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지금 읽는 책은 남편이 가져온 ‘애자일 조직’이란 책이다. 마치 경제학원론이나 마케팅 원론처럼 원론적인 뜬금없는 기나긴 번역체 글이다. 이 책 속에서 뭔가 그래도 적용할만한 무언가가 있는지 열심히 뭔가를 찾고 있다. 또 한 권 읽은 책은 <내 어머니 이야기> 만화로 네 권 중 한 권을 읽었다. 짧고 간단명료해 보이는 그림과 글씨지만 그 당시를 떠올리고 이해하며 읽으면서 대하소설 <토지>만큼의 에너지가 들었다. 이 책들도 조금씩 글을 써볼까 한다.
연말에 읽었던 책은 뭔가 금서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읽으면 위험할 것 같아 더 보고 싶게 만드는 그것. 명확히 얘기하자면 소설로서 기승전결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흡입력은 좋아 몇 시간 만에 다 읽어버린 책이다. 책 제목은 <커튼 뒤의 사람들>이다. 2015년도에 출판한 책인데 2019년도에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19를 떠오르게 하는 사건이 번듯하게 그려져 있다. 이 정도면 소설이 진짜 계획을 가지로 만든 건지 아니면 정말 소설가가 때려 맞춘 우연 일치인지 헷갈린다. 소설가가 주장한 보이지 않는 그림자 세력은 존재하고 그들이 계획대로 세상이 움직인다는 전제가 아무렇게 써 놓은 이 소설에 맞춰 세상이 진짜 움직이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
실제 작가를 찾아보니 재미있는 인물이었다. 이 사람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어쩌고 이야기를 보니 남편이 인생 책이라며 절대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장미의 이름’ 소설이 떠오른다.(이름이 어설프게 기억이 나서 청소기를 열심히 밀고 있는 남편에게 물어봤더니 ‘장미의 이름’인지 ‘장미의 이름으로’인지 헷갈린단다.) 이 분 혼자 중세시대 사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억을 또렷하게 유지한 채 인생을 한 다섯 번째 사시는 느낌이 가득하네.
이 책의 재밌는 점은 소수 엘리트들이 굉장히 무섭고 잔혹하고 나쁜 존재로 그려지다가 결국 그들이 원하는 어젠다로 진행되면 결국 유토피아가 된다는 황당한 결론으로 급히 끝맺는다. 주인공 여민 은 괜히 엘리트 그룹 모임을 보고 그걸 파헤치는 기자를 만나 일을 벌이면서 결국 감옥에서 15년을 살고 출소하게 된다. 도대체 왜?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와서 우승을 차지할 만큼 쇼맨십이 가득한 사람이라 그런 건가? 그에게는 세상에서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에 그에 대한 대가로 15년을 김치나 와인이 숙성되듯 그렇게 가둬둔 걸로 설정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 주인공 말고 그 소수 엘리트층의 계획은 지금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세계 제조업을 장악했고 그러므로 인해 자신에게 패권이 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므로 소수 엘리트의 어젠다를 망가뜨리는 교만이라는 죄를 벌이고 그에 대항해 엘리트들은 중국인에게 치명적인 병균을 퍼뜨려 그들 경제와 인구 등등을 엉망으로 만들어 벌인다. 끊임없는 주식 호황을 만들고 급하게 그 돈을 거둠으로 한순간 돈의 순환을 막아버리고 그걸 이용해 세계 단일 통화로 만드는 교두보를 마련한다. 지금 이 순간은 끊임없이 주가가 올라가는 그 순간 이리라. 낭떠러지가 어디인지 소수의 그들 빼고는 아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림자 세력을 알게 된 주인공 여민이 처음 꽃뱀에게 걸려 성폭행범으로 몰린 후 언론이 그를 끝에까지 몰아세운다. 그가 어떻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천하의 못된 사람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방어하고 정의로운 행동을 한다고 하는 행동이 오히려 공권력을 통해 불법을 행한 것으로 되어버린다. 결국 그림자 세력은 언론을 장악하고 국가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그저 겉보기 번지르르한 걸 즐기는 한 인간으로 그대로 있었다면 그는 이런 참혹한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가 보이지 않는 최고 권력과 대단해 보이고자 자신을 어필하는 주인공 성격이 만날 수밖에 없는 필연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결국 15년 후 좋은 세상을 만나 세상에 떨어진 여민 은 어떻게 될까? 여민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그림자 정부 수장은 그를 그렇게 세상에 버려두고 끝낼 것인가? 그 뒷부분이 조금 궁금하긴 하다.
그림자 정부가 움직이는 언론과 국가 권력을 보자면 요즘 꽤나 이슈가 되는 가수 유승준을 떠오르게 한다. 대한민국에서 안티 없는 바른 이미지의 최고 춤꾼이자 가수로 유명하다 잘못된 선택으로 이름도 ‘유승준’으로 불리는 것조차 눈치가 보일 정도다. 군 입대 시기에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 언론을 통해 강요당했다. 결국 마지막 갈림길에서 군 입대 후 한국인이 됐을 때 미국에 아예 못 들어올지도 모르겠다는 가족들의 두려움을 외면하지 못했다. 일부러 군대를 피한 건 아니었지만(그건 그의 강력한 주장이다.) 결국 그런 셈이 되어 천하의 역적이 되었다. 그렇게 스티브도 아닌 스티붕이라는 자신 이름이 아닌 이름으로 불리며 그는 그렇게 19년을 보내야 했다.
나는 사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 그의 유튜브를 알았다. 우연히 이어령 전 장관의 따님인 이민아 목사님 책을 읽다가 대중가요 가사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좋은 가사를 가진 대중가요를 찾다가였다. 유승준이 부른 대부분 노래는 정말 좋았다. 노래를 찾다가 악플이 사람을 죽인다는 내용의 그가 찍은 클립을 보게 됐다. 그에게 달린 댓글은 문자를 읽는 능력이 있는 게 저주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 나쁘고 악질적인 내용이 가득했다. 마치 그가 그걸 읽고 신경쇠약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길 간절히 바라는 욕망이 절절히 보였다. 인격 살인이고 글자로 사람을 죽였다. 그 살인적인 댓글이 나를 그가 선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언론을 의심했고 국가가 가진 위치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됐다.
2002년, 그가 온갖 모욕을 받으며 미국에 갔을 때, 나는 매일 기숙사 식당에서 만나 밥을 먹고 고시실로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던 언니가 아침드라마 같은 막장 가을동화 스타일 기사의 주인공이 됐다. 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에 항의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었지만 언니와 일거수일투족을 같이 했던 고시 학생들은 그게 새빨간 거짓이란 걸 알고 있다.
희생자는 있고 그들은 결국 승리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고 그토록 바라왔던 세상이란다. 과연 그럴까? 특이한 여성에게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 활활 태워버렸던 마녀사냥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마녀사냥을 하는 그 조직은 대의를 위해 그렇게 희생자를 만드는 것일까? 제발 그들이 가는 방향이 옳은 방향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