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뇌와 친해지기

대학원생 2학기 7주차의 일기

by 윤지민

중간고사 기간이다. 대학원생은 중간고사를 보는 경우가 잘 없다는데 그건 마음편한 소리였다. 이번 학기에 듣는 수업 중 하나는 시험을 보고, 두 과목은 과제로 대체되었다. 한 과목은 시험을 생략하고 수업도 안하신다고 하셨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허덕이는 파트타임 학생으로서는 한 과목이라도 숨통을 틀 수 있게 해주신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중간시험을 대체하는 과제의 경우는 대부분 term paper proposal이라고 해서 소논문을 직접 기획해보고 선행연구들을 참고하고 분석해서 연구모형을 설계한 내용을 발표하는 과제이다. 프로포절을 통해 교수님과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기말까지 내용을 보완해서 학기말에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나는 관광산업정책, 하나는 레저심리를 주제로 두 과목의 텀페이퍼 프로포절을 준비하는데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공부의 영역은 참으로 끝이 없기에 대체 내가 보아야하는 선행연구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논문을 하나 쓰겠다고 세상에 나와있는 선행연구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가면서 보다보면 도대체가 끝이 없는데 대체 내가 고찰해야하는 연구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를 매번 고민하게된다. 연구라는 것은 누군가 이미 쌓아둔 영역에서 아주 미세한 빈칸을 찾아내는 것이지 내가 새롭게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창의력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행연구를 고찰하면서 얻은 조각조각의 지식을 바탕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야 연구가 의미있어지기에 창의력이 꽤나 요구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렇게 창의력을 쥐어짜내야할 때는 뒷골이 땡긴다. 대체 어디까지 봐야하는거야라는 생각으로 머리에 꾸역꾸역 다양한 지식의 조각들을 집어넣다 보면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뒷통수가 가득 차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뭔가 '유레카!'를 외칠 정도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되면 갑자기 전율이 흐르면서 뒷통수가 스르르 녹아 내려앉는 경험을 한다. 그렇다고 모든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때부터 또 새로운 한 판을 시작하게 된다.


반면에 이번 중간고사를 보는 수업은 모든 내용을 한장으로 정리해서 달달 외워야만했던 수업이었다. 그간 들었던 수업 내용을 종합해보면 한두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 그 종이를 머릿 속에 그대로 복사해서 시험지 위에 줄줄 써내려갈 수 있어야했다. 물론 한 페이지로 정리를 하는 과정 중에 외워지는 부분도 있지만 디테일까지 채워넣으려면 계속 여러 번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으면서 머릿 속에 글자를 각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뭔가를 있는 그대로 외워야 하는 작업을 하려니 중학교 때 암기과목 시험공부하던 때가 생각나면서 뇌가 생경한 방식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눈으로 한 자씩 짚어가듯 읽어내려가다보면 이마가 있는 머리 앞 부분이 찌릿찌릿하달까. 그냥 내 느낌인지라 전혀 근거는 없지만 창조와 암기는 뇌의 다른 부분을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학생들의 학습지를 사서 푸는 일반인들이 많아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간단한 산수문제나 한자, 어학 등의 학습지를 풀면 잡념이 없어지고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번 중간고사 공부를 하면서 내가 평소에 너무 일부분의 뇌만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험을 마치고 간만에 뇌 운동 어플로 암산 연습을 했다. 진짜 평소엔 생각도 할 일 없는 덧셈 곱셈을 하고 있자니 그동안 잊고있었던 또 다른 부분의 뇌를 일깨우는 기분이 조금 들었다.


공부를 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새로운 이론을 배우고 그동안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고 시도하려 하니, 쓰지않던 뇌의 근육을 쓰느라 그래서인지 두통도 자주오고 너무 피곤해진다. 그래도 그 과정 자체가 평소에는 잊고 살게되는 나의 '뇌'와 더욱 친해지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한다. 그동안 내 두개골 속에서 빈둥거렸던 뇌를 걷게하고, 뛰게하고, 구르게하는 중이라 이렇게 쉽지 않은 거라고 믿고싶다. 이 과정을 거치다보면 나의 뇌가 더 튼튼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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