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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Oct 12. 2015

나는 과연 준비가 되어있을까

아빠와 딸, 둘만의 여행 출발 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출발 3일전


아빠의 이야기     


딸과 둘만의 여행을 질러(?)놓고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결혼하고 싶다는 딸의 한 마디에 딸과 단둘이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내가 제안하고서도 딸과 둘만의 여행은 생각만 해도 괜히 울컥한다. 언젠가는 내 아이도 다른 가족을 만들 수 있도록 부녀간의 관계를 정리해야한다는 사실이 인정하기 싫어서일까. 애지중지 키운 내 딸을 다른 남자에게 보내야하는 상황이 닥치지 않는 이상, 결코 내가 먼저 끊을 수 없는 이 관계 자체가 내게는 숙명이었다.     


한석봉은 완벽한 암흑 속에서 떡을 가지런히 썰어내는 어머니가 있었다. 충무공 이순신은 난중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오천 원짜리 지폐에 얼굴을 올린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오 만원권 지폐에 얼굴을 올린 건 우리나라 모든 어머니에 대한 오마쥬(Homage)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위인전의 많은 위인들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왜 위인을 만들어 내는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을까?

누구는 아들에게 가장 큰 행운은 아버지가 일찍 죽는 것이라고 했다. 무서운 말이다. 영화 <사도>에서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그릇에 차지 않는 사도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아버지, 영조를 보면서 더욱 좋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했다. 대부분의 아버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혹은 가지지 못한 많은 것을 자식에게 투사한다. 공부 잘해야 하고, 인사 잘해야 하고, 심지어 젓가락질까지 제대로 해야 한다며 다그친다. 그렇게 엄격한 아버지가 마치 좋은 아버지인 것처럼 자식에 대한 진심을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라는 말 한 마디로 숨겨 버린다.     


나는 내 아이들이 위인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생을 살다가 여한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물론 내 인생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어릴 때부터 함께 인도 배낭여행을 다니는 등 색다른 경험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에 대한 진심을 충분히 표현하는 아빠였는가라는 질문에는 나 역시 자신이 없다.     


딸이 결혼하겠다는 말 한 마디에 여행을 제안했던 건 바로 아빠와 딸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친구 같은 대화를 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진정한 대화는 서로 동격일 때 가능하다. 과연 이런 동등한 관계가 부모자식 간에도 가능할까? 내가 아무리 ‘난 너와의 진정한 대화를 위해 계급장을 떼었어!’라고 주장해도 딸이 과연 인정해줄까? 갑자기 그런 걱정이 들었다.


평일 낮 혼자 집에서 일하고 있는 딸과의 점심을 위해 라면을 끓였다. 평소 같으면 딸에게 라면을 끓여 달라 했건만 몇 일째 네팔가기 힘들다며 툴툴거리는 딸의 눈치가 보였다. 딸은 내게 마음을 열 준비가 안 되어있는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된다.     



딸의 이야기    


“아빠, 대체 네팔을 가려는 진짜 이유가 뭐야?”     


처음으로 아빠가 직접 끓여준 라면을 먹으면서 톡 쏘듯 뱉었다. 내 평생의 기억 속에 요리를 하는 아빠의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부엌에 발 한번 들이는 적이 없었던 우리 아빠가 양파와 파채, 청량고추까지 썰어 직접 라면을 끓여주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아무리 프리랜서라지만, 열흘간의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또 2주간 여행을 떠나야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던 내가 며칠 간 네팔여행에 대해 툴툴거리니 아빠는 분명 달래는 마음으로 평생 처음 내게 라면을 끓여줬을 것이다. 이미 네팔여행은 정해진 것을 알면서도 뾰로통했던 건 처리해야하는 일이 많은 상황은 둘째 치고, 막상 아빠와 단둘이서 보내야하는 2주간의 시간이 걱정되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여행일정도 다 알아봐야할 것 같고, 숙소도 나 혼자 다닐 때처럼 아무데나 잡을 수도 없을 것 같고, 아빠 코골이도 심한데 잠은 잘 수 있으려나 등등 걱정이 밀려온다,     


“스티브 잡스가 자서전을 쓴 이유가 뭔지 알아?”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아빠가 미워 대답하지 않았다. 뾰로통한 내 표정을 보고 아빠가 말을 잇는다.     


“스티브 잡스는 결혼을 늦게 하는 바람에 아이들이 어리대. 그런데 어느 날 본인이 아이들이 클 때까지 살아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글로 쓰기로 결심했대. 너희들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자서전으로 남겼대.”     


“아빠는 이번에 자서전을 쓰는 마음으로 가는 거야.”


갑자기 나도 모르게 찡해져서 못 들은 척 라면을 들이키며 중얼거리듯 뱉은 한 마디가 못내 마음에 남는다.     


“그럼 자서전 쓰는 마음으로 혼자 가지, 왜 나랑 가자 그래...”     


나는 그래도 아빠와 나름 친한 딸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야하는 상황이 있다면 살짝 어색한 감은 있어도 불편하진 않았다. 일반적인 딸들처럼 나 역시 아빠 보다는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왔다. 엄마와는 둘이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함께 쇼핑을 하기도, 전시나 공연을 보러가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와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내가 먼저 ‘아빠는 왠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걸.’이라 스스로 단정지어버린 것 같은 마음에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왜 아빠한테 단 둘이 뭔가를 해보자고 제안해본 적이 없었을까. 그리고 결혼하고싶다는 말 한 마디를 던져놓고 결국 아빠가 내게 먼저 여행을 제안하게 만들었을까.    


그 후회의 마음이 결국 나를 아빠의 자서전을 강제로 읽어야하는 독자로 만들었다. 과연 나는 아빠의 자서전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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