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Edward hopper

by 헤븐

살다 보면 감정이라는 것에는 대체로 양가성이 존재한다는 걸 느끼고 만다. 마치 빛과 그림자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양가성을 느끼는 세계 중 가장 뚜렷한 영역은 다름 아닌 '사랑' 일 테다. 사랑하지만 증오하고 또한 아끼지만 동시에 기존의 상대가 가진 무언가를 파괴시켜버리고도 싶은 것이다. 보통 그런 감정은 내면을 스스로 적당히 조절하는 데 실패하면서 시작되곤 한다. 심신 그 어느 쪽이든 차곡차곡 어긋나 기어코 삐걱거리다 보면 어느새 기묘하게 뒤틀려버릴 수 있는 것일까. 사랑을 향한 양가적 감정은 그래서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취급주의. 언제나 사랑은 그래서 신중하게 아낄 것을 다짐해야 한다. 물론 다짐했을 땐 이미 후회와 아쉬움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늦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이들과 그이를 사랑한다. 정말이지 이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지 라며, 우습지만 언젠가부터 아주 가끔 혼자서 자찬하듯 중얼거릴 때가 있다. 나보다 우선순위가 되는 그들, 내 감정보다는 타인의 안위와 평온이 더 중요하다고 습관적으로 생각할 때. 그들과의 화평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이나 생각을 서슴없이 재단하거나 검열하는 버릇이 생겼다. 일상의 자잘한 선택에 있어서도 그들의 우선순위와 선호와 호감도가 어느새 좌표의 기준점이 된다. 그것이 가족이라면, 기꺼이라는 생각으로 기쁘게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면서. 그러나 그 뒤에 따라오는 건 묘한 침묵과 인내다. 그리고 훌륭한 연기력까지도 곁들여진다. 괜찮음과 문제없음을 확실하게 못밖아두려는 가족을 향한 어떤 인간의 안간힘.



어쩌면 이런 습관은 여러 시행착오와 상처를 거듭하면서 깨닫게 된 것일지 모른다. 감정이란 모름지기 뗄 수 없는 소중한 관계들에게는 함부로 제멋대로 발산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 며느리는 시댁에. 남편은 처가에.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자신에게 무언가를 계속 바라고 마는 부모에게. 가족으로 연결된 사람들은 각자 무언가를 견디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매듭의 대가는 꽤 사적으로는 울적하며 그 이후의 인생이란 사랑스러운 장면들로만 나열되지 않다는 것쯤은 사실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쩌면 어른이란 그런 사실들을 인정하고 자신의 본능과 욕구를 예의 바르게 자제할 줄 아는 분투력의 여부에 따라 어른됨과 그렇지 않음이 갈릴지도 모를 일이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함부로 날뛰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어른'이랄까. 물론 그런 어른에게도 날뛸 것이 허락되는 유일한 예외상황이 있다면 아마 침실 혹은 밤 일지도 모르겠지만. '밤엔 더 용감하지' 라던 시인의 문장을 나는 확실히 기억하기에.



@Edward hopper, Room in Brooklyn, 1932, Museum of Fine Arts (MFA)


사랑과 증오, 복종과 반항, 쾌락과 고통, 금기와 욕망 등 서로 대립적인 감정 상태가 공존하는 심리적 현상. 바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빛과 그림자 같은 양가성하면 떠오르는 화가와 그림들이 있다. 바로 '에드워드 호퍼'다. 그의 그림에는 언제나 고립과 고독이라는 키워드가 해시태그로 붙는다. 대중적으로도 상당수 팬층이 두터운 이유도 어쩌면 그의 작품들은 우리들의 현실을 그대로 투영시키고 있는 것 같기에.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인 호퍼는 유난히 방이라는 공간, 그리고 현대인의 모습, 그 안에 스며드는 음영을 조화롭게 배치시킨다.



'브루클린의 방' 도 그렇지만 '아침 태양' 도 가만히 넋 놓고 바라보게 되는 이유는 그녀들에게 현재의 '나'를 반영시키고 말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브루클린으로 예상되는 방은 다소 높은 층으로 예상된다. 창 밖으로 건물들의 옥상이 보이기에. 맑은 하늘 한낮의 오후, 햇빛을 쬐며 그녀는 원목 의자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라 약간 고개를 밑으로 깔고 있는 듯한 포즈의 여자는 평일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옆 테이블 위에 놓인 화병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할 정도로 깔끔하게 세워져 있고 집안도 말끔히 정돈되어진 듯한 분위기의 방. 때로 숨 막히는 단정함이 그녀를 노곤하게 만드는 건 아닐지. 그러나 이미 단정하고 깔끔함이 습관이 된 그녀로서는 그걸 흐트러지게 할 순 없는 노릇일지 모른다. 흐트러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연습 없이는 절대 흐트러질 수 없는 터일 테니까...


다운로드.jfif @Edward hopper, Morning Sun, 1952, Columbus Museum of Art


여기 민소매의 연분홍색 슬립을 입은 여성이 있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가지런히 다리를 모으고 창 밖을 바라보는 중이다. 그런데 어딘지 창 밖의 무언가를 직시한다기보다는 생각에 잠겨있는 듯하다. 그런 그녀를 둘러싼 방의 공간도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게 느껴진다. 정돈된 침대 시트의 단조로움과 그림 하나 걸려있지 않은 휑한 벽면, 그리고 침대 위로 확실하게 쏟아지는 빛 그리고 동시에 반사되는 짙은 그림자의 전경. 음영의 조화가 어딘지 모르게 그녀와 잘 어울리지만 동시에 인물이 느끼는 무언의 고독 혹은 고립감을 확실하게 강조하는 것만 같다. 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란 원래 이렇게 고독하다는 걸 너무나도 자명하게 알리려는 것처럼.



호퍼가 사실주의 화가라는 점에서 그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건 바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마냥 추상으로 나아가지 않는 그의 작품에서 묘한 위로를 얻기 때문이었다. Morning Sun의 방과 비슷한 방의 느낌을 방불케 하는 그의 1963년 작인 'Sun in an Empty Room' 도 마찬가지. 너무나도 단조로운, 그야말로 그 어떤 사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집주인의 철학(?) 이 반영된 것처럼 공간은 말끔히 치워져 있다. 마치 먼지 하나 허하지 않겠다는 듯이 다만 오로지 자연적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 만으로 가득 메워진 방 안을 통해 조금은 자유롭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집 안을 차지하고자 했던 건 인위적인 사물이 아니라 자연적인 빛. 그리고 그림자. 그 두 가지만 허락함으로 인해 비로소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고자 했을 공간의 주인, 어쩌면 호퍼를 비롯한 그림을 바라보는, 가끔의 해방을 꿈꾸는 인간, 우리의 마음이 반영되었을지도.



다운로드 (1).jfif @Edward Hopper, Sun in an Empty Room, 1963, Whitney Museum of Art



'케이프 코드의 아침' 은 오전부터 무언가를 기다리는, 그것도 꽤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 같은, 혹은 기다림의 대상 혹은 목적은 없지만 그저 내부에서 외부라는 공간을 향한 어떤 갈망을 지닌 인물이 보인다. 창 안에서 창 밖으로 그녀의 상반신은 이미 적극적이다. 나도 모르게 문득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걸 정도로.


"당신이 원하는 그 '빛'을 따라가요. 그리하여 당신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서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기를."


cape-cod-morning.jpg @Edward Hopper, Cape Cod Morning, 1950,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빛과 그림자, 그 두 가지의 양가적 인생의 굴곡과 그로 인한 무수히 파생되는 감정들을 짊어지면서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주어진 삶을. 우리에게 남겨진 앞으로의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을. 그리고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와 연결된 이들을. 사랑하지 않은, 상처로만 점철된 기억을 한가득 안겨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리하여 기다리는 것일지 모른다. 마음의 그림자가 너무 짙을 때. 그야말로 '울분' 이 압도적일 때. 감정이 하락장으로만 치달을 때. 그런 자신에게 기운을 내게 만들어 주는 어떤 빛을. 마치 달콤한 가나슈 케이크가 단숨에 한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마약 같은 묘한 중독성 강한 기쁨을 만끽하게 만드는 것처럼. 반대로 빛이 너무 많아서 붕붕 하늘을 날아다닐 것만 같을지라도 우리는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럴 땐 필립 로스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처럼 이런 정신이 뒷받침되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너는 그러지 마, 너는 네 감정보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해. 너한테 이런 요구를 하는 건 내가 아니야. 인생이 요구하는 거야. 안 그러면 네 감정에 쓸려가 버릴 거야. 바다로 쓸려나가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을 거야. 감정은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감정은 가장 무시무시한 속임수를 쓸 수 있거든.


- 필립 로스, 울분, p. 184 -



설날이 다가온다. 양가 선물을 준비하며 특히 시댁 식구들의 소박한 선물세트들을 미리 주문하고 안부 전화를 하며 아이들 어린이집에 보낼 에그타르트 레시피를 찾고 건조기에서 다 된 세탁물들을 꺼내 차곡차곡 개서 옷장의 제자리들에 놓는다. 하하호호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지지하는 화기애애한 명절의 시간은 언젠가부터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민족의 대 명절이자 누군가들에게는 숙제와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새로운 한 달.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가버릴테고 다시 더욱 24시간이 분주한 일하는 엄마로 살아갈 각오를 할테다. 스스로 자청했으나 그럼에도 가끔 숨이 턱 하고 막히는 일상을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갑자기 조금은 막막해지고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럴 때. 전혀 기댈 곳 없이 혼자의 고민이 깊어질 때. 빛 보다 그림자 안에만 갇혀있는 것 같을 때.



다가오는 감정에 지고 말 때. 빛과 그림자 속에서 자꾸만 지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괜히 입술을 깨물게 되는 날에는 더더욱. 호퍼의 그림들 속 그녀들을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넌지시 말을 걸게 되는 것이다. 어딘가를 굳이 향하지 않더라도, 삶의 방향이 때로는 자신이 아닌 좌표를 향해 나아갈지언정. 일단 나아가 보는 것으로. 그림자와 빛은 항상 동시에 다가오기에. 다만 시간 차가 있을 뿐. 각자 저마다 누려야 할 몫의 빛과 그림자는 사실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를 테니까. 남들에게는 비록 보이지 않겠지만.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해방과 억압, 자유와 책임. 그것들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처럼 우리 삶에 드리우는 너무나 자명한 것들. 그리하여 너무 미워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그것들의 존재를 존중하며 인정했을 때. 비로소 조금은 더 괜찮은 어른이 되어간다고 믿는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 세운 어떤 신념을 믿고 있는 중이다..





#Sourece : Edward hopper

https://www.wikiart.org/en/edward-hopper

https://americanart.si.edu/artist/edward-hopper-2297




덧) 확실한 빛과 그림자. 그 중심의 큰 위로는 이처럼 어렵지 않았음을...


KakaoTalk_20220120_190955425.jpg 귀엽고 귀한 순간을 기념하고 싶었던, 빛과 그림자 중간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