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Bergh, Frank Dicksee
아이들의 아침 등원을 무사히 마치고 틈새 운동을 한다. 잠깐의 운동을 마친 후 예정된 오전 일정을 소화하니 어느새 오후 1시가 다 되어 가던 찰나. 귀가를 하던 중 전화기가 울린다. 이제는 울리지 않는 전화기라서 대략 예상이 된다. 광고 전화 혹은 친정어머니 혹은 어린이집 아니면 그이. 예상 밖의 인물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전화기의 울림이 웬일인지 반가웠던 건 아마도 잠깐의 기대 때문일지 모른다. 작년 말부터 내내 묵직하게 가라앉는 마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만드는 뜻밖의 소식이기를, 그런 목소리이기를 바라는 뭐 그런 허튼 기대와 망상 때문일지도.
'여보'라는 이름이 뜬다. 어찌 된 영문인지 반가움과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아마도 그이로부터의 착신음은 일반적이기 않기 때문일 테다. 늘 먼저 대화를 청하거나 일상 속 수다스러움의 원천이자 메인 발화자 역할은 그가 아닌 나의 역할이기에. 그리하여 언제부터인가 먼저 말을 건네 오거나 전화라도 걸려오는 날에는 사실 걱정부터 앞서는 것이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아니면 어디가 아픈가, 아니면 부모님께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니면 무엇일까... 그런 걱정스러움이 먼저 앞서고 마는 것. 무슨 일이 있지 않아도 생각나서 전화를 건 적도 있다곤 했었지만 사실 자주 있는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그래서 걱정을 했었던 것이지만 오늘은 예상 밖의 반전이 있었다. 게다가 기대 이상의 뜻밖의 반전이...
승진을 했다는 그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소년스러움이 묻어나는 예전의 목소리라 생각되었다. 언제나 큰 기복 없이 차분한, 듣기 좋은 톤 앤 매너를 가진 목소리의 주인공도 오늘은 다소 격앙된 기쁨이 조금은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기뻤다. 사실 무척이나 기뻤고 한편으로 뭉클함마저 느껴졌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나 안쓰러움과 동시에 안도감이 밀려왔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예전 우리가 사랑했던 그 시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비슷하게 들리는 것 같아서였을까. 여하튼 20년 이상을 직장인으로서 너무나도 충실하고 정직하게 생활했던 그이의 성실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랬기에 그가 쏟아붓는 에너지와 노력과 객관적인 공헌과 헌신들에 비해 사회적 인정이 매번 어긋나는 것 같아서 참으로 안타까웠기에. 그래서 대신 분해하고 대신 슬퍼하고 대신 안타깝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던 배우자로서의 나였기에. 그랬던 만큼, 그래서 기뻤고 그래서 안도했고 그래서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의 오랜 견뎌냄에 조금 더 견뎌낼 힘이 주어진 것 같았기에. 내가 채워주지 못하는 어떤 힘이. 그렇게 내 일처럼 기뻤기에 나로서도 내면의 묵직한 우울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당신 덕분에. 그이의 기쁨으로 인해. 그 해맑은 목소리로 인해서....
결혼을 해서 기혼자가 된 나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연인일수록 부부일수록 적당한 거리와 서로에 대해 여전히 모르는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결혼제도야말로 격렬할 수 있는 에로스적 사랑을 말끔히 훼손하며 처음에 믿었던 사랑의 영역을 확실히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임을. 그래서일까. 정교한 색채와 예술철학풍의 미학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화가인 '리카르드 베르그'의 이 그림을 보면 자꾸만 우리의 처음, 그 시절의 '사랑' 이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당신에 대해서 모르기에, 그래서 알고 싶다는 욕망. 너라는 미지의 세계로 풍덩 들어가 보고 싶은 갈증. 그리하여 애써 모른 척 해도 결국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격렬한 마음의 파동. 잔잔해 보여도 사실은 내면엔 이미 닿고 싶다는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음을 깨닫곤 스스로도 놀라게 되고 마는 것. 그것은 사랑이었다. 우리들의 한 철, 그 시절의 사랑...
베르그의 이 그림 속 주인공은 스웨덴의 한 여가수와 왕족을 모델로 그려졌다 한다. 석양이 지려는 북유럽 여름의 밝은 저녁 정도로 예상되는 배경은 어느 편에서 보아도 부럽게 느껴진다. 선선한 바람과 딱 좋은 미풍이 부는 상쾌한 온도의 어느 날, 서로 호감이 있어 보이는 두 남녀가 저 편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와 선착장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시선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지만 사실은 서로를 향해 있다는 것이 은연중에 느껴지는 건 다름 아닌 두 사람의 떨어진 거리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방향이다.
분명 그들의 시선은 어딜 봐도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지만 몸은 이미 서로를 향해 있음을. 꼿꼿이 핀 그녀의 허리와 상반신은 확실히 정면의 그를 향한다. 그 또한 오른쪽 발은 난간에 기댄 채 있어 보이나 이미 한쪽 발은 한걸음 나아간 채 그녀를 향하고 있다. 이성적 거리를 지녔으나 확실히 서로를 향하고 있는 두 사람은 누가 봐도 잘 어울려 보인다. 그대로 좀 더 가까이 포개져도, 그렇게 사랑을 시작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고 만다. 왜였을까. 왜 이 그림을 내내 쳐다보면서 나는 눈물이 맺혔던 걸까. 도대체 왜... 무엇이 그토록 그리웠던 것일까.
베르그의 '기사와 아가씨'는 '북유럽의 여름밤' 과는 또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한낮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석양이 지려하는, 아니 이미 지고 있는 것만 같은 늦은 오후의 한 때. 들판의 언덕엔 미풍이 불고 있는 걸까. 기사는 그녀를 추위에서 지켜주려는 것마냥 어깨를 살짝 뒤에서 감싼 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뒤에서 힘껏 앉아버리는 거친 애정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하기에 내 눈에는 그가 누구보다도 확실히 그녀를 아끼며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고자 하는 확고하고도 다정한 품위가 느껴지고 말기에. 그녀가 그런 그의 모습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알았다면 좀 더 기쁜 미소를 띨 수 있진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그녀의 표정은 받는 사랑의 크기만큼의 기쁨이 보이진 않는다. 그만큼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도 시무룩해 보이는 그녀는 시선을 정면으로 향한 채 두 손으로 쥐고 있는 꽃이 바람에 흩날리지 않게 지키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그녀가 고개와 몸을 조금만이라도 그를 향해 돌려 그 다정한 손길과 눈길이 자신을 향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금은 웃을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덜 불안했을까. 한편 내내 불안해하는 그녀를 그대로 한결같이 지켜줄 수 있는 기사의 마음은 과연 영원할 수 있을까. 알 수 없겠지만 다만 사랑이란 그래서 한 시절의 영원을 바라는 누군가의 염원이 강하기에, 그제서야 이뤄질 수 있는 것일지도.
사랑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한결 같이 주고 있는 사람과 반대로 그 사람에게 받고 있음에도 그 확실함에 의심을 하게 되어 불안해하고 마는 것. 그렇다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 말은 정말이지 손색없이 옳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는 모든 일 중 가장 어려운 일이고 최후의 시험이자 증명이며 그 외의 모든 일들은 이를 위한 준비일 뿐이다'라는 것은.
결혼을 하고 10년이 지나 보니 이제야 조금은 부부의 사랑을 알 것만 같다. 한 때의 격렬한 에로스가 영원할 줄 알았지만 그것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변모해 간다는 것에 대해서. 어느새 두 사람은 네 사람이 되어 서로의 처음을 잊은 채로 가족이라는 집단을 향하는 보다 넓은 포용력을 요하는 아가페적 사랑으로 시간을 채워나간다. 그것이 가끔은 못내 아쉽고 안타깝지만 한편 그래서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사랑의 영역이 생긴다는 것을. 그것은 다름 아닌 연민. 측은지심... 상대의 고통과 슬픔이 내 것처럼 아픈 것. 진정한 인간과 인간을 잇는 마음...
기혼녀가 된 이후 어느새 그이를 향하는 마음의 색깔은 확실히 변했음을 느끼고 만다. 격렬하고 뜨거워서 설레는 붉은빛은 어느새 잔잔하고 파동이 덜 한, 어느새 기대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서서히 없어지고도 말기에. 의도치 않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며 속절없이 충실하게 흐르는 시간 앞에서 열심히 생활과 일상을 유지하는 '우리'의 시간은 그러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한편 서로의 안위와 평온과 안녕을 바라는 은은한 은빛으로.
그리하여 참 좋아하는 '프랭크 딕시'의 명작 중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림은 내내 핸드폰 속에 저장되어 아주 가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조용히 떠올리며 위로하고마는 것이다. 한 때 사랑했던 그 시절의 빛나던 나와 당신이 그리울 때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들의 닿기 힘들어서 애달프기만 했던, 창문에 매달린 채로 언제 떨어질 지 모르지만 그 찰나의 키스 한 번이면 충분했을 그 시간의 간절함이 있었기에 그것이야말로 서로의 삶을 지탱했던 것일지도. 물론 그에 반해 누군가들의 에로스는 비록 결혼이라는 매듭으로 연결되며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지만 지나가는 세월 앞에서 어느새 어떤 마음들은 도려진 채로 쓸쓸히 기억 속에만 조용히 머물고 있다는 걸 두 사람은 몰랐을 것이다. 한 때 그들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유일하고도 영원한 사랑이라는 신화를 써 내려가리라 믿었던 어설픈 사랑의 초심자들이었음을.
결혼이라는 사랑의 신화는 확실히 사적인 개인이 아닌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것을, 결혼을 하고 나서야 역설적으로 깨닫게 되었지만 한편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마냥 후회한다고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요즘의 나를 발견한다. 물론 매혹의 대상에서는 서로가 확실히 벗어나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한 동반자이자 생활적인 파트너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당신이 그렇게 충실하게 하루를 살아내면서 가족을 지키려는 이유는. 절망과 우울에 자주 휩싸이면서도 내가 그토록 우리들의 생활과 오늘의 화평을 확고히 유지하려는 분투는. 우리들이 선택한 이 사랑의 형태가 확실히 변했음을 서로 조용하고 슬프게 인정하면서도 역설적이지만 기쁘고도 충실하게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랑' 이 우리의 인생 안에서 그렇게 변하면서도 확연히 존재하기 때문일 테다. 이성과 감성, 좋은 일과 나쁜 일, 냉정과 열정 그 중간 어디쯤에서 계속해서 변하면서도 소멸하지 않고 확실하게 잔존하는 우리의 사랑으로 인해.
오늘. 그이의 기쁜 소식을 듣자 나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기뻤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정체성의 향방에서 길을 잃고 묵직한 우울감으로 인해 한껏 생기를 잃은 주부로서의 나였지만 그이의 기쁨으로 인해 잿빛 같았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을 나는 확실히 느꼈다. 만약 이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아직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이 연민도, 이 측은지심도, 이 뜨거운 전우애로 똘똘 뭉쳐 단체를 유지하는 뜨거운 파트너십도. 결국은 모두 한편 사랑의 일종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한, 결혼 이후 비로소 느끼고 마는 또 다른 사랑의 형태임을...이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소멸되어가지만, 한편 우리가 낳은, 아이라는, 그들이 가장 예쁘고 근사하게 자라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지키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삶은 확실히 충분하다고 믿는 안타까운 우리일지언정.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의 슬픔과 기쁨이 이제는 나의 것만 같은 나는.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열심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끊김 없는, 사랑이기를...
#Source : Frank Dicksee, Richard bergh
https://en.wikipedia.org/wiki/Richard_Bergh
https://en.wikipedia.org/wiki/Frank_Dicksee
(여보... 축하한다... 당신이 잘 되면 나는 이제 아무래도 괜찮다..,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