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남편 자랑일 수도 있겠다는 걸 미리 알려둔다. 내가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내 남편은 공부를 잘 했다. 초등학교 때만해도 공부를 그다지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는데 중고등학교에 가서 대한민국 최상위권 성적까지 갔다. 내 사주가 공부를 못 하는 성향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공부를 잘 하고 똑똑한 사람에게 무척이나 끌려서인지 공부 잘 하는 남편이 참으로 멋져보였다. (아닌가? 원래 공부 잘 하면 다 멋진가?)남편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법대를 나온 난 다른 대학은 120학점이 필수 이수학점임에 비해 우린 140학점이 필수 이수학점이었다. 법학과목이 지겨워 타과인정과목으로 들었던 게 경제학원론, 경영학원론, 행정학원론, 마케팅개론, 거시경제 등등이었다. 거기서 경영학원론 과목은 중간고사가 레포트 대체였다. 그 당시도 지지리 공부 못 했던 나는 정말 이 많은 과목을 이겨낼 수 없어서 결국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 SOS를 쳤다. 그 당시 남편이 군대 제대 후 학교에 다니며 바쁘지 않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주제만 알려줬을 뿐인데 꽤나 준수한 글을 써 와서 ‘아, 이게 서울대생의 레포트구나.’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내 성적표에서 정말 보기 드물던 A+라는 학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내가 기말고사를 잘 보거라고 우겨본다. 이미 20년 가까지 지난 일이니 학점을 무르기도 그렇고 그 학점으로 내가 영리행위를 취한 것도 아니니까.(그 성적표를 가지고 입사원서조차 넣어보지 않았다.)
그런 세월을 지나고 남편은 회사에 가서도 계속 공부를 한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공부가 질릴 정도로 공부를 하는 구나. 회사에서 돈을 주고 온 가족과 함께 학비 생활비 월급까지 주면서 공부를 시켰고 이제는 또 다른 교육을 한단다. 자신이 회사에서 부족한 영역이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부분이란다. 남편이 그에 관련된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집에서 아이 보는 나는 인문학 책이나 알지 실무 관련 책이나 용어는 전무하다. 남편이 나름 골라 온 책이 ‘애자일 조직’이란 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금 당장 팀워크를 재설계하라’라는 책이다. 애자일조직은 준 논문이다. 그들이 MBA나 경영 학술적으로 연구한 기업 레포트를 기초로 해서 애자일조직적 관점에서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힌 책이다. 이 책을 꼬박 일주일 들고 있었다. 남편은 이 일 말고도 실무가 더 중요하기에 일단은 내가 읽고 중요한 부분을 인지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책 읽으며 이해하느라 기진맥진한데 다른 책도 읽어보라고 해서 겁 먹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금 당장 팀워크를 재설계하라’라는 책은 매우 실용적일 뿐 아니라 글도 재밌게 쓰셔서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그렇다고 ‘애자일 조직’이란 책을 괴롭고 힘들게 읽었다는 강조의 말은 아님을 미리 얘기해 본다.)
“오늘날과 같이 비즈니스 환경 변화가 심한 적은 없었다. 수많은 조직들이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애쓰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 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시장의 요구에 따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생존에 실패하게 된다.” p.538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회사를 유지해 나가고 뚫고 나가 살아남는 걸 넘어서서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찰을 이 책이 말하고 있다. 더 이상 회사는 공고한 조직이 아니다. 세상이 급변하면서 고객과 국가 정책이 쉼 없이 변화한다. 그렇기에 실패를 두려워해 변화를 지연시키는 것보다 시도하고 실패 원인을 찾아 다른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리더의 자질이다. (이 부분을 읽다가 남편한데 고용주랑 리더랑 다른 거냐고 물었다가 그것도 모르냐며 혼났다.) 회사에 일 하는 사람은 리더의 자질을 보며 이들과 함께 일을 해 나간다. 이들은 운명 공동체다.
출처:게티이미지코리아
예전에는 무한 경쟁으로 등수 체계로 긴장감이 감도는 전쟁터 같은 회사로 많은 효율성을 뽑아낼 수 있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이런 스트레스는 퇴사율과 직원들의 건강만 앗아갈 뿐이다. 이제 직원의 정신적 소속감과 리더가 가진 통솔력으로 왜 이 회사를 위해 일을 하고 변화하며 고객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해 이익 창출해야 하는지에 대해 실질적 용기를 주어야 한다. 또한 직원들 이탈을 막기 위해 압박을 가한다거나 직원은 그저 하나의 물건쯤으로 생각해 이들을 돈 먹는 기계 중 하나로 생각하지 말고 이들이 다른 직무나 심지어 다른 업종으로 이직을 할 때라도 다시 돌아와 더 창의적인 일을 펼칠 수 있는 잠재력을 보고 믿고 지원해 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직원과 조직이 기계와 똑같이 취급되는 시대는 지난 듯하다. 왜냐면 이제 기계적으로 계산을 맡는 컴퓨터가 있고 공장은 자동화 기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기계보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변화에 대응할 유연한 대처에 대한 해결책을 내 놓을 브레인이다. 그렇기에 이들을 시간에 비례하거나 눈앞에 보이는 짧은 목표성취로 이들 능력을 평가하는 시대는 끝났다. 오래 사무실에 앉아 있는 다고해서, 빠르게 오타 없는 규격에 맞는 레포트를 제출한다고 해서 훌륭한 인재로 분류되는 시대는 지나버렸다. 위기를 기회로, 사소함을 위대함으로 바꿀 수 있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용하는 사람을 이제 인재로 분류gksek. 이들이 성공하고 앞 선 사람이 됐을 때 리더로 승격시킨다. 조직원들이 리더를 모델링해 아이디어를 내고 같은 조직으로 더욱 큰 성과를 내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애자일 조직이라고 이해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드라마가 있었다. 여기서 합병된 회사 직원들이 심리적으로 우울해하거나 힘들어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꼭 예전 회사에서 새 회사로 변화할 때 행사를 만들어 옛 회사와 새 회사의 경계를 인정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정의내린 부분이 있었다. 그 때 미국으로 합병된 프랑스 회사에 들어가게 된 미국인 마케팅 회사원 이야기를 그린 넷플렉스의 ‘에밀리, 파리에 가다.’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어쩌면 프랑스 회사 사람들이 미국인인 주인공을 따돌리고 그녀가 낸 업무 아이디어마다 빈정거린 이유는 예전 회사가 팔리면서 예전 회사에 대한 이별 의식을 제대로 해 내지 못한 예전 고용주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회사의 문제는 HBO의 ‘체르노빌’이라는 드라마를 봐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소련이란 국가 문제였지만 이는 한 회사의 일로 치환해도 똑같이 적용 가능하다. 이 비극적 사고가 일어난 건 부하직원 만류에도 불구하고 승진을 위해 경력을 만들 목적으로 밀어 붙힌 실험이 발단이 됐다. 더 이상 사람 능력을 실적으로 평가하는 제도는 잘못하다간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가는 재앙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바로 순위에 따라 사원 처우를 달리하는 제도는 눈앞에 회사의 이익을 챙길 수 있겠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는 요원하다. 또한 투명한 정보와 의견 개진은 애자일 조직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투명하고 활발한 의사소통은 더욱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실마리가 될 것이다.
거의 일주일을 이 책을 껴안고 살았다. 그래도 이 정도 느낌을 이야기하면 남편이 책을 한 번 훑어보는 데 더 편하지 않을까 싶다. 요약이야 앞에 간단히 나와있는 것과 각 장마다 결론으로 얘기한 부분이 있으니 이 책을 조망하는 데 이 글을 더 추천한다. 이렇게 나는 20년 전 레포트 빚을 갚는다.으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