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살아 있나요? 왜죠…?
: 막바지 준비
오픈이 일주일도 안 남은 시점, 서서히 말라가는 갓생기획 멤버들. 하지만 말라갈 시간조차 없다. 오픈이 일주일도 채 안 남았지만 챙길 건 아직 너무나도 많다. 이때부터는 꿈에서도 뭔가를 열심히 붙이고, 매일 눈 두덩이가 퉁퉁 부었으나, 대충 코시국 역병의 후유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발주한 굿즈들이 하나둘 도착하니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싶었다.
D-4~D-3 (5/16-5/17)
이때부터 공간 디자이너님은 현장 감리를 가시고, 우리는 자잘한 소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자잘하게 챙기는 소품일 뿐인데, 왜 이렇게 많은 것 같죠? 결국 모두 찢어져서 한 명은 문구류를 사러 가고, 한 명은 굿즈를 체크하고, 두 명은 바이닐을 사러 갔다. 바이닐은 네넵이가 ‘무리해서’ 즐기는 취미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구하러 다니면서 네넵이가 ‘정말’ 무리하는 거였다고 생각했다. 1주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적절하게 힙한 바이닐을 제때 구하려면 발로 뛰는 수밖에. 디자이너 한 분은 회현과 이태원에, 나는 동대문 쪽을 뒤졌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이닐 상점은 왜 이렇게 저녁 오픈이 많고, 휴무를 많이 하는지. 역시 바이닐 감성을 살리기에는 저녁인가. 우리는 모두 바이닐 문외한이었기에 그저 예쁘다, 감성적이다 싶으면 집었다. 그렇게 모인 알 수 없는 6장의 바이닐. 아직도 그 바이닐에 어떤 음악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충 네넵씨의 감성은 맞추지 않았을까 한다.
여담으로 나는 동대문 쪽에 있는 ‘모자이크 서울’을 방문했는데 종류도 다양하고 중고샵이라서 저렴했다. 장충동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너무 고단해 혼절할 것 같아 혼자 저녁으로 1인 보쌈을 때린 건 안 비밀… 맛있었습니다.
D-2 (5/18)
이틀이 남은 시점에도 미루고 미루고 미루던 소품이 남았는데 바로 대망의 다이어리. 네넵이의 업무/개인 다이어리를 재미 포인트로 넣을 거라고 계속해서 말했지만 외면하고 있었다. 다이어리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꾸밀 생각을 하면 정말 까마득했기에…무엇보다 네넵이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어쨌든 한 명이기 때문에 다이어리에 손을 대는 순간, 그 사람이 모든 다이어리를 작성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 팝업은 5월과 6월 사이를 끼고 있는 걸…. (=다이어리 두 달 치) 이때는 디자이너분들이 계속해서 포스터, POP 등을 급하게 쳐내야 하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육체적으로 다소 한가한 내가 지원했다. 그리고 펜을 들자마자 후회하는데…
나는 다꾸에 소질이 없다. 다꾸를 싫어한다. 다꾸 그건 왜 하는 건데… 분명 네넵이도 다꾸 할 열정 따위 없을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구태여 다꾸를 하는 이유는 네넵이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매개체가 다이어리이기 때문이다. 인스타에서 다꾸 장인 레퍼런스를 몇 개 보고 다꾸를 시작했다. 더 이상의 뭔가를 생각해낼 기력을 잃었기에 근 6개월간의 지인과의 일정을 끼워 넣었다. 나중에 자신의 이름이 다이어리에 있는 걸 보고 좋아했던 친구들을 보고 작게 뿌듯했다. 그렇게 나의 업무+일정에 약간의 스토리를 보태 5월 업무 다이어리와 달력을 완성했다.
5/19 (D-1)
이어서 상품 기획 노트. 할매니얼 트렌드를 활용해 최근에 갓생기획에서 나온 ‘바프 쌀로별 마늘빵맛’을 가지고 작성했는데, 이건 생각보다 금방 끝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개인 일기장. 가장 네넵이의 마음이 잘 담겨야 하는 다이어리이기에 많이 고민했다. 실제로 만나면 자기 팀 과장님에게 언제나 화가 나 있는 모 회사의 내 친구 이야기, 매일 갓생 자극만 받는 나, 복권이 일상인 전 회사 동료 이야기를 합쳐서 네넵이의 일상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네넵이가 되었다…
다른 디자이너님은 컴퓨터 배경 화면을 만드셨다. 최종, 진짜 최종, 진짜진짜_최종 같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폴더명과 현실 고증하는 투명도 58%의 엑셀 카톡창 등의 디테일을 잡은 덕에 하이퍼리얼리즘 갓생기획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오픈 전날의 이야기이다. 또르르…
팝업을 하면 정말 이런 일까지 하게 된다. 할 때는 기막히고 힘들었는데, 막상 사람들이 다이어리를 찍어서 올리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새 누가 시키지 않아도 6월 다이어리까지 하게 되는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바리바리 소품을 싸서 현장으로 떠났다.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오늘은 왠지 집에 빨리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갓생기획실 소품을 비치하고, 포스터를 붙이고, 탕비실 물품과, 굿즈를 모두 손수 진열했다. 마치 오늘 이사 온 사람처럼 네넵이 방도 반 정도 꾸며 주었다. 저녁 8시의 일이었다. 역시나 빨리 가긴 글렀구나. 이직을 하고 나서는 나름 쾌적한 워라벨을 유지했었는데 오랜만에 예전 회사 생각이 났다. 아이데이션이나 영상 촬영을 할 땐 새벽 달을 보며 집에 가곤 했다. 하지만 팝업은 내가 직접 몸까지 움직여야 하니, 그야말로 극악의 난도였다. 게다가 그때에 비해 늙어버렸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협력사와도 으쌰으쌰하면서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사실 그 시간의 기억이 조금 삭제된 것 같다. 확실한 건 팀원들과 일종의 전우애(?) 같은 게 생겼다는 것. 반수면 상태로 이곳이 너무 비어 보이니 내일 아침에 뭔가를 사 오거나, 만들어서 채우자는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헤어졌다. 새벽 3시를 향하는 시간이었다.
가오픈 D-DAY (5/20)
다음 날 일어났는데 꿈인 줄 알았다. 다리 여기저기에 휴족 시간을 붙이고 잤는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망할…아직도 내가 살아 있다니…나는 작업을 마저 하기 위해 현장으로, 디자이너 두 분은 화분 거치대 사러 마트로, 다른 디자이너 분들은 소품 제작 및 프린트를 위해 사무실 직출하셨다. 이 날은 아직도 꿈 같다. 몽롱한 상태로 전우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다행히 모두가 살아있었다….
막판까지 디테일을 잡았다. 네넵이 책상 앞에 타공판을 꾸미는 일이 대다수였다. 사람들이 의외로 좋아한 ‘두 번 생각하고 말했나요?’ 포스트 잇은 예전 회사에서 선배 카피라이터가 그녀와 친한 AE에게 자주 하던 말이다. (보고 있나요? 그건 정말 정말 중요한 명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타공판의 큰 면적을 차지하는 나의 해방일지st 디자인 팀장의 상처뿐인 피드백은 실제로 우리 팀장님께서 작성해 주셨다. (팀장님은 너무 안 좋은 피드백이라며 걱정하셨지만, 우리 팀장님은 카피에도 디자인에도 절대 그런 피드백을 주시지 않는다 ㅋㅋㅋ 그런 분이었다면, 아예 요청하지 않았을 것^^^^…) <나의 해방일지>는 초반에 그렇게 인기가 있던 드라마가 아니었지만 꾸준히 즐겨보던 드라마였다. 하지만 요즘에 손석_구씨가 빵 뜨면서 모두가 ‘나의 훼방일지’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역시 팝업의 가장 큰 영감은 드라마다. (????)
취객처럼 비틀거리며 디테일을 맞추고 보니 어느새 막바지였다. 마무리된 것 같으면서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계속 들었지만, 그것은 진행하면서 차차 잡아가기로 했다. 비어있는 틈을 타 네넵이 방에서 갓생러 팀원들끼리 초췌하게 사진 한 방 찍고, 방문 온 모든 팀원들과 커피 한 잔씩 때리고 퇴근했다. 이날 저녁은 정말이지 기억이 단 하나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오픈을 하긴 하는구나…! 했던 생각뿐.
장하다! 장해!
* 프로젝트 후 작성한 개인 후기입니다.
* 기획 과정/관련 작업 사항을 가볍게 다루며, 그 때의 상황 위주로 작성하는 일기 형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