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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Oct 16. 2015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빠의 취미

취미는 취미일 뿐이라는 아빠, 취미로 먹고사는 딸.

포카라 히말라야골프장


딸의 이야기


“아빠, 생일 축하해!”


아빠는 네팔 포카라에서 생일을 맞았다. 복잡한 카트만두를 뒤로하고 안나푸르나 설산이 보이는 도시, 포카라로 온지 이틀째이다. 나 밖에 챙겨줄 사람이 없는 아빠의 생일날,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골프를 선물하기로 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재미있기에 동도 트기 전에 친구들과 골프를 치러 가는지 궁금했는데, 오늘은 직접 따라가 보기로 했다. 18홀을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은 일단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뒤에서 겨우겨우 쫓아가고 있는데, 대체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불러도 대답 없이 그저 빠른 걸음으로 공만 쫓는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나는 아직도 이게 왜 재미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름다운 경치를 좋아하고 딱딱 들어맞는 수학공식 푸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공대 출신 우리 아빠가 왜 골프를 좋아하는지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빠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골프가 좋으면 프로골퍼로 직업을 전향하지 그래?”

아빠의 대답은 이러했다.


“취미는 취미일 뿐.”

가끔 이력서에 ‘취미’를 적어야할 때가 있다. 조금은 고상해보였으면 할 때 가끔 ’독서‘를 적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나는 ’여행‘을 적었다. 하지만 이제는 직업이 여행이 되어가고 있으니 ‘취미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답할 것이 사라졌다. 이 질문이 다시 말해 ‘시간과 돈이 남을 때 무엇을 하느냐’라는 질문이라면, 나는 여행이 직업일지라도 여행을 적어야만 할 것이다.


“누나, 나 벌써 회사 관두고 싶어.”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한 동생이 얼마 전 집에 와서 던진 말이다. 내 동생은 20대 남성으로서 범상치 않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바다낚시에 빠져 주말마다 서해안으로, 동해안으로, 제주도로 물고기를 잡으러 다닌다. 요즘은 직접 회도 치는 수준이다. 평소에 여행에는 별 다른 흥미가 없던 동생이 오직 낚시를 위해 여행을 다닌다. 회사를 관두면 뭘 하고 싶은 지 물어보니 역시나. 배 한 척 사서 직접 선장도 하고, 횟집도 운영하고 싶단다. 예전 같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다그쳤겠지만, 나 역시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회사를 관둔 입장이니 그럴 수 없었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동생의 꿈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취미가 직업이 되는 삶은 어떠한 스트레스도 없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배낭을 풀기도 전에 또 배낭을 쌀 일이 생기는 지금은 솔직히 여행이 조금 지겨울 때도 있다. 취미였을 때는 그렇게 즐기기만 했던 여행도 직업이 되니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하고싶은 일을 하고있으니 사무실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행복하고 신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이런 삶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언제까지나 취미의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끊임없이 파고들면서 프로가 되어야만 한다. 쉽지 않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좋아하지 않는 일보다는 집중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자위하며 살아가고 있다.


요즘 세상에는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수제 인형을 만드는 것이 취미였던 사람이 블로그를 통해 인형들을 판매하다 쇼핑몰을 만들고, 여행하면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서 노는 것이 취미였던 사람이 직접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다양해지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 동생을 다시 만나면 취미 때문에 직장을 관둔 선배로서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잡기 싫은 물고기를 잡아야만 하는 날이 많아지더라도 괜찮겠느냐고. 




아빠의 이야


내 생애 57번째 생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골프다이제스트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10대 골프코스 중 하나인 포카라의 ‘히말라야 골프 코스’에서 아름다운 설산을 배경으로 골프를 쳤다. 생전 처음으로 딸이 갤러리에 포토그래퍼로 함께 해줬다. 게다가 생일선물로 골프비용까지 내줬다.


“취미는 취미일 뿐.”


골프를 너무 좋아하는 내게 프로 골퍼로 전향할 생각은 없느냐는 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었다. 프로 골퍼가 되기에는 내 능력과 수준이 못 미친다. 그 많은 프로골퍼 지망생 중에 자신이 만족하는 골프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일 것이다. 이미 프로골퍼가 된 사람들은 골프성적과 비례하는 자신의 수입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고 살 것이다. 나는 골프를 그냥 즐기고 싶을 뿐이다. 좋은 경치 보면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좋은 친구들과 천 원짜리 내기를 하며 몰입하는 시간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골프장에서의 나는 공에 집중한다. 어떤 방향으로, 몇 번 클럽으로, 얼마나 세게 쳐야 저 깃발이 꽂힌 구멍에 빨리 공을 넣을 수 있을까만을 고민한다. 가끔 주변을 둘러보면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나와 경쟁하고 있는 친구가 보인다. 친구의 상황도 아마 나와 같을 것이다.


취미가 좋은 이유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하는 시간이 정신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인간은 몰입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무언가에 몰입하여 이뤄낸 성취감의 찰나에는 희열이 느껴진다. 낚시에서는 입질의 순간, 등산에서는 정상을 확인한 순간, 골프에서는 잘 친 공이 하늘을 가르는 순간이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다. 이러한 찰나의 순간 느껴지는 희열은 중독성이 있다. 물론 직장에서도 몰입해야 할 때가 있지만, 같은 일을 오래하다 보면 몰입이 어렵다. 그래서 몰입할 수 있는 취미를 직업으로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젊었을 시절에는 직업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고, 물론 취미도 다양하지 않았다. 그저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밤낮 없고 주말 없는 노력을 돈으로 보상받는 데 만족했고, 취미 따위는 사치였다. 그렇게 살던 우리가 어느 새 은퇴한 중년이 되어 그동안 잃어버린 나만의 시간이 아쉬워 산으로, 바다로, 골프장으로 떠나는 것이리라.


나이가 들수록 시간과 돈의 여유가 생긴다면 건강한 취미는 인생을 완성하는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재미있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대다수 부인들이 가장 난색을 표하는 남편의 취미 여덟 가지를 선정해 놓은 글이었다. 낚시, 애니메이션, 오토바이, 게임, 자동차 튜닝, 카메라, 물건수집, 희귀 애완동물 키우기. 정말 다양한 취미가 존재하지만, 도박처럼 인생을 망치거나, 게임처럼 현실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잊게 하는 중독성 강한 취미는 위험하다. 요즘같이 다양한 직업이 가능한 시대에 중년들은 건강한 취미를 통해 은퇴 후 제 2의 인생을 설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운 꿈을 꿀 수도 있다. 여행과 골프가 취미인 내가 전 세계 유명 골프장 투어를 글로 남기는 기자가 꿈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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