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오픈할 수 있을까?
: 공간 기획하기
팝업 현장을 다녀오고 며칠 동안 주먹을 꼭 쥐고 다녔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그 자잘하게 다양한 공간을 텅 비워둔 채 오픈 날을 맞이하는 꿈을. 아득하게 뻗어있는 오렌지 철제 지붕을. 팝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나서도 이런 꿈을 한번 꿨었는데, 이것이 실제가 되니 겁이 났다. 혹시 예지몽인가 싶은, 그런 애달픈 상상.
그렇게 맞이한 월요일, 기획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도면을 한참을 바라봤다. 모니터에서 도면을 여기 옮겼다, 저기 옮겼다 해도 공간에는 젬병이니 계속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그렇게 한동안을 바라보고 낸 결론은 이거였다.
1) 공간별 스토리가 있을 것
2) 공감 요소를 넣을 것
공간이 다양하기 때문에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으면, 뚝뚝 끊길 것 같아 스토리텔링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이런 멋진 것들이 있어요! 하는 것보다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자는 목표를 정했다.
스토리텔링은 당연히 세계관의 중심이 있는 ‘갓생기획의 김네넵’이었고, 인물과 공간이 있으니, 필요한 건 ‘여기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정하는 것’. 그런데 이걸 스토리에 엮어야 한다면 ‘시간과 공간을 엮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을 정리해서 공간을 동선 별로 기획해 ‘김네넵의 하루 일과: 출근부터 퇴근까지’를 보여주자는 결론에 다다랐고, 5개의 공간은 이렇게 잡혔다.
<갓생기획실: 이 또한 갓생>
출근: 갓생기획실
휴식: 행복한 탕비실
퇴근: 퇴근길 방앗간 (굿즈존)
집: 네넵이의 방
테라스: 넵리단길 (통로, 이벤트)
출근해서 일하고, 탕비실에서 가끔 숨 돌리다가, 퇴근하는 일상.
퇴근하면서 오늘의 화남 비용(=ㅅㅂ비용)으로 랄X블라, 올X브영에서 세일 상품 좀 충동구매하고,
귀여운 건 못 참지! 하면서 소소하게 소비하고,
집에 와서 대박도 꿈꾸다가, 취미도 사부작 거리는 그런 일상이면 ‘이 또한 갓생’ 아닐까?
기똥차게 갓생살진 않아도, 그런 소소하게 성실한 일상을 보여주는 공간,
‘이것 봐, 요즘 이거 엄청 핫하지. MZ 스럽지!?’하는 공감보다는 고객들이 하나하나 보면서
‘김네넵, 제법 나 같네’하며 피식하는 공간,
말로만 갓생, 갓생하면서 매일 허둥지둥 꿋꿋이 살아가는 김네넵을 보면서,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네’, ‘이런 일상도 나름 멋져’하면서 작고 유쾌한 위로를 받는 공간이면 좋겠다 싶었다.
별 일 아니라는 말보다, 괜찮을 거란 말보다,
나랑 똑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백배 천배 위로가 된다.
- tvN 드라마 <또! 오해영>- 中
나는 사실 그냥 드라마 덕후다.
전반적인 갓생기획실 컨셉은 이렇게 잡았다.
갓생기획실: 대한민국 직장인 김네넵의 허둥지둥 갓생살이
갓생기획실에는 완벽하진 않지만 왠지 모르게 친근한 '프로다짐러(a.k.a 아가리 갓생러)' 김네넵의 하루가 담겨 있습니다. 어라, 그런데 친근해도 너무 친근한데...
김네넵, 당신 혹시 나...?
그렇다면 잘 오셨습니다. 김네넵처럼 말로만 갓생 사는 우리네 인생이지만
이 또한 갓생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작심삼일도 열 번이면 한 달이라던데
진짜 까딱하면 갓생 살겠는데요?
메인 공간은 사무실, ‘갓생기획실’로 잡았다. 갓생기획과 김네넵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니까. 그 공간에 최대한 고객들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게 무료 나눔 굿즈도 배치하고, 점메추(점심메뉴추천)와 같은 고객 참여 존도 추가했다. 중간중간 고객이 피식할 수 있는 ‘피식 포인트’ (ex. 플랭크 회의, 다이어리)들도 가볍게 잡아두었다. 물론 갓생기획 상품을 자연스럽게 배치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과자, 젤리와 같이 자연스럽게 사무실에 녹아드는 상품들은 더 많이 활용했다.
갓생기획실
좋은 아침! 네넵이의 하루가 시작되는 이곳은 ‘갓생기획실’. 여기 갓생기획실에서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는데요. ‘갓생러’리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어요. 요즘 인스타에서 뜨는 맛집, 성수동 힙플레이스 모두 소중한 영감이 될 수 있답니다. 아, 물론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도 갓생인 거 아시죠?
탕비실에는 갓생기획 상품을 적극적으로 노출하기로 했다. 마치 잘 꾸려진 탕비실처럼! 이 공간은 실제로 바 공간처럼 작고 특이한 공간이라 탕비실이라는 컨셉과 알맞았다. 탕비실 컨셉 덕에 상품도 적극적이지만 꽤 자연스럽게 노출할 수 있었다. 스토리텔링 위주의 컨셉에서는 이렇게 상품을 노출하는 게 어려운 포인트인데, 이 장소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
행복한 탕비실
회사의 낙은 역시 탕비실 아니겠습니까. 아침 점심에 커피 한 잔, 오후 3시 달콤한 커피 한 줌, 동료와 짬 내서 증기는 탕비실 수다는 왜 이렇게 재미있죠. 오늘 탕비실에 편의점 신상 과자가 있다길래 점심 먹고 바로 달려온 네넵이. 이게 바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네요. 소확행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은 안 되는 거 아시죠? 욕심은 금물이랍니다.
꽤 넓은 공간인 굿즈존은 처음부터 굿즈를 팔기로 정했지만, 동선 스토리텔링을 하기가 까다로웠다. 갑자기 굿즈?하는 느낌이 들지 않게끔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했기에 스토리텔링/네이밍에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이 공간 스토리가 풀렸을 때 가장 뿌듯했다! 굿즈존은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친다’는 속담에서 ‘퇴근길 방앗간’이라는 스토리를 끌어왔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자신만의 ‘방앗간’ 하나쯤은 품고 있다. 나는 날이 좋으면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곤 하는데, 이때 나의 방앗간은 맥X날드이다. 홀린 듯이 가서 콘 하나를 부수고 오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약간의 화남 비용(=ㅅㅂ비용)이 필요한 날에는 좀 더 걸어서 백화점 지하 1층 푸드 코너를 돌아다닌다. 뭘 꼭 사지는 않아도 한 번 다녀오면 신기하게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온몸에 쌓인 분노를 여기저기 털고 오는 느낌이랄까. 이 굿즈존도 네넵이의 그런 공간으로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토리를 써 보았다.
퇴근길 방앗간
드디어 퇴근입니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어제 집에 가고 싶지만,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죠. 생각해보니 오늘 너무 열일했어요. 기특한 나 자신을 위해 작은 선물 정도는 괜찮잖아요. 이것도 저것도 귀여운걸요. 작고 귀여운 거 네넵이는 못 참지! 귀여운 것도 잔뜩 보고 사진도 찍으니 어느새 집 앞이네요. 역시 퇴근 후 시간은 빨리 간다니까요.
굿즈존이 처음부터 굿즈존이었던 것처럼 네넵이 방도 처음부터 네넵이 방이었다. 수고스럽게 나누어진 공간들 사이에서 홀로 네모 반듯한 그 곳은 누가 봐도 방이었다. 다행히 컨셉 정하기에도 수월했다. 이 방이 자연스러운 포토존이 되길 바랐다. 물론 아직 어떻게 꾸며야 할지는 전혀 모르는 ‘귀찮은 집순이’의 시점이었지만…
네넵이의 방
하루 종일 아늑한 집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여기는 네넵이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이에요. 방에서는 뭐든 꿈꿀 수 있으니까요. 퇴근 후 갓생 살기가 올해 목표라서 운동도 배워보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이것저것 생각 중이에요. 물론 계속 생각만 하느라 그냥 취미 부자가 되어 버리긴 했지만요. 퇴근 후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시도하는 일상, 아주 기똥찬 갓생은 아니어도 뭐 이 또한 갓생 아니겠어요.
그럼, 오늘도 갓생 사느라 고생 많았어요 :-)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남았지만, 공간 컨셉을 하나하나 정했더니 아주 조금 마음이 나아졌다.
아주… 조금…
* 프로젝트 후 작성한 개인 후기입니다.
* 기획 과정/관련 작업 사항을 가볍게 다루며, 그때의 상황 위주로 작성하는 일기 형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