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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선 Sep 04. 2022

희귀병인데요, 말하기 좀 민망하네요

 요즘 넘쳐나는 예쁘고 분위기 좋은 카페마다 있는 시그니처 라테 같은 걸 주문하는 게 좀 어렵다. 그 가게의 간판을 붙인 이름이면 그나마 무난한데 거기서 더 가면 왠지 입 밖으로 말하기 민망하다.

 초코 라테를 먹고 싶었는데 아이스가 냉정, 핫이 열정인 카페에서는 주문을 포기했다.


  희귀병도 난치병도, 텔레비전에나 보던, 나한테 올 줄 몰랐던 말들이라서 마찬가지다.

 "초코 라테, 냉정을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민망하다.


 나는 그런 단어들을 드라마에서 만나도 '너무 뻔해!' 하고 생각한다. 사실 누구 딸이야, 엄마야. 아니면 시한부, 그것도 아니면 전생에 뭐. 이런 뻔하디 뻔한 시련들.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아픈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과의 사랑 이후에 결국 죽는다는 이야기도 좀 힘들다.

 결과가 그게 뭐야. 죽어버리잖아. 사랑 좋은데, 요절하는 짧은 삶에 사랑밖에 없는 건 너무하잖아.

 사랑 정도로 밖에는 완성될 수 없는 삶이라는 것 같아서 슬프다.


 이미지가 정해져 있는 단어는 무섭다. 사전에는 없는 뜻인데 그 단어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의미들이 있다.

 그런 말들은 좀 민망해서 사전에 있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질 단어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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