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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래 Jun 21. 2022

Ep 05. 세상의 모든 네넵이, 그리고 무무씨

우리 모두는 김네넵이 될 수 있고, 김네넵이며, 김네넵이었다.


: 캐릭터 세계관 구축하기


  갓생기획에는 두 인물(?)이 있다. 갓생기획에서 근무하는 n년차 직장인 김네넵, 그리고 그의 반려 여우 무무씨. 이들의 세계관을 구체화해야 세부 공간 기획이 가능하기에 날을 잡아 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캐릭터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작은 세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김네넵과 아직은 서먹한 심드렁한 여우를 머릿속에 불러다 놓았다.




김네넵 (n년 차/ 2X / INFP)


열정 가득한 신입이었지만, 이제는 열정을 잃어버린 ‘그냥 대한민국 직장인’. 


지나치게 구체화하면 오히려 공감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에 n년 차, 2X살 정도라고 적었지만, 대충 네넵이를 추정해 보자면 이렇다. 갓생기획실에서 이것저것 하는 프로젝트 멤버이며, 대체로 3,6,9년에 한 번씩 ‘직장인 사춘기’가 온다고 하니 대략 3~4년차일 것이다. 나이는 대략 헤아려 보자면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 정도까지도 되었을 것. (입사 초만 해도 의욕이 넘쳤으니, 분명 이것저것 하느라 칼 졸업은 못 했을 것이다.) 퇴근하면 집으로 달려가고, 방 꾸미기를 좋아하며, 길 여우(?) 출신인 무무씨를 보필 중이고, 뭐든 진득하게 하지는 못한 덕에 취미 부자가 되어버린 그는 당연 INFP일 것이다. 계획보다는 목표(라고 쓰고 희망 사항이라고 말한다) 세우기를 좋아하고, 말로만 갓생 살지만, 미련은 아직 버리지 못한 그. 아마도 재미있어 보이는 것은 거룩하게 도전하고 머쓱하게 포기하는 일상을 살겠지.


김네넵에게 꽤 진심이었기에 캐릭터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잡았었다. 캐릭터를 잡을 때는 예전 직장에서 브랜드필름 스토리라인이나 시나리오를 쓰던 게 도움이 많이 되었고(이걸 여기서 써먹게 되다니), 중간중간 배우들이 캐릭터 분석하는 영상도 가볍게 참고했다.

이를테면, ‘네넵이는 일할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앞에서 할 말은 하는 애일까?’, ‘이런 상황에선 뭐라고 할까?’, ‘집에 와서 많이 후회하는 애일까?’이런 질문들. (웃기게도 이런 질문을 계속할수록 네넵이가 나와 굉장히 비슷해져서 그만 두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기획 과정에서 제일 흥미를 느끼는 일이라서 (드라마 덕후는 이런 거 못 참지) 그렇게까지 했던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게 고객 소통용은 아니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캐릭터를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잡으면 오히려 공감, 몰입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마치 재미있게 읽던 소설이 막상 영화화되면 종종 실망하게 되는 것처럼. 그래서 김네넵 캐릭터는 상당히 디테일하지만 막상 갓생기획실 어디에도 김네넵은 없다. 그가 머물렀던 자리, 방만 있을 뿐. 그가 머무르고 있는 자리의 디테일을 언뜻언뜻 보면서, ‘김네넵, 나 같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김네넵은 성별도 없다!) 우리 모두는 김네넵이 될 수 있고, 김네넵이며, 김네넵이었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김네넵의 캐릭터를 세밀하게 잡고 내부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세부 공간 기획에 많이 도움이 됐다.



  

  여담으로 완전 초반에는 김네넵 캐릭터를 다소 강하게 잡아 보기도 했다. (ex. 무한상사 박명수) 일은 곧 잘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해주는 인물로. 하지만 김네넵이 시즌1에 비해 지나치게 일탈(?)한 것 같기도 하고, 현실성도 떨어져서 지금의 네넵이가 되었다. (열정둥이가 열정이 떨어지는 건 흔한 일이지만, 내로라하는 프로불만러가 되려면 3~4년 사이에 그에게 굉장히 큰 시련들이 있어야만 했다.) 대신 이 성격을 무무씨에게 조금 녹였다.





무무씨 (나이 미상/ 뭐래여우/ ISFP)


네가 6시에 퇴근한다면, 난 5시부터 네 짐을 싸 줄 거야.


  팝업스토어 현장에서 무무씨에 대한 의견이 (시바견이다, 고양이다 등등) 분분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무무씨는 ‘여우’이다. 그것도 언제나 심드렁한 표정을 잃지 않는 티벳여우.


무무씨는 사실 ‘무형의 어떤 캐릭터’에서 시작되었다. 갓생기획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고, 그래서 그 캐릭터는 어떤 형상인데? 그리고 그 캐릭터는 네넵이인가, 아니면 제2의 인물인가 등등 잡아 나갈 것이 매우 많은 상태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친구다. 무엇이 되었든 누구보다 집에 가고 싶은 느낌이 드는 표정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우리 캐릭터는 ‘티벳여우(=모래여우)’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심드렁한 표정과 의욕 없는 눈빛까지 누가 봐도 N년차 직장인스러운 생명체!


이 진중한 생명체가 티벳여우(=모래여우)이다.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우리  황금손 디자이너님이 만드셨다. (낳으셨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미련도 걱정도 없어서 이름은 ‘무무씨’.


무무씨는 티벳여우이지만, ‘뭐래여우’라고 불린다. 조사 중에 티벳여우를 ‘모래여우’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모래 여우’대신 ‘뭐래 여우’로 하자는 팀원 분의 빛나는 아이디어로 풀네임은 ‘뭐래 여우, 무무씨’가 되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속으로 ‘뭐래’하고 받아 치는 당돌함. (이런 당돌함이 네넵이에게는 없다.) 심지어 티벳여우/모래여우를 ‘Serious Fox’라고 부른다고도 하니 정말 찰떡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어릴 때도 심각하다.


무무씨 형상이 나오면서 무무씨도 점차 하나의 ‘캐릭터’를 갖추어 나갔다. 무무씨는 네넵이처럼 집을 사랑한다. MBTI는 이에 걸맞게 ISFP. (ISFP와 ISTP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스트릿 출신이며, 그의 강단 있는 성격답게 직접 네넵이를 간택했다. 마치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열정을 잃은 네넵이에게 ‘일은 일이고, 회사는 회사일 뿐’이라며 그의 멘탈을 관리해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즉, 네넵이가 고객이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존재라면, 무무씨는 고객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존재이다.




무무씨가 워낙 매력적으로 잘 나와서 팝업을 하는 내내 사랑스러웠다. 갓생기획실에 무무씨가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찔한 건 무무씨 인형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무무씨의 의욕 없는 삼백안을 사랑스럽게 살리기까지 태산 같은 피, 땀, 눈물이 있었다. 실낱같은 눈 크기를 조금만 잘못 조정해도 은은하게 돌아버린 낯선 눈빛이 되곤 했으니까…)


캐릭터 세계관을 잡는 과정은 팝업 중 가장 재미있었던 일이었지만, 또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간 디테일을 잡을 때, 추후 정말 사사로운 소품 디테일을 잡을 때도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네넵이라면 다이어리에 이렇게 썼을까, 취미 생활은 저렇게 했을까, 아니면 이렇게 했을까 고민될 때 살아 움직이는 네넵이가 되어 보면 가장 빨리 답이 나왔다. 누군가의 공간에서 그의 하루를 반추한다는 건 그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니까.





* 프로젝트 후 작성한 개인 후기입니다.

* 기획 과정/관련 작업 사항을 가볍게 다루며, 그 때의 상황 위주로 작성하는 일기 형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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