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치열하게 연애했었다. 나는 지금 치열하다.
“민자영, 걔 완전 나쁜 년이야!”
카트만두에 도착한 후 첫 끼니를 위해 슬슬 타밀 거리로 걸어 나왔다. 나름 인터넷을 검색해 동네의 맛집을 찾았다. 네팔의 유명한 고르카 맥주를 한 병 시켜놓고 음식을 기다리던 중 아빠가 이야기를 꺼낸다. 7시간의 비행 중에 함께 봤던 또 다른 영화, <쎄시봉>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쎄시봉>은 7080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무교동의 음악 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활약하던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조영남 등 실제 인물들과 함께 트윈폴리오 제 3의 멤버 오근태와 그들의 뮤즈이자 배우지망생인 민자영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당시의 사회상과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민자영의 대사 한 줄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어. ‘너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니?’ 가진 건 목소리와 기타밖에 없던 오근태가 머뭇거리다 그랬지. ‘너를 위해서 평생 노래해줄게.’ 그랬더니 양다리 걸치고 있던 잘 나가는 영화감독한테 시집갔잖아. 완전 나쁜 년이지.”
흥분하면서 열변을 토하는 아빠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서 되물었다.
“아빠한테도 그런 나쁜 년이 있었어? 왜 이렇게 흥분해?”
아빠는 갑자기 씁쓸한 표정으로 맥주를 한 잔 들이키더니 짧게 한 마디를 뱉어낸다.
“있었지.....”
분명 우리 아빠도 남 보기에는 평범할지라도 본인에게는 드라마틱한 연애를 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설레고, 서운하고, 행복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면서. 하지만 아빠는 나의 연애에 항상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누구를 만나든, 울고불고 난리를 치든, 좋아죽겠다며 자랑을 늘어놓든 말든. 가끔은 서운할 정도로 내 연애에 대해 먼저 묻는 적이 없었다. 아빠는 왜 나의 연애감정에 공감해주지 않는 걸까?
지난 10년간 나의 연애사를 돌아봤을 때,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연애를 했다. 번개같이 짧고 강렬한 연애를 하기도 했고, 뚝배기같이 은근하게 오래갔던 연애도 있었다. 형태가 뭐가 되었든 나는 항상 상대방에게 진심을 보이고 최선을 다하는 연애를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연애하고 있다.
수많은 딸들이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꿈을 꾼다. 나 역시 그럴 때도 있었다. 우리 아빠는 좋게 표현하면 남자답고 진중하다 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감정표현에 인색하고 무뚝뚝하다. 가끔은 차갑다싶을 정도로 이성적이고 논리정연하다. 이런 아빠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나는 아빠 같은 남자와 연애할 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사랑표현의 인색함에 상처를 받으면서 아빠를 통해 보았던 남성상이 진정한 내 바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며, 그 사실을 충분히 표현하는 사람과 연애할 때 가장 행복했다.
결혼할 나이가 가까워질수록 연애가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명확히 알면 알수록 상대방이 처음부터 나와 더 맞는 사람이기를 꿈꾼다. 나는 조건과 관계없는 불같은 연애를 하고 싶어도 그럴만한 상대를 만나기도 쉽지 않고, 이제는 그럴 나이가 아니라며 충고를 던지는 주변인들을 상대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기조차 너무 어렵다. 어릴 때는 마음껏 사랑하기도 바쁜 와중에 상대방의 조건을 재고 따지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민자영’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혼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는 연애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그저 최대한 시행착오 없이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한 방어적인 마음에서 ‘민자영’이 되어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사랑의 힘’을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로 믿는다. 어차피 현실적인 조건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을 만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동안의 연애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믿어야할 것은 현실적인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랑의 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와의 연애 감정에 충실할 수 있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 그리고 그 감정을 간직한 채로 결혼하고 싶다.
아빠의 연애가 궁금했다. 지금 이 나이 때만 느낄 수 있는 연애 감정을 아빠는 젊었을 때 어떻게 경험하고 느꼈는지 궁금했다. 내게 “너무 잘해주는 남자 믿지 마.”라는 말 밖에 해주지 않는 아빠의 20대가 궁금했다. 그래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옛 연애를 회상하고 있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의 연애는 어땠어?”
“아빠 연애 화려했지. 젊을 때 나는 킹카였어!”
대학교 합격통지 받고 아직 입학식도 하지 않은 그 기간은 구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첫 담배도 피워봤고 친구들과 어울려 미팅과 술자리가 매일 벌어졌다. 소위 주색잡기의 절정이 아니었나싶다. 형제도 남동생뿐이고, 초등학교 졸업 이후 남중과 남고를 졸업한 내게 대학은 신세계였다. 인생 처음으로 ‘여자들’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늙고 머리도 벗겨진 볼품없는 중년이지만, 그 당시 나는 킹카였다. 우리 딸도 코웃음치며 믿지 않지만 사실이다. 미팅을 할 때마다 애프터 신청을 하면 상대방이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때는 ‘우리 오늘부터 사귀는 거야’ 이런 거 전혀 없었다. 미팅에서 만나 싫지 않으면 애프터를 신청하고, 서너 번 만나다보면 자연스럽게 특별한 사이가 됐다. 매일매일 미팅이 반복되던 신입생 시절, 나는 연애가 뭔지도 몰랐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모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그냥 여자의 레브롱 샴푸 냄새가 좋았다. 그래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여자 외에는 모두 애프터 신청을 했고,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양다리, 세다리를 걸친 남자가 되어있었다.
하루는 애프터에 나갔다가 따귀를 맞았다. 그 여자를 세 번째 만난 날이었다. 양다린지 세다린지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게된 것이다. 내 인생 처음 여자에게 따귀를 맞고 어리벙벙하던 내게 그녀가 했던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사랑은 여러 번 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할 수는 없어요.”
나의 부끄러운 과거 연애사(?)를 고백한 것은 남녀 간의 사랑은 본능에서 시작하고, 시간과 함께 변한다는 것을 딸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지민이의 연애담에 별로 관심이 없는 척한 것은 20대에만 느낄 수 있는 연애감정을 스스로 충분히 경험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특수한 관계에 있는 아버지가 그 감정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도 20대 때는 양다리, 세다리 걸쳐가며 지겨울 정도로 데이트를 했고, 좋아 죽겠다며 집 앞에 찾아가 며칠을 기다렸던 여자도 있었고, 친구와 술을 마시며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를 원망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저 젊은 날의 추억일 뿐이다.
오근태를 떠나기 전, 20대의 민자영이 남긴 대사에 화가 났던 것은 그녀의 계산적인 마음이 싫었기 때문이다. 일단 최대한 받을 수 있는 것을 확인하고, 주는 것은 내 마음에 달렸다는 이기적인 여자들에게 화가 났기 때문이다. 선물로 받은 명품백을 헤어진 후 돌려주어야 하는지 마는지까지 인기 개그프로그램에서 정해줘야만 하는 작금의 계산적인 연애관계가 싫기 때문이다.
“연애는 본능이다.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 하지만 결혼은 아니야.”
이 말을 딸에게 해주고 싶어서 서두를 던졌다.
“민자영, 걔 진짜 나쁜 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