는 수조에서 멋지게 탈출하는 마술사가 되고 싶지만 대개는 물이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탈출하지 못한다. 객석의 관객들이 술렁이며, 마술사가 죽어가는 광경을 당황스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비극의 현장을 제공해버리고 만다.
나의 우울은 대개 그렇게 구질구질하고 어이없는 비극같이 하찮다. 난 클라이맥스에 궁색한 실수를 저지르고 그보다 더 구차한 자기변명을 주절거리는 군색한 사람이다.
실은 내 연민도 그렇다. 대단치도 않아서 옹졸하기 그지없지만 나 하나쯤은 슬프고 연민에 가득 찬 사람이어도 되지 않는가, 세상에 78억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다는데.
나는 존재하는 게 슬프다. 존재가 슬프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이 그지 같은 세상에 태어나서 다들 개고생을 하고 산다냐, 싶다. 그래서 나를 연민하는 것도, 타인을 연민하는 것도 쉬웠다. 그래도 디폴트가 슬픔이어서, 슬픔의 무게 추가 남들보다 묵직해서 열리는 가능성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연민이 연대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의 슬픔을 생각하면 애틋해지니까. 묘하게도 실은 사람을 엄청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어쩌겠는가. 살아 있는 한은 가능성은 열려 있는데. 한때는 괴로웠지만 슬픔도 연민도 그러려니, 내 삶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짧디짧은 연민 3부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