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살아버렸습니다.

태어난 김에 산다

by 이현선

방송에 나오는 웹툰 작가 기안84를 이렇게 부르더라.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라고.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새 물티슈 옆구리를 죽 뜯어서 쓴다. 위에 떼었다 붙일 수 있는 스티커로 된 입구가 있는데도.

저러면 바짝 말라버릴 텐데 경악스럽지만, 그라면 그냥 수돗물을 부어서 다시 쓸 것 같다. 어쨌든 젖어있으면 되는 거니까.


복잡하게 생각하면 모든 게 한 없이 복잡하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일순 간단해지기도 한다. 이런 간단한 이치를 아는데도 결국에는 복잡하게 생각하고 마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다.

세상에 복잡한 것이 얼마나 많고 그 많은 것들이 눈과 귀를 통해 머릿속으로 파고드는지. 그런 복잡함 속에서 물티슈 같은 사소한 건 간단하게 죽 뜯어 버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다.




태어난 김에 산다.

살아야지 하고 시작한 삶은 아니다. 태어나서 태어났으니까 살다 보니 살고 있다. 사는 줄도 모르고 숨이 터지니까 울던 갓난쟁이였을 뿐이다.

사는 건 줄도 모르고 살다 보니 모든 게 재미있고 다채로워서 신이 날 때쯤 실패도 하고 포기도 했다. 타협과 종용 사이에서 그 끝을 잠시 목전까지 가서 보고 왔다.


몇 장이나 되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을 때 그 안에는 사망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쓰여있었다.

오래 묵은 병이었지만, 이제야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픈 줄 알았으면 겁을 내느라 아무것도 못 하고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것도 몰라서 오히려 자유롭게 살았다. 가끔은 무지가 축복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대체로 적당히 좋고, 가끔은 나빴으나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그런 생각까지도 했는데 살아 나와서요.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 별 일 아니라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한데요.

그래도 또 살아 나왔으니 그 김에 삽니다.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하자. 오늘도 그냥 살아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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