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확실한 것

Thomas Benjamin Kennington

by 헤븐

시간의 가치는 그것의 짧음에 있다. 영원할 수 없는 유한한 시간 속의 인간이라. 그래서 우리는 어떤 짧은 장면에도 충분히 홀릴 수 있고 그 기억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다 이윽고 사라진다. 감정이나 기억도 마찬가지다. 탄생된 그것들은 시간의 영속성 앞에서 상쾌하게 무릎을 꿇고 말겠다. '현재' 라 생각되는 시간 속에서 파생된 감정이나 기억도 언젠가 속수무책으로 '과거'의 것이 되어 버린다. 물론 어떤 기억이나 감정들은 예전의 것이라 일컬을 수 있을 만큼 그리 쉬이 과거로 흘리지 못한 채 내내 현재 상태에 머무르고 말기도 할 테지만.



니체의 말에 기대어 표하자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들이라 어쩔 수는 없겠다. 시간 속에서 파생된 감정이나 생겨버린 기억에 대해 사실을 부정하듯 저항하기보다 그것마저도 순순히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수밖에는. 그 또한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내재한 인간이라 그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를 테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까. 기억의 적이 시간이라면, 그 시간이란 우리들에게 생의 면면들 속에서 참으로 양가적인 어떤 것들을 기어코 건네고 말기도 한다는 것을.



어떤 시간 속에서 탄생된 정념적 기쁨과 희열의 감정 및 기억들은, 동시에 열렬한 절망과 슬픔이 되어버릴 수도 있음을. 마치 연출된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뜻밖의 꿈같은 장면을 현실에서 마주했을 때, 감정과 기억은 우리의 심장과 머리를 겨냥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겠다. 시간 속에서 파생된 기억과 각인된 감정은, 마치 보물 아끼듯 처음엔 애지중지하다가도 결국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는 처참히 무너지고 말아 언젠가 사멸되고 만다는 것을 또한 기억하게 되는 것. 그리하여 격정적 기쁨을 맞이하면서도 동시에 절망의 늪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실존적 인간인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가지고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과, 어느 작가의 말을 차용하자면 인간이란 '행복 대신 불행을 택' 할 수도 있는, 그렇게 지극히 복잡한 동물이라는 점. 나는 그 진실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해를 거듭하며 배워 나가는 중인 것만 같다. 기혼 시장에 뛰어들어 돌봄의 세계까지 맹렬히 참전하면서부터는 더더군다나 왜 아니겠는가. 생존과 생활이라는 영리한 쇼는 생의 엔딩을 찍기 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몇 주째 깜깜이가 된 방의 형광등을 바라보며 이제는 그 일마저도 자체적으로 산뜻하게 갈아 해치울 계획을 소극적으로 도모하면서. 매일 같이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과 변기에 묻은 물 찌꺼기와 교묘히 피어나는 곰팡이들을 어떻게 하면 없앨지를 궁리하면서. 아이들과의 끊김 없는 촘촘한 실랑이 속에서. 책상 위에서는 서비스 모델과 그를 위한 각종 데스크 리서치와 유저 인뎁스 인터뷰를 기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무실 위 달력을 쳐다보며 시누와 형님댁을 비롯하여 시댁에 들고 갈 추석 선물 세트를 은은히 고민하면서.



일상 속 교묘히 피어나고 마는 어떤 분함 들을 없애기 위해 이제는 저녁마다 달리려는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아, 그이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날에는 으례껏 러닝머신 위에서 흠뻑 땀으로 샤워를 하면서도. 나는 스스로 조소를 퍼부으며 떠올렸던 것이었다. 정말이지 알 것만 같다고. 기어코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실망이라는 열매를 피할 수 없고, 그리하여 남는 것은 권태와 환멸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러니 행복은커녕 위험이나 불행을 잘 피하는 것이 도리어 인간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싶으면서도. 물론 그것은 너무나도 윤기 없는 인생을 만들 수도 있기에. 한편으로는 생기와 윤기를 각 시절들 속에서 내내 지켜내기 위해 위험이나 불행도 장렬히 각오하며 긴 세월을 원 없이 대하는, 그야말로 인생의 통쾌한 탐험가들만이 진정한 행불행을 깊숙이 목도할 수도 있는 것임을, 더욱 엄준히 알아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종종 휩싸이고 말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침잠해버리는 것이다.


Thomas Benjamin Kennington, Contemplation



영국의 사회 현실주의자이자 초상화가로 정평난 토마스 벤자민 케닝턴. 그의 "사색 (Contemplation)"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동시에 나 또한 그녀의 옆모습과 조용한 눈동자 안으로 금세 빨려 들어가 버릴 것만 같다. 굳게 다문 앵두빛 도톰한 입술과 약간 창백한 피부마저도 기묘한 지성미를 자극하는 이 작품 속 여성은 도대체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일까. 나는 그녀라는 배경에 락인된 유저 마냥 이탈하지 못한 채 그대로 그녀의 생각 안에 리텐션 된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심장으로부터 부유하고 마는 어떤 기억과 감정을 이윽고 떠올리는 것이다.



형편없는 감정선에서부터 너무 귀해서 눈물이 날 정도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사색은 그녀를 궁지로 몰아가는가 아니면 반대로 구원하는가. 기억은 재앙이 되는가 아니면 불멸의 그리움이 되는가. 어느 쪽이든 그 방향의 결정은 그녀의 몫, 그리고 결국 나의 몫이겠다. 인생의 지평선 위에서 선택을 하는 자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그러니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채로 스스로만이 알 수 있는 희비의 세계는 바로 선택 앞의 인간이 목도하는 시간의 영역일 수도 있음을, 묘하게 알 것 같았다.



가늠하기 힘들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내 시간의 주연에서 산뜻하게 밀려난 기분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내 시간이지만 또한 아니라는 생각. 내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현재와 현실. 자발적 선택에 의한 사회적 매듭이 도리어 나를 짓누르듯 본래의 자신조차 어긋나도록 영리하게 묶여버리고 있다는 느낌.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진실마저도 기혼 시장에 편입된 후에야 뒤늦게 깨달은 채. 긴 세월의 시간 속에서 결국 변해가는 우리와, 그로 인해 탄생되는 부조리하고 부정하지만 좀처럼 없애기도 쉽지 않은 온순하지 못한 심술궂은 상상과 그로 인한 무언의 염원. 이렇듯 치닫는 사색을 없애 뜨리지 못한다면 다만 치열하게 그것들과 마주해야만 비로소 가라앉듯 안도되기도 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또한 생각하고 만다. 사유하는 인간이라면. 최소한 자신의 무지를 제대로 인지하려 한다면. 그리하여 나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모르는 게 너무나 많을 것만 같은 것이겠다. 여전히 생경한 나를 발견하고 말기에. 마치 미지의 섬에 도착한 순진한 탐험가처럼.




Thomas Benjamin Kennington, Homeless



시대의 사실적이고도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화가의 작품은 이렇듯 생의 가려진 슬픔과 절망을 적확히 알려버린다. 여기 안개비 속 회색 도시와도 같은 영국의 어느 거리로 추정되는 곳에 소년이 쓰러지고 있는 중이다. 쓰러졌다고 과거형으로 표현하기엔 아직 현재 진행형 같기만 하다. 다행히 눈은 아직 조금 떠져 있는 상태이지만 이미 온몸의 기운은 빠질 데로 소진된 소년의 곁에는 그의 모친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존재한다. 그녀에게 기댄 채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소년. 차갑게 젖어가는 길바닥 위에 떨궈진 그의 한쪽 팔과 어깨를 부여잡은 채 애타게 소년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은 한 여성. 두 사람의 운명은 어찌 될까. 운명은 왜 연약한 사람들에게 좀 더 가혹한 심술을 부리고 마는 것일까.



엄마는 아이를 지키려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질 수 있겠으나 어쩔 수 없는 확고한 진실은 그의 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대신 아파할 수도 없다는 것이겠다. 그렇게 무력한 절망에 휩싸이며 눈이 감기는 아이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그녀의 가녀린 옆모습이 너무나도 처연하나 동시에 섬뜩한 아름다움마저 자극시키고 만다. 이토록 슬픈 아름다움이 또 있을까. '노숙자 (Homeless)'라는 제목 치고는 두 사람 간의 애절함과 서로를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각자 분투하는 모습이 담긴 그림은 다시금 뇌 속의 기억 회로를 파고든다. 누군가의 절망을 덜어내기 위한 누군가의 침묵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를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편지를 읽는 여성의 모습이 담긴 인물화는 (Reading the letter) 그저 평온해 보일 법도 싶지만 한편 나는 다시금 예민하게 생각하고 만다. 한 손에 들려진 편지와 그것을 읽으며 동시에 한 손으로는 의자를 꼭 쥐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어느 정도 세기의 압력이 담겨 있었을까에 대해서. 손편지는 그녀로 하여금 기다리던 기쁨이었을까 아니면 애달픈 실망을 불러일으켰을까.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지도 어둡지도 않지만 다만 담담한 듯 미묘한 측은함을 자극시키는 것을 보면 내내 편지에 시선이 고정된 그녀의 관찰자로서 나는 그저 헤아려볼 뿐이겠다. 누군가에게 읽히길 바라는 발신자의 마음과 비로소 읽고 난 이후 남겨진 수신자의 마음을 비롯하여 그들의 관계성 마저도.



Thomas Benjamin Kennington, Reading the Letter




서로에게 적당한 실망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생산자로서의 그이와 나였어도 그럼에도 '우리'로 존재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서로를 책망하기보다 결국 곁에 머물 수 있는, 머물러야만 하는 합당하고도 준엄한 이유를 영리하고도 간사스럽게 떠올리며 - 아이들 - 잘 알기 때문에 남겨질 수도 있는 것일 테다. 그리하여 서로에게 되도록 기본적 예우를 갖춘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비난하기를 멈추고 다만 침묵하기를 부단히 애쓰고 마는 것이겠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기혼 시장에서 탄생된 부부는 섹스를 교환하는 유일한 합법적 대상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관계라던, 형편없고 볼품없는 법칙을 공적으로 확인받은 사이겠다. 그리하여 그것을 제대로 잘 지켜내기 위해서는 무대 위 적당한 연기력과 연출력을 갖춘 배우가 때때로 될 줄도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음을 기꺼이 기만하는 영특함을 발휘할 것. 그리고 물론 나는 안다. 자신을 속이는 기만에 꽤 훈련된 인간으로서 나는 상당수 영특하다는 것을. 그래서 웃으면서도 울먹인다는 것 또한. 그것이 한 인간을 녹초로 만들거나 궁지로 몰아가거나 기어코 미궁에 빠지게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을 찾지 못한 채 갇혀서 우는 인간...



좋게 해석할 수 없었던 기억의 잔상 앞에서 나는 솜씨 좋은 수선사가 되지 못한 채, 다만 스스로에게 선언하듯 마음으로 말할 뿐이겠다. 아이스크림은 바닐라여야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이제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당신에게 나 또한 그것이 모든 맛의 원천인 그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절대 어떤 맛으로도 변할 수 없겠으니. 당신이 선택한 이런 나는 종종 울적해지면 샹스나 가브리엘의 향기만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랑하는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발화되지 못한 문장을 꾹 누른 채 그대로 입술을 깨물어버리고 만다고. 또한 이런 나는 아직도 성실하게 섹시한 몸과 관능적인 정신을 갖추었음에도 그것 또한 교묘히 감출 줄도 아는 뻔뻔한 생물학적 인간이라는 것. 매사 다음 스텝을 생각하며 분주한 생활 탓으로 바삐 뛰거나 보폭 넓은 걸음이 버릇이 된 인간 앞에서, 팔다리가 긴 사람에게 어울리는 건 그렇게 종종거리듯 쫓기는 바쁨이 아니라 도도한 여유이니 부디 천천히 걷기를 감히도 종용하는 그 목소리는 나로서는 폭력적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내내 위로가 되고 마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슬픈, 앞으로도 그리워할... 문장이었음을. 과거가 되어 버린 목소리는 처음의 마음처럼 내내 재생되지 못할 것임을 알 것 같아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음을.



그이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증오하고 저주한다. 바라는 것 또한 점점 더, 거의 대부분, 시간에 맞춰 사라지는 중이다. 물론 상대는 알지 못한다. 어떤 마음은 이미 종료 버튼이 눌러졌지만 갈라진 균열의 틈 사이로 자신만을 갈아 넣어 간극을 좁히려 한 인간은 침묵한 채로 안간힘을 쏟아내며 지켜내고 있으니까. 모든 것을 혼자 떠 앉고 마는 현실적 고역으로부터 이런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건 사실 타자가 아닌 나에게 있음을 알지만. 되도록 무탈히 이 시절을 통과하려다가도 질식되는 답답함으로 인해 종종거리다 스텝이 꼬여 제 발에 넘어지고 말면...그대로 멈춘다, 눈을 감는다, 입술을 깨문다, 눈물이 흐른다,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린다, 숨을 고른다, 눈물을 닦는다, 반복한다, 시간이 흐른다, 그 사실을 기억한다. 시간은 지나간다는 것. 지나가고 만다는 가장 최적화된 위로...



그래야 하는 것들과 그러고 싶은 것들을 마음 한편에 감춘다. 기억이란 무릇 수선되기 쉽지 않아서 한번 각인된 쓴 기억은 시간만이 답이지만 한 인간의 세계에서 어떤 질식될 것 같은 현실적 시간들은 참으로 느리게만 가면 정말이지 안티프레질하려는 인간도 일순간 부서지고 파괴될 수 있음을. 이것이야말로 당신은 모르지만 내가 아는 확실한 것이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한번 더 선언하자면 시간의 가치는 그것의 짧음에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당신은, 나는, 우리는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상대의 아픔과 슬픔을 외면하지 말 것. 감싸 앉을 것. 당신이 알지 못하는 보석 같은 면을 지닌 댁 내의 존재를 귀하게 여길 것. 함부로 시녀 취급하지 말 것...정녕 잃고 싶지 않다면. 놓치고 싶지 않다면. 그렇다면 되도록 정성껏 아끼고 살펴야 한다는 것을. 부디. 반드시. 마침내. 알 것. 당신은 모르지만 내가 아는 확실한 것들에 대해서...



나는 당신의 하녀가 아니야...

나는... 당신이 숨겨둔 그녀보다 더 섹시하고 아름다울....

나는...절망이랑 싸울거야. 지지 않을 거야.

나는...놓고 싶지 않지만

나는.....


계속. 흐르는 이 인생을. 미지의 섬에 풍덩 뛰어들듯, 탐험 해 보기로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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