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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Oct 15. 2015

친구라는 이름의 애인

끈적끈적한 스킨십은 없어야한다.

스와얌부낫 사원


아빠의 이야기     

“아빠가 킹카였다고? 믿을 수 없어!”     


내 대학시절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딸에게 내가 킹카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그 자리에서 친구 두 명에게 바로 카톡을 보냈다.     


‘나 대학교 때 킹카였다고 지민이한테 얘기하는데 안 믿네.’     


한 친구는 ‘ㅎㅎ 어쩌냐? 그때 그 여자들 지민이 앞에 다 불러 모아야겠네!’

또 다른 친구는 ‘지민이가 똑똑하거든ㅋㅋ’


이렇게 실없는 문자에 웃으며 답장해 주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카트만두에서의 두 번째 날. 카트만두 전경이 다 보이는 스와얌부낫 사원에 갔다. 이 사원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있다. 입구에 위치한 300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친구로 보이는 한 무리의 백인 노인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눈인사를 하며 지나치는데 문득 ‘나도 저 나이에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친구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월, 나는 친구와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었다. 케냐에 자문관으로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는 대학동창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케냐이야기를 보면서 아프리카 여행을 동경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의기투합하여 친구를 만나러 가 위한 케냐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아프리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나이로비에서 세 시간 정도 떨어진 암보셀리 국립공원이었다. 엄청난 코끼리 떼와 얼룩말의 무리 뒤에 우뚝 버티고 선 킬리만자로를 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이 가슴에 전해졌다. 나는 이런 순간을 보통 가슴이 저려온다고 표현한다. 구름 사이로 살짝 정상을 드러낸 킬리만자로는 역시 사람을 압도하는 위용이 있었다. 새하얀 만년설로 덮인 킬리만자로를 바라보고 있으니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내가 마치 한 마리의 킬리만자로 표범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벅찬 가슴에 심호흡을 하며 옆을 돌아보니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병우야, 내가 이 가슴저린 광경을 와이프나 애인이 아닌 너와 보게 될 줄이야...”


친구란 애인과 같은 존재이다. 물론 끈적끈적한 스킨십은 없어야 한다. 처음 친구를 사귈 때도 본능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있다. 마치 연애상대처럼. 애인이 여럿이라면 따귀 맞을 일이지만 친구가 여럿 있다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많은 추억을 공유하며 계산 없는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사람이다. 친구가 없다는 것은 불행하다. 친구가 너무 많다는 것 또한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평생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친구가 적당히 몇 명 있다면 행복한 생을 살아온 것이다. 친구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존재다. 내가 어려울 때 떠올라야 친구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눠줄 수 있어야 친구다. 친구와 돈거래를 하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는 말이 있다. 이해관계 없이 그냥 줄 수 있고, 그냥 받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몇 명 있다면 인생이 든든하고 행복하다.     


스와얌부낫 사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는 노년의 외국인들을 보았을 때, 이제는 벌써 40년 가까이 함께해온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민이에게도 내 나이 때 이렇게 떠오를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지민아, 너는 친구가 뭐라고 생각하니?”  



딸의 이야기


“지민아, 너는 친구가 뭐라고 생각하니?”     


아빠의 질문에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 둘씩 떠올랐지만, 아빠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기는 어려웠다. 친구는 과연 뭘까?  


지금 내 나이는 친구를 정의하기 가장 어려운 나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특히 결혼과 같은 끊임없는 경조사를 마주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나와 상대방의 관계를 돈 봉투를 앞에 둔 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5만원 짜리 친구일까? 10만원 짜리 친구일까?     


대학 시절에는 친구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느 순간 저절로 많아졌다. 각종 대외활동, 동아리 등 대학생활의 폭을 넓혀갈수록 내게 친구는 많아졌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만큼 중요했다. 연인과 헤어진 친구를 달래야하기도 했고, 친구의 일일호프를 찾아가줘야 했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자리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대체 어디까지 ‘친구’라고 불러야할지 어려워진다. 친구라고 부르기엔 어색하지만, 강제로 친해져야만하고 살갑게 챙겨야만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급격하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일 끝나고 함께하는 술자리, 주말에 함께하는 등산, 챙겨야하는 생일 선물 등 좋든 싫든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친구’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이제는 나만의 개인 시간을 쪼개고 빼내야지만 만날 수 있는 ‘진짜 친구’들이 구분되기 시작한다. 학생 때는 시간도 많았고 체력도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보고 싶은 친구라도 예전처럼 밤새도록 수다를 떨 수 있는 충분한 체력도, 심적인 여유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멀어지는 친구 관계가 마음 아프도록 안타깝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너도, 나도, 먹고살기 바쁘잖아.     


지난 해 세계여행을 하던 중 미국에서 1년 동안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를 10년 만에 만났다. 각자 한국에서, 미국에서의 삶을 사느라 한동안 마주칠 일이 없었고, 연락도 뜸해져 있었다. 그저 서른이 가까운 인생 중에 단 1년의 추억을 아주 가깝게 공유했을 뿐인데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10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그 모든 과정을 업데이트하지 않아도 함께했던 1년의 추억을 마치 오랜만에 옛 앨범을 꺼내보듯 하나씩 꺼내놓고 웃고 떠들었다. 아마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함께 보냈기 때문인 것 같다.      


친구가 무엇이냐고 생각하는 아빠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결국은 나와 ‘추억’을 공유했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추억’을 만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인 것 같다. 내가 지금 친구가 아닌 애인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 싶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각자의 삶에 파묻히다보니 1년에 여러 번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는 친구들은 친한 대학동창들을 포함해 몇 되지 않는다. 모두 내 인생 가장 소중한 추억들을 함께 공유한 사람들이다.      


나와 전화를 끊을 때마다, “우리 80세 까지 친구하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 매 번 지치지 않고 그 말을 남기는 친구에게 부끄러워 얼버무리고는 하지만, 내심 이 친구에게 내 평생 시시콜콜한 인생담을 늘어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고맙다. 스와얌부낫 사원에서 아빠와 함께 만났던 노년의 친구들처럼 나도 저 나이 때 함께 여행하며 수다 떨 친구들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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