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살고 있음에도 부족하다

대학원생 2학기를 마무리하며

by 윤지민

'나 왜 이렇게 살고있지?'라는 말이 시도때도 없이 나왔던 한 학기였다. 이번 학기는 유난히 길게 느껴지기도, 그래서 유난히 힘들기도 했다. 긴 추석연휴를 지내느라 중간에 쉬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크리스마스 이브 전 자정이 마지막 과제 제출기한이었다. 4개의 수업을 소화해내느라 힘들기도 했고 하반기에는 일도 정말 많았다. 나는 항상 머리가 답답하면 글을 쓰고 싶었고, 글을 쓰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는데 이번 학기에는 7주차 이후로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쓸 틈이 없었다. 시시각각 밀려드는 주문 속에 요리를 해내야하는 쉐프처럼 태풍 속에 지난 학기를 보낸 것 같다.


할 일이 많으니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아까웠다. 그래서 매 끼니가 삼각김밥, 라면, 햄버거이면 그래도 감사한 정도이고, 칼로리밸런스 따위로 이동 중에 먹거나 거르는 경우도 많았다. 하루종일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해질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오늘 한 끼도 못 먹었구나라고 깨닫는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은 안 빠졌다. 11월부터는 그렇게 좋아하던 클라이밍도 못 갔다. 당장 내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다보니 가족들에게도 소홀했다. 요즘 나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고있을 남편도 잘 못 챙기고, 시댁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화도 자주 못드려서 항상 마음에 무거운 짐을 잔뜩 얹고 살았던 것 같다.


엉엉 울면서 잠에서 깼던 적도 있다. 전 날 밤 늦게까지 과제를 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자고 아침일찍 일정이 있어 다녀와 늦은 오후 집에서 깜빡 졸았다 일어난 일이다. 꿈 속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만났다. 꿈을 돌이켜보면 사람이 가득한 명절 분위기에서 나는 알지도 못하는 친척들이 계속 내게 이것저것 일을 시키는 통에 폭발 직전의 상태에 있었다. 그런 나에게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우리 외할아버지가 다가오셔서 ‘우리 아가 힘들지?’라고 한 마디 건네주셨고 나는 그 말 한 마디에 ‘할아버지 보고싶어요’라며 할아버지 품에 안겨 펑펑 울다가 잠에서 깼다. 꿈 속에서의 다른 사람은 무의식 속의 내 모습을 보는 거라고 심리학에서의 꿈분석을 공부하는 엄마가 말해줬었다. 얼굴도 모르는 친척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도 잘해내려고 아등바등하며 힘들어하고, 나를 제일 아껴주신 할아버지처럼 정말 소중한 일은 그리워하고 있는 게 현재 내 무의식인가보다라는 자평을 했다.


대체 사람은 무엇 때문에 바쁜가. 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몰아세우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항상 부족하다는 듯 새로운 일을 꿈꾸고 만족하지 못하는걸까. 나는 왜 이렇게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돈을 엄청나게 버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뭐 돈이 아닌 다른 것이 많이 남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런 삶을 자진해서 살고있을까.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을 박사과정의 학생으로 보냈다. 주변 사람들이 학위를 해서 뭐하려고 하냐는 질문에 솔직히 대단한 답변을 할 수가 없다. 사실 학비도 내야하고, 시간도 써야하고, 자존감도 낮아지고, 감정소모도 필요한 이 공부를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치열했다. 사소한 과제도 그냥 대충하기가 쉽지않고, 교수님의 날 선 한 마디에 전전긍긍하며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하고, 열심히 한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억울하고 서럽다. 대체 인생에 있어서 뭐가 중헌디. 왜 나는 이렇게 항상 치열하고, 그럼에도 뭔가 부족하고, 그래서 괴롭고 힘든가 순간순간 고민이 든다.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은 인과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한다고 지도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파고들어 원인을 찾아내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하셨다. 사회현상의 ‘왜’를 찾기보다 정작 내 삶에 있어서의 '왜'는 무엇일까 다시 한 번 다잡을 필요가 있는 겨울방학이 될 것 같다.



유독 참 힘든 학기를 보냈다.


'왜'에 대한 답은 아직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찾고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일단은 별다른 '이유없이' 나를 스스로 안아주고 싶은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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