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몫까지
한 살 아래였던 후배 S의 어머니와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곧 찾아오는 기일이면 S가 떠난 것이 벌써 7년째가 된다. 그간 몇 번의 통화로 S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S가 어떤 아이였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매번 마음이 헛헛해진다.
왜 티 없을 뿐인 아이를 누군가는 괴롭히고야 마는지, 왜 여리고 착한 아이가 타인의 나쁜 마음을 등에 지고 마지막 선택을 하고야 마는지.
세상은 영악하고 날 선 사람이 득을 볼 수밖에 없게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슬픔이 어떻게 참척의 고통에 비할까. 그러나 S의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웃으며 안부를 물어주신다. 나이에 비해 아이 같던 S의 시간은 여전히 멈추어 있다.
저는 졸업도 하고 취업도 해서 이제는 회사에 다녀요. 다른 친구들도 각자 공부하고 일하고 잘 지내고요. 가끔 만나면 S의 이야기도 해요.
그런 이야기를 듣는 마음을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으나 그렇게 전한다.
나는 S를 떠올릴 때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삶에 대해 생각한다. 너는 죽음을 생각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생각했을까.
너에게 그 생생한 젊은 시간을 더 많이 보여주고, 또 때로는 그 시간을 잠시 접어두고 몰두해도 좋을 순간 또한 함께 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내는 때마다 마치 내가 가야 할 때를 놓치고 눈치 없이 남아있는 듯한 허망함을 느낀다. 이후의 시간이 다 덤으로 사는 분량인 듯 무상하기만 한 채로 한참을 슬퍼한다.
삶은 얼마나 더 치열하게 다투어야 할까.
죽는 건 뭐길래. 정말, 사는 건 뭐길래.
'참 사는 게 뭐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날, 이런 말씀도 하셨다.
'건강히 행복하게 힘내서 S의 몫까지 잘 살아가길 바라요.'
내가 누구의 몫까지 할 수 있는 사람 같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너의 몫까지 질 수 있다면 다만,
건강히. 행복하게. 힘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