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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래 Jul 01. 2022

Ep 08. 이 또한 갓생

선생님… 제가 살아 있나요? 왜죠…?




: 막바지 준비



오픈이 일주일도 안 남은 시점, 서서히 말라가는 갓생기획 멤버들. 하지만 말라갈 시간조차 없다. 오픈이 일주일도 채 안 남았지만 챙길 건 아직 너무나도 많다. 이때부터는 꿈에서도 뭔가를 열심히 붙이고, 매일 눈 두덩이가 퉁퉁 부었으나, 대충 코시국 역병의 후유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발주한 굿즈들이 하나둘 도착하니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싶었다.



D-4~D-3 (5/16-5/17)


이때부터 공간 디자이너님은 현장 감리를 가시고, 우리는 자잘한 소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자잘하게 챙기는 소품일 뿐인데, 왜 이렇게 많은 것 같죠? 결국 모두 찢어져서 한 명은 문구류를 사러 가고, 한 명은 굿즈를 체크하고, 두 명은 바이닐을 사러 갔다. 바이닐은 네넵이가 ‘무리해서’ 즐기는 취미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구하러 다니면서 네넵이가 ‘정말’ 무리하는 거였다고 생각했다. 1주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적절하게 힙한 바이닐을 제때 구하려면 발로 뛰는 수밖에. 디자이너 한 분은 회현과 이태원에, 나는 동대문 쪽을 뒤졌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이닐 상점은 왜 이렇게 저녁 오픈이 많고, 휴무를 많이 하는지. 역시 바이닐 감성을 살리기에는 저녁인가. 우리는 모두 바이닐 문외한이었기에 그저 예쁘다, 감성적이다 싶으면 집었다. 그렇게 모인 알 수 없는 6장의 바이닐. 아직도 그 바이닐에 어떤 음악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충 네넵씨의 감성은 맞추지 않았을까 한다.


모자이크 서울과 네넵이 방


여담으로 나는 동대문 쪽에 있는 ‘모자이크 서울’을 방문했는데 종류도 다양하고 중고샵이라서 저렴했다. 장충동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너무 고단해 혼절할 것 같아 혼자 저녁으로 1인 보쌈을 때린 건 안 비밀… 맛있었습니다.




D-2 (5/18)


이틀이 남은 시점에도 미루고 미루고 미루던 소품이 남았는데 바로 대망의 다이어리. 네넵이의 업무/개인 다이어리를 재미 포인트로 넣을 거라고 계속해서 말했지만 외면하고 있었다. 다이어리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꾸밀 생각을 하면 정말 까마득했기에…무엇보다 네넵이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어쨌든 한 명이기 때문에 다이어리에 손을 대는 순간, 그 사람이 모든 다이어리를 작성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 팝업은 5월과 6월 사이를 끼고 있는 걸…. (=다이어리 두 달 치) 이때는 디자이너분들이 계속해서 포스터, POP 등을 급하게 쳐내야 하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육체적으로 다소 한가한 내가 지원했다. 그리고 펜을 들자마자 후회하는데…




나는 다꾸에 소질이 없다. 다꾸를 싫어한다. 다꾸 그건 왜 하는 건데… 분명 네넵이도 다꾸 할 열정 따위 없을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구태여 다꾸를 하는 이유는 네넵이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매개체가 다이어리이기 때문이다. 인스타에서 다꾸 장인 레퍼런스를 몇 개 보고 다꾸를 시작했다. 더 이상의 뭔가를 생각해낼 기력을 잃었기에 근 6개월간의 지인과의 일정을 끼워 넣었다. 나중에 자신의 이름이 다이어리에 있는 걸 보고 좋아했던 친구들을 보고 작게 뿌듯했다. 그렇게 나의 업무+일정에 약간의 스토리를 보태 5월 업무 다이어리와 달력을 완성했다.






5/19 (D-1)


 이어서 상품 기획 노트. 할매니얼 트렌드를 활용해 최근에 갓생기획에서 나온 ‘바프 쌀로별 마늘빵맛’을 가지고 작성했는데, 이건 생각보다 금방 끝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개인 일기장. 가장 네넵이의 마음이 잘 담겨야 하는 다이어리이기에 많이 고민했다. 실제로 만나면 자기 팀 과장님에게 언제나 화가 나 있는 모 회사의 내 친구 이야기, 매일 갓생 자극만 받는 나, 복권이 일상인 전 회사 동료 이야기를 합쳐서 네넵이의 일상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네넵이가 되었다…



다른 디자이너님은 컴퓨터 배경 화면을 만드셨다. 최종, 진짜 최종, 진짜진짜_최종 같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폴더명과 현실 고증하는 투명도 58%의 엑셀 카톡창 등의 디테일을 잡은 덕에 하이퍼리얼리즘 갓생기획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오픈 전날의 이야기이다. 또르르…



팝업을 하면 정말 이런 일까지 하게 된다. 할 때는 기막히고 힘들었는데, 막상 사람들이 다이어리를 찍어서 올리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새 누가 시키지 않아도 6월 다이어리까지 하게 되는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바리바리 소품을 싸서 현장으로 떠났다.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오늘은 왠지 집에 빨리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갓생기획실 소품을 비치하고, 포스터를 붙이고, 탕비실 물품과, 굿즈를 모두 손수 진열했다. 마치 오늘 이사 온 사람처럼 네넵이 방도 반 정도 꾸며 주었다. 저녁 8시의 일이었다. 역시나 빨리 가긴 글렀구나. 이직을 하고 나서는 나름 쾌적한 워라벨을 유지했었는데 오랜만에 예전 회사 생각이 났다. 아이데이션이나 영상 촬영을 할 땐 새벽 달을 보며 집에 가곤 했다. 하지만 팝업은 내가 직접 몸까지 움직여야 하니, 그야말로 극악의 난도였다. 게다가 그때에 비해 늙어버렸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협력사와도 으쌰으쌰하면서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사실 그 시간의 기억이 조금 삭제된 것 같다. 확실한 건 팀원들과 일종의 전우애(?) 같은 게 생겼다는 것. 반수면 상태로 이곳이 너무 비어 보이니 내일 아침에 뭔가를 사 오거나, 만들어서 채우자는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헤어졌다. 새벽 3시를 향하는 시간이었다.


서울숲 등대 나야나





가오픈 D-DAY (5/20)




다음 날 일어났는데 꿈인 줄 알았다. 다리 여기저기에 휴족 시간을 붙이고 잤는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망할…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니…나는 작업을 마저 하기 위해 현장으로, 디자이너 두 분은 화분 거치대 사러 마트로, 다른 디자이너 분들은 소품 제작 및 프린트를 위해 사무실 직출하셨다. 이 날은 아직도 꿈 같다. 몽롱한 상태로 전우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다행히 모두가 살아있었다….



막판까지 디테일을 잡았다. 네넵이 책상 앞에 타공판을 꾸미는 일이 대다수였다. 사람들이 의외로 좋아한 ‘두 번 생각하고 말했나요?’ 포스트 잇은 예전 회사에서 선배 카피라이터가 그녀와 친한 AE에게 자주 하던 말이다. (보고 있나요? 그건 정말 정말 중요한 명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타공판의 큰 면적을 차지하는 나의 해방일지st 디자인 팀장의 상처뿐인 피드백은 실제로 우리 팀장님께서 작성해 주셨다. (팀장님은 너무 안 좋은 피드백이라며 걱정하셨지만, 우리 팀장님은 카피에도 디자인에도 절대 그런 피드백을 주시지 않는다 ㅋㅋㅋ 그런 분이었다면, 아예 요청하지 않았을 것^^^^…) <나의 해방일지>는 초반에 그렇게 인기가 있던 드라마가 아니었지만 꾸준히 즐겨보던 드라마였다. 하지만 요즘에 손석_구씨가 빵 뜨면서 모두가 ‘나의 훼방일지’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역시 팝업의 가장 큰 영감은 드라마다. (????)


너무 새벽의 모습이라 모자이크ㅋㅎㅋㅎ


취객처럼 비틀거리며 디테일을 맞추고 보니 어느새 막바지였다. 마무리된 것 같으면서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계속 들었지만, 그것은 진행하면서 차차 잡아가기로 했다. 비어있는 틈을 타 네넵이 방에서 갓생러 팀원들끼리 초췌하게 사진 한 방 찍고, 방문 온 모든 팀원들과 커피 한 잔씩 때리고 퇴근했다. 이날 저녁은 정말이지 기억이 단 하나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오픈을 하긴 하는구나…! 했던 생각뿐.



 장하다! 장해!




* 프로젝트 후 작성한 개인 후기입니다.

* 기획 과정/관련 작업 사항을 가볍게 다루며, 그 때의 상황 위주로 작성하는 일기 형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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