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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래 Jul 01. 2022

Ep 09. 음침한 네티즌과 친절한 도슨트로 산다는 것

낮에는 디테일을 잡고, 밤에는 반응을 염탐하는 삶



:디테일 잡기


팝업 스토어는 생각보다 변수가 많이 생긴다. 준비 중에는 물론이고, 운영 중에도 사사로운 일들이 생각보다 많이 생긴다. 협업사분들이 상주하시고, 우리도 모두가 당번제로 오픈을 준비했지만, 직접 가야 할 작은 일들이 종종 생긴다. 그럴 때마다 현장에 가서 이것저것 다시 맞춰보고 온다. 회사와 팝업이 가까운 편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특히 나는 매번 팝업 광자처럼 가서 이것저것 디테일을 맞추고는 했는데, 잠시 내가 나중에 마이크로매니저가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을 했다. 그렇다면 정말 끔찍할 텐데, 여태까지 내가 마이크로매니징을 싫어한 것이 동족 혐오 뭐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뭉치들.


쓸데없는 걱정이 많기에 마이크로매니저가 되는 끔찍한 상상은 접어두기로 하고, 팝업에 대한 ‘애정’ 정도로 포장해보기로 했다. 애정은 끊임없는 검색 광자를 낳게 되고, 우리는 모두 지독한 네티즌이 되고야 말았다. 인스타 최근 게시물 새로고침을 참지 못하고, 네이버 블로그의 최신 리뷰를 참지 못했다.


나는 매일 지독한 네티즌 활동을 음침하게 즐기고, 팝업에 은근히 머물면서 구경이 끝난 고객들의 수다를 염탐하고는 했다. 주로 재미있다는 의견이 많아서 음침하게 뿌듯함을 느끼고, 디테일이 좋다는 리뷰를 보고서는 디테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할 수 없었다. 참으로 징그러운 관계자였다.



그러다 음침한 네티즌에게 포착된 동일한 결의 피드백이 있었다. 네넵이가 너무 갓생 사는 게 아니냐는 의문. 그도 그럴 것이 네넵이는 말로만 갓생 산다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꽤 성실히 존경스러운 갓생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가 영혼을 털어 모든 갓생템을 때려 박은 탓이었다. 음침한 네티즌은 이런 피드백을 참지 못하고 다음 날 버선발로 성수에 달려갔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네넵이의 방’에서 책 배열을 바꾼 것. 네넵이 책상에는 사이드 프로젝트 관련 책이 무려 3권이나 있었는데, 주로 이 책을 보고 사람들이 그의 성실함에 놀라는 것 같았다. 사이드 프로젝트 관련 책 하나를 당장 치우고, <왜 아가리로만 할까?>라는 책을 비치했다.



그 다음은 피아노 악보, 네넵이는 피아노를 치고 싶지만, 다짐만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하얀 악보를 보고 ‘네넵이 피아노도 치네?’라고 했다. 안 되지, 절대 안 되지. 당장 가서 다 채워지지 못한 포도알들을 가득 그리고 왔다. 물론 작심삼일 컨셉에 딱 맞게 한 3일 정도로.



피드백을 즉각 반영해 디테일을 매일 조금씩 맞춘 덕분에 점점 컨셉과  맞게 되었고, 물론 이런 반응의 변화 역시 음침한 네티즌 활동을 통해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 의도했던 ‘네넵이를 통한 진한 공감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있었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던 건 다이어리였다. 나의 비루한 다꾸를 사진 찍어 올리고 하나하나 보는 고객들에게 눈물 나게 고마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나 같은 음침한 네티즌 정도야 뭐 껌이지. 나는 5월 말에 계획했던 6월 다이어리 활동을 시작했고, 급기야 원남동까지 가서 다이어리 소품을 사 오는 열정을 보였다.


5월 자 다이어리
6월자 다이어리


6월 다이어리를 리뉴얼하면서 네넵이 회사 동료의 쪽지, 팀장님의 법카 찬스 쪽지, 담배 케이스를 위장한 초콜릿 케이스 등을 추가했다. 인스타 유머 계정에서 긁어모았던 짤들을 활용했다. 특히 저 초콜릿 케이스는 나도 사무실에서 만들어서 쓰고 있다. (덴스 멀티 케이스가 좋습니다.) 이런 것들을 배치하면서도 누가 알아볼까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알아보고, 웃어 주셨다.



킨더초콜릿을 케이스에 담아서 보관하는 네넵이
팀장님 글씨가 나오지 않아 진짜 팀장님이 써주셨다 ㅋㅋㅋ


휴무는  이틀이었는데, 직관적인 휴무 표기보다는  또한 우리의 컨셉에 맞게 하는  재미있을  같았다.  유리에 비치는 일력 문구에 맞게 휴무 문구를 달리 했다. 팝업에 찾아오는 고객이 아니더라도, 지나다니면서 한번씩 피식하길 바랐다. 사소해 보여도 그런 작은 요소들이 모여, 소통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드자이너님이 넣어주신 적절한 포즈의 무무씨


음침한 네티즌 활동을 하지 않는 날에는 친절한 도슨트로 일했다. 팝업이 오픈으로 치달을수록 지인들에게 죽는 소리를 했기에 가족과 친구들이 친히 보러 와줬다. 모든 친구들을 맞이할 수는 없었지만, 일정이 되는 한 도슨트를 해주고, 좋아해줬다. 마치 친구 졸업 전시를 보러 온 것처럼. 졸업 전시 같은 거 해보지 않았지만, 이런 느낌이 아닐까 했다. 특히 그들이 깨알같이 활용된 다이어리를 보며 흥미로워 했다. 과장님을 싫어하는 모 회사의 그녀는 과장님이 적혀 있는 네넵이의 일기가 자신을 소재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통쾌해했다. 누군가에게 이해 받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결과물에 같이 웃고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친히 찾아온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도슨트를 가장한 돼지파티


팝업을 하는 24일 동안 사사로운 일들이 많았지만, 디테일을 맞춰가고, 소통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응원 받는 즐거움이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 프로젝트 후 작성한 개인 후기입니다.

* 기획 과정/관련 작업 사항을 가볍게 다루며, 그 때의 상황 위주로 작성하는 일기 형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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