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 건강했으면 좋겠어. 슈퍼 항체 있는 것처럼 확진자 하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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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오픈으로 치닫는 팝업… 할 일은 점점 늘어나고 체력은 바닥난다. 재택근무의 효율성을 극찬하는 ‘요즘 세대’이지만 팝업만큼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하루하루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재택근무가 효율적이라니 뭐니 하는 것도 사무직인 나의 편협한 의견이었다. 팝업은… 사무직이 아니었다. 그저 사무실의 정령이지. 일단 출근해서 보자는 마인드로 삐걱삐걱 오픈을 준비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 지고야 마는데…
오픈이 2주가 남은 주말, 우리 집 현관에도 역병이 들어온 것이다. 첫 번째 확진자인 혈육을 방에 확실히 격리시키고 고민했다. 다음 주에 무조건 출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갑자기 목이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고뇌 끝에 집을 버리기로 했다. 무턱대고 회사 주변 호텔을 일주일 정도 잡았다. ‘그래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가는 거야.’ 하지만 자기 전 버리려던 키트에 흐릿하게 2줄이 그어져 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 싸늘한 공포였다. 공포도 잠시, 아침에는 뚜렷한 2줄이 되어 확진 후, 구시렁대며 혈육과 겸상을 시작했다.
하필 지금 역병이라니. 내가 역병이라니! 비극을 팀에 보고하고, 노트북은 무사히 퀵으로 받았다. 차분히 일을 다시 시작했다. 다행히 팀원분들은 모두 멀쩡했다. 또 다행인 건 내가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는 것. 다들 목도 나가고, 열도 펄펄 난다는데 나는 가벼운 몸살처럼 골골거리며 한 주를 보냈다. 그리고 무수한 전화와 메신저, 톡을 받으며 역시 팝업 재택근무는 안된다 생각했다.
이 주간에는 여태껏 밀린 활자들을 토해 내야 했다. 그래, 토해낸다는 말이 적당했다. 다행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내가 지금 역병에 걸리려고 이 많은 걸 남겨 두었구나. 그런데 조금은 해두지 그랬니… 역병을 함께 극복했던 활자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1) 공간 설명 + 리플릿
먼저 가장 수월한 공간 설명 커팅 시트와 리플릿 등을 작업했다. 리플릿에는 고객이 읽기 편하도록 최대한 간결한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TMT (Too Much Talker)인 나는 이 작업에 많은 시간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2) 일력
첫 제안부터 있었던 일력이다. 휴무까지 합쳐서 총 24일이 담겨 있다. 일력은 단순히 날짜를 알려주는 역할도 하지만, 배치한 이유는 언젠가 인스타 지인이 ‘일력 챌린지’를 하는 게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력 챌린지는 그야말로 매일 일력을 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챌린지’까지 한다는 것이 어리둥절했지만, 막상 일력을 사용하다 보니 쉽지만은 않은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바쁘고 정신없게 살다 보면, 어느 날은 일력을 한 줌은 찢어야 한다. 마치 예전에 ‘하늘 보기 챌린지’와 같은 느낌이랄까. 소소한 갓생과 어울린다 생각해 일력마다 재미있는 문구/밈을 넣었다. 소소한 갓생이자, 하나의 피식 포인트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3) 다이루어진다_른 이름으로 저장
직장인들은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심지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 필요할 때도 많다. 이를테면 출퇴근길 순간이동 하기, 탕비실의 투명인간 되기 등등. 하지만 많은 능력이 부족하다. 갓생기획실은 이런 능력을 잠깐이라도 소망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회사에서는 뭐 하나 되는 일 없어도 폴더에 초능력 파일을 저장하면 바로 이루어지는 초능력들. 그래서 폴더 모양 종이 파우치를 만들고, 초능력 파일 미니 엽서를 만들었다. 앞에는 ‘인생 2회차의_연봉 협상력.zzan’ (zzan: 짠!하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의성어)등의 초능력을 파일 저장명처럼 쓰고, 뒤에는 그 능력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방식이었다. 무려 16개의 초능력이 필요해서 처음에는 조금 막막했지만 필요한 능력이 워낙 많기 때문에 출근-업무-퇴근-회식 등으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칸이 부족하다.
+)
역시 털리지 않는 강철 멘털과 인생 2회 차의 연봉 협상력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멘털 털리지 않고,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그날까지 대한민국 직장인 파이팅... 또륵 ㅜㅜ
4) 상품 엽서 8종
가장 고민을 하다가 마지막까지 남겨진 활자 미션이었다. 상품을 빼고는 갓생기획을 이야기할 수 없다. 김네넵이 하는 일이며, 고객과 소통하는 건 '상품'이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상품을 어찌어찌 진열하긴 했는데, 상품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갔으면 했다. 그래서 MD와 협의해 상품마다 스토리를 입혔다. ‘오뚜기 스프라면’에서는 예전 급식 시간 ‘수다날’의 추억을, ‘최고심의 버텨갈릭팝콘’에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나를, 마블 히어로와 콜라보한 햇반 디스펜서는 ‘K-히어로의 밥심’을 입혔다. 모든 고객들이 그 활자를 다 읽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그 상품을 보고 친숙함을 느낄 테니까. 그 외에도 갓생기획의 스토리, 네넵이가 무무씨에게 간택당한 비하인드, 늦은 밤 편의점의 위로를 추가했다.
그 중 내가 가장 아끼는 스토리는 편의점 스토리이다. 언젠가는 편의점이 주는 위로를 쓰고 싶었다.
편의점이 주는 위로에 대해 생각해 본 건 어느 앨범 재킷을 본 이후였다. 예전에 우리 팀 공간 디자이너님이랑 일본어 학원 다녔을 때 디자이너님이 키린지의 <Crazy Summer>이라는 노래를 소개해주셨는데, 재킷 이미지가 편의점스러웠다. 물론 편의점 관련 노래는 아니지만 그 앨범 재킷과 노래에서 오는 평온함이 너무 좋았어서, 이런 감성을 한 번쯤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낮의 편의점은 활기차고 바쁘지만, 밤에 편의점이 주는 위로는 분명히 있다. 전 회사 앞에 큰 편의점이 하나 있었는데 야근할 때 그렇게 많이 들락날락거렸다. 야근 식대를 꽉꽉 채우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건 일상. 제안이 있는 새벽녘에 유일하게 반짝이는 곳은 편의점이었다. 종종 편의점에 가서 젤리를 잔뜩 사와 우물거리며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곤 했다.
이처럼 힘들게 공부하고, 일하고 귀가하는 어두운 길가에서 유일하게 반짝이는 건 편의점뿐일 때가 많다. 특히 영업 제한이 있었던 얼마 전까지의 시국에는 더욱 그랬다. 누군가는 그런 편의점에서 위로를 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몇 번을 고쳐 썼기에 마음이 많이 간다.
<수고했어 오늘도>
야자 끝나고 집 갈 때
시험 기간 밤샘할 때
늦게까지 야근할 때까지도.
내 하루는 이토록 긴데
다른 하루들은 왜 이리 빨리 끝나는 거 같죠.
나는 그럴 때 편의점에 가요.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고
어둑한 거리에서 날 보고
반짝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더라고요.
들어가면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골라요.
하루 종일 내 뜻대로 되는 거 하나 없었는데
편의점에선 내 맘대로 고를 수 있잖아요.
내가 고른 시원한 맥주 한 캔,
바삭한 과자, 달콤한 젤리,
이게 바로 행복 아니겠어요.
5) 뽑기용 오늘의 운세
뽑기는 팝업의 국룰이다. 엠지렐라 활동을 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팝업에는 뽑기가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우리도 참을 수 없지. 뽑기에는 바닥 경품과 쿠폰을 두고, 추가로 포춘 쿠키같이 오늘의 운세 문구를 넣었다. 마치 바나프레소에 가면 영수증 스티커에 오늘의 문구가 한 줄 있는 것처럼. 바나프레소의 가성비 좋은 음료도 성공 요소이지만, 이런 세심한 문구도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구는 중간중간에 피식하는 문구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자존감을 높여주는 기분 좋은 문구로 구성했다. 갓생기획실에 찾아오는 고객들은 대체로 자신의 일상을 가꾸는 데 관심이 있을 테고, 이런 주문 같은 작은 문구들은 실제로 일상을 가꾸는 데 작지만 큰 힘이 되니까. 문구들은 평소에 아카이빙한 문장들을 활용하거나, 내가 듣고 싶은 문구들로 구성했다.
활자와 함께한 슬기로운 격리 생활은 빠르게 끝나고 나는 다행히도(?) 즉시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었다. 오픈을 1주일 남겨 둔 시점이었다.
* 프로젝트 후 작성한 개인 후기입니다.
* 기획 과정/관련 작업 사항을 가볍게 다루며, 그 때의 상황 위주로 작성하는 일기 형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