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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량 Feb 24. 2024

웹소설, 같이 쓰면 얼마나 더 나아지는지 보여드림

<귀신 잡느라 연차 씁니다> 1년 3개월 집필기 (1)


안녕하세요!

이전 글에서 함께 쓰는 웹소설,

‘웹소설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해서 얘기했었는데요.


지난 해 10월, 드디어 1년여 동안 준비해온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동양 판타지 작품 <귀신 잡느라 연차 씁니다>!


작품 보러 가기



요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한 시점은, 재작년 6월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사실 그때 저는 완전히 패배감에 쩔어 있었어요.

6개월 넘게 준비해오던 웹소설 투자 사업이 물거품이 됐거든요.

공동창업자가 그만두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저는, 정신적으로 너무 상처를 입어서 관련 사업은 다시는 꼴도 보기 싫었어요.


근데 인간이란 게 참 묘해요.

한 달쯤 지나니까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했던 사업인데 왜 포기하나,

이제까지 고생한 게 아깝다,

다시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혼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작가님 한 분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작가님, 실은 지난번 얘기했던 사업
사정이 있어 어그러지게 됐어요.
근데 저는 이 사업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거든요.
이제까지 독자는 돈 쓰는 대상으로만 봤지,
돈 버는 대상으로 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독자를 위하는 이 사업은
잘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작가님,
이 사업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그리는 꿈의 프로토타입이
되어주실 수 있나요?

에반게리온 0호 레이처럼
앞으로 다른 작가님들 모두
'리나모 작가처럼 되고 싶다!’
고 생각하도록 제가 만들 거거든요.


그랬더니, 작가님의 답변이 이랬어요.


그럼 딱 하나 조건이 있어요.

사실 이게 제 무덤 파는 소리일 수도 있는데... 제 매니저가 되어주실 수 있나요?

저는 혼자서는 글을 쓸 수 없는
인간인 거 같아요.
좀 변태 같지만,
매일 글 쓰라고 독촉하는 매니저가 있으면
글을 더 잘 쓸 것 같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알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직장에서 팀장, 실장 역할한 게 10년이 넘는데,

그간 을매나 팀원들 성과 올리는 데 열을 올렸겠습니까~ ㅎㅎ

제 장기니 기대하시라고 큰소리 땅땅 쳤죠.


자, 그리하여 태어나서 처음이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한(?) 매니저 역할이 시작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작가님이 그 제안을 했을 때

제 기분은 최악이었어요.


와, 하다하다 이제 내가
작가 시다바리까지 하는구나.
이거 조아라 다닐 때
다 밑에 애들이 하던 건데…
정말 사업하기 너무 힘들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까지도 정신 못 차리는 못난 대표였습니다 ㅎㅎ)



근데 말이죠.

제가 컨택한 리나모 작가님 말 중에서요.

제 가슴을 울리는 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글을 못 쓰겠다는 거요.

누군가가 글을 쓰라고 쪼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요.


이거 제가 직장 다닐 때 맨날 생각했던 거거든요.


아, 일 말고 나머지는 누가 다 해줬으면 좋겠어.

돈 벌면 꼭 필리핀 가정주부 고용할 거야.

일만 하고 나머지는 아무 신경 안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난 일하는 거 말고는 정말 병신인 인간인데…


음, 그러니까 한 마디로 특출난 한 가지 외에 나머지는 평균 이하인 사람이란 게

그 작가님과 저의 공통점이었던 거죠.


내가 늘 바래왔던,

내가 잘 못하는 일 다 처리해주는 개인 비서 같은 사람,

작가님이 바로 그런 사람을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바로 생각의 전환이 왔습니다!


항상 내가 좋아하는 거 먼저,

내 권리가 먼저,

내 주장이 먼저였던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서포트를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내가 꼭 받고 싶었던 그 서비스,
온 마음으로 나를 도와주는 사람.
그런 사람 내가 겪어본 적 없잖아.

그럼 내가 딴 사람한테 먼저 해보자.
내가 작가님한테 그런 사람이 돼보는 거야.

이 세상에 이런 훌륭한 매니저는
다시 없을 거라는 말이
작가님 입에서 절로 나오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를 해보자!


세상 누구보다 최고의 비서, 하인, 조력자가 돼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순간이

내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뭔가 그동안 오랫동안 고수하고 있던 껍질이 하나 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작가님의 조력자로서 제 역할들을 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1. 보조작가


1)글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 수집

ex. 대학원생이 논문 쓰듯 동양의 귀신/요괴에 관한 서적과 자료 싹 다 뒤져보고 정리함


동양/한국의 괴물 정리 시트. 작품 소재집이라고 할까요 ㅎㅎ 작가님이 잘 사용해주고 있어서 넘나 뿌듯함


동양/한국의 괴담 정리 시트. 괴력난신을 정리할 때 악한괴물, 선한괴물, 악한귀신, 선한귀신, 악한사물, 동료사물, 괴담 등으로 나눠 정리했어요~



2) 캐릭터, 세계관, 스토리 함께 아이데이션


ex. 세계관 논의

[작가] 매니저님, 정말 동판은 안 팔릴까? 이거 나 평생에 쓰고 싶던 작품인데.

[매니저] 쓰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돈 벌려고 쓰는 작품이 잘 될 리가 없잖아요.

그렇게 동판하고 싶으심 동판 하세요.

근데 지금 동판은 싹 다 죽었어요.

작가님이 동판을 꼭 쓰고 싶다면 동판과 현대를 왔다갔다 하는 식으로 해봅시다.

현대 배경이 있어야 독자가 이입하기 쉽잖아요.

작가의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시장(독자)에 어필할 방법 제안


ex. 캐릭터 논의

[작가] 나 이 도깨비 여자로 할려고 했는데, 매니저님은 어떻게 생각해?

[매니저] 놉! 남자해야 됩니다. 여주인공 있는데 다른 여캐 노노! 작가님 같으면 여주 말고 다른 여자들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시장의 전반적 경향을 토대로 캐릭터 디자인


ex. 스토리 논의

[작가] 전투씬이 안 풀려... 어제 오늘 하루종일 유튜브에서 전투씬만 찾아보고 있는데도 안 풀리네 ㅠㅠ

[매니저] 지금 머리카락으로 공격하는 씬이잖아요. 그걸 촉수처럼 쓰거나 채찍처럼 휘둘러보면 어때요?

촉수가 공격하는 거 잘 그려진 만화 A 참조해보면 좋을 듯요. URL 여기 드림

참고할 영화/드라마, 만화, 소설 등 제안



2. 에디터


1) 데일리 피드백

-매일 한 화 분량에 대해 재미있는 부분, 아쉬운 부분, 변경/수정했으면 하는 점 의견 피드백


2) 인기 웹소설 트렌드 전달

-작가의 작품에 참고할만한 것들만 추려서, 최근 인기 웹소설의 특징과 배울 점 전달


3) 윤문

-작품의 최종 톤앤매너 정리해 문장 다듬기

-스토리 흐름 체크해 순서 변경

-소소한 내용 추가 혹은 삭제

-교정교열



3. 매니저


1) 라이프 스타일 체크

-집필 분량 체크

-모닝콜

-육체적 정신적 컨디션 체크


집필에 도움되는 방법 및 슬럼프 극복 방법 제안

(초기 습관 잡을 때 집중)



4. 마케터


1) 시장 반응 선체크

-타 CP사 MD 등 웹소설 관계자들 네트워크 통해 집필중인 작품 피드백


2) 표지 작업 어레인지

-작품과 결이 맞는 일러스트레이터 및 타이포 작가 선정

-표지 시안 기획


3) 작품 유통

-메이저 유통 플랫폼인 카카오, 네이버, 리디북스 중 적합한 곳을 찾아 피칭

-프로모션 협의 및 계약 조건 조율


4) 홍보마케팅

-메이저 플랫폼의 프로모션과 별도로 자체적 홍보마케팅



워후, 이렇게 쓰고 보니 뭐가 엄청 많네요 ㅎㅎ


그렇게 작가님이 평생의 작품이라 생각하고 쓰다 말았던 <눈깔망나니뎐>은, 매니저인 제가 붙으면서 대대적 개작에 들어갔습니다.

(세상에, 눈깔망나니뎐이라니 인간적으로 아무도 안 읽을 제목 아닙니까? ㅎ

망할려고 작정했냐고 난리쳐서 그나마 바꾼 제목이 <호랑무녀뎐>이었어요 ㅎ)


작가님이 개인 사정으로 무려 5년이나 웹소설 집필에서 손을 떼서, 현재의 웹소설 감각으로 다시 쓸 필요가 있었거든요.


재작년 6월부터 4개월 동안 70~80%를 갈아엎고 다시써서, 자신 있게 메이저 플랫폼에 피칭했습니다.


결과는??



두구

두구

두구……



네, 떨어졌어요!!!

(진심 지금만 발랄하게 말할 수 있는 눈물나는 과거)


네네, 작가랑 매니저랑 둘이 아주 뼈를 갈아서 다시 썼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어요.

하하하하하하......

(이거 눈물나는 웃음인 거 아시죠? ㅋ)


보통은 심사에서 떨어지면 작가가 멘탈이 나간다는데,

제가 멘탈이 더 나갔어요.


흥! 칫! 뿡이다!

내가 그렇게 애써서 같이 쓰고 다듬었는데 감히 떨어뜨려!

메이저 플랫폼 눈이 썩었네!!


작가님과 둘이 분노하며 욕을 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정신 못차렸던 거죠 ㅎㅎ)


리나모 작가님은 한국의 조앤 롤링이 될 분인데,

내 눈이 틀렸을 리가 없는데!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작품을 거절당하니,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작가님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자, 작가님 2가지 선택지가 있어.

난 솔직히 이 작품 맘에 들거든.
그러니까 이거 다른 플랫폼에
내는 방법이 있어.
A에서는 떨어졌는데
B에서는 괜찮다고 할 수도 있잖아.
딴 데서도 떨어지면
그때 수정하는 거 생각해보자.

아님, 또 하나 방법은
이 작품을 수정하는 거야.
사실 대형 플랫폼에서
일주일에 수십 개 작품 심사하잖아.
그들 눈이 정확할 확률이 더 높겠지.
작품에 대해 이 정도 상세한 피드백 받은 것도 사실 감사한 일이긴 해.
그냥 떨어졌다고 생까도 할 수 있는데,
줄줄이 피드백 써줬잖아.
이거 바탕으로 수정해서
다시 피칭하는 방법이 있어.

자, 작가님 둘 중에 뭘로 할래?
솔직히 나는 이제까지 내가 쓴 시간 너무 아까워서 전자를 선택하고 싶어.
그냥 이대로 딴 데 내보는 거.

작가님은 어때?


근데 작가님이 그러더라구요.


매니저님,
매니저님만 괜찮으면 이거 수정합시다.

사람 보는 눈이 다 비슷하잖아.
여기에서 떨어졌으면,
딴 데 내도 또 떨어질 거 같아.
그러니까 그냥 지금 고생하자.

매니저님은 떨어진 거
엄청 충격일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이제까지 많이 실패해봤거든.
그래서 떨어진 거 기분은 나쁘지만,
괜찮아. 다시 쓸 수 있어.

매니저님도 나만큼 고생한 거 아는데,
또 고생해달라는 건 미안하지만,
매니저님만 괜찮다면 이거 수정하자.


진짜 천사 아닌가요?!!!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작가가 매니저를 위로하다니요 ㅠㅠㅠㅠㅠㅠ

지금 생각해도 또 눈물이 날려고 하네요 ㅠㅠ



대형 플랫폼으로부터 받은 피드백의 핵심은 2가지였어요.


1. 설정이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다

2. 로판인데 로맨스 분량이 너무 적다


그래서 피드백을 토대로 다시 70~80%를 갈아엎었습니다.

뭐랄까, 제가 보는 리나모 작가님은 이영도, 전민희, 윤현승 이런 1세대 작가들,

그러니까 여전히 낭만이 있는 장르문학적 성향을 가지고 있달까요.


이런 게 제 개취로는 너무 좋지만,

현재의 웹소설 쪽에서는 너무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다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머리에 차가운 물을 한 바가지 씌운 듯 정신을 차렸어요.


저랑 작가님 딴에는 요즘 트렌드에 맞춘다고 맞췄지만, 아직 부족하니까 '복잡하다' '어렵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거잖아요.


웹소설 누가 PC로 봅니까?

독자들 다들 눈곱만한 화면의 모바일로 보는데,

거대한 세계관 거기다 풀어놓으면 독자들이 머리 아프겠어요? 안 아프겠어요?


네네, 우리가 잘못한 거에요. 완전.

우리가 여전히 요즘 웹소설 코드를 못 맞춘 거에요.


그래서 설정 간소화에 들어갔어요.

비하인드 스토리, 촘촘한 복선 이런 거 대폭! 줄였습니다.

특히나 초반에 이런 거 나오는 건 정신나간 짓이죠.


그건 독자가 스토리에 충분히 이입한 다음에 나오면 되는 거고,

초반에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메인 스토리 흐름만 남겼습니다.

캐릭터도 주요 캐릭터 외에 나머지들은 좀 쳐내고요.


그리고 로맨스 요소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죠.

그래서 최근에 인기 로맨스, 인기 로판 웹소설을 10편 넘게 싹 다 훑었어요.

그리고 인기 코드들을 뽑아서 넣기로 했습니다.


수정한 제목은 <이혼하자니까 폭군이 퀘스트를 줍니다>.


딱 봐도 보이죠?

'이혼' '폭군' '퀘스트' ㅎㅎㅎㅎㅎ

혹시라도 고상한 척한다 싶은 건 다 빼고요.

최대한 욕망에 충실하게 쓰려고 했어요.


여기서 딱 한 가지 작가님이 반드시! 사수하고 싶은 요소만 남겼습니다.

바로 장르.

귀신/요괴를 다루는 동양판타지라는 거요.


자, 그렇게 2개월 정도 개작 작업을 하고, 다시 피칭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두구

두구

두구……



다음편에서 이어서 이야기 해드릴게요 ㅎㅎㅎ

웹소설 작가지망생한테는 엄청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ㅎ



내 소설이 팔릴지 안 팔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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