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11주년 결혼기념일이었고 동시에 아이들의 운동회였다. 건강 상 경기에 참석하지 않는 ('못했다'고 믿지만) 아빠 대신 엄마는 적극 참석하기로 각오한 날. 계주 선수가 된 첫째 아이가 끝까지 달리는 모습과 두 아이 모두 더운 날씨에도 적극적으로 던지고 구르며 '우리 팀이 이겼어?'를 물어보는 자세를 지켜보면서. 나름의 승리 투지를 발휘하려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과, 내내 뒤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미안함 대신 땡볕에도 계속 사진기사가 되었던 아빠의 모습, 무엇보다 총성이 울리자마자 흰 선 뒤의 발을 떼며 트랙 위를 신나게 달리던 나의 짧은 순간. 빠르게 뛰는 심박수 너머 무언의 열정. 그것들을 느끼며 나는 바랐다. 우리 네 사람의 심장이 세차게 뛰던 이 시절이 오래 기억되기를.
이벤트 시간, 운이 좋아 당일의 기념일 가족으로 뽑힌 우리 부부는 사회자의 부름에 맞춰 모두의 앞에 섰다. 그리곤 놀라운 풍경이 속속 연출되기 시작했다. 11년 전 프러포즈 때도 볼 수 없었던 그이의 낯선 고백이라니. 물론 마지못해 시켜서 한 행위들이었음에도. 무릎이 꿇어진 상태에서의 '고맙다'는 그의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남편의 성향 상 쉽지 않은 시간이었음을 내심 짐작했기에 얄궂은 사회자가 짓궂다 생각되면서도 역설적으로 고마웠었다. 설마 했던 것들엔 모두 이유가 있기 마련인 걸까. 급기야 배경음악이 갑자기 묘하게 바뀌었고 나름의 스킨십을 유도하려는 사회자의 연속되는 요청에 부응해 그이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누가 봐도 가벼운 포옹과 함께 볼에 입맞춤을 하려는 제스처가 눈에 훤히 보이던 찰나.
나는 선수를 쳤다. 입맞춤을 키스로 전환시켜버리고 만 것. 두 발을 먼저 앞으로 다가가 양손으로 그의 두 뺨을 잡은 채로. 저돌적인 찰나의 그 장면은 전체관람가에서 12세 아니 15세 딱지가 갑자기 붙은 듯 지켜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가장 놀라서 뒤로 잽싸게 물러난 당사자는 물론 그이였지만. 뭐 어쩔 텐가. 당신 아내가 충분히 키르케 혹은 세이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이는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는 걸 나름 상기시켜주고자 했음은 나만 아는 사실일 테고. 어쨌든 결혼기념일이니까.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이렇듯 '기억'이라는 걸 알까 싶다. 물론 몰라도 괜찮겠지 싶었던 건 어쩌면 살면서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가 없어야 큰 실망도 없고 그 덕에 뜻밖의 고마움도 느낄 수 있는 게 인생의 모순적인 부분들이라는 걸 정말이지 알 것만 같았기에.
@Marcel Rieder, waiting
프랑스 화가 마르셀 리더의 작품이나 그의 생애와 관련된 서사들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무언가 심적으로 굉장히 안락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그림 전체가 선언하는 일종의 분위기 때문이겠다. 조용하고 적막한 어둠 속 은은하게 비치는 조명 효과는 그의 작품들 속에서 속속 볼 수 있는 것들인데 어두운 배경을 유일하게 비추는 빛. 어쩌면 그 단일한 빛이 주는 무언의 위로가 나로 인해 어떤 결연한 의지나 조용한 열정을 상상하게 만들어서 그의 그림을 단숨에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잘 차려진 식탁이 보인다. 이미 식사가 다 끝난 늦은 저녁으로 추정되는 시간을 등지고 한 여성이 조용히 커튼이 내려진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 창문 밖을 보는 중인지 아니면 그저 생각에 잠겼는지, 식탁 위에 켜진 조명 덕에 그나마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식사는 즐거웠을까. 아니면 아예 하지 못했을까. 식탁 위에 놓인 화병 속 풍성하게 담긴 꽃은 당당하면서도 어딘지 외로워 보인다. 그 꽃은 선물 받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녀 스스로 준비한 것이었을까. 식사에 초대한 누군가를 기다렸지만 결국 오지 않은 누군가로 인해 이미 한참 지나가버렸음에도 오지 않은 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림 제목인 'waiting'인 것을 상상해보자면. 기다렸으나 끝내 혼자로 남겨졌을 시간이었다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깨진 약속은 은은한 분노와 함께 서운함과 아쉬움을 남기는 법인데 그럼에도 조용히 커튼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은 담대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통과하려 노력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원래 뒤틀리고 어긋나는 인생의 장면들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건 결국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몫일 테니까.
@Marcel Rieder, The Dinner, 1900
살면서 자연스럽지만 그 자연스러운 변화들이 못내 분할 때가 있다. 여전히 가끔 그러하다. 와인을 따라주고 과일을 선뜻 깎아줬던 결혼기념일의 당신은 평소와 다른 좀 더 친근하고 다정한 선의와 호의를 보여 주었지만 그것이 사실 일상 속에서 자주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물론 귀하고 감사했지만. 그럼에도 묘하게 분했던 건 왜였을까. 당신과 나의 심장은 어느새 천천히 느슨하고 흐려진 채 대신 강한 결속감, 안정감, 친밀함, 유대감 등으로 점철된 마음으로 남겨져 기능적 책무적으로 상당히 우수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우리만이 더욱 선명히 보여서. 어쩌면 나는 그래서 그에게 키스를 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돌려놓고 싶어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그렇게 그리웠던 나와 그 시절의 우리를. 아주 잠깐이라도.
여기 'waiting'과 비슷한 'The dinner' 나 다른 작품들만 보아도 마르셀 리더는 역시 조명이나 공간의 빛을 중심으로 어두운 배경 속에 존재하는 인물과 풍경에 나름의 의미를 둔 것 같아 보인다. 가구라든지 사물이라든지 배경 속 물건들은 꽤 섬세하게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들 마냥 유일하게 밝은 조명 하나에 의지하여 주변의 적막함 속에서 겨우 사물들과 인물을 유추해야 하는 나름의 답답한 즐거움을 선사하겠다. 앞치마를 두른 여인은 문을 열어둔 채 빛이 비치는 식탁을 넌지시 바라보는 중이다. 시선은 테이블을 향하지만 몸은 문을 열어둔 바깥을 향하는 것만 같은데, 그녀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을까. 오지 않는 누군가, 아니면 너무 늦어버린 누군가, 아니면 아무도 오지 않기에 그 혼자의 시간을 조용히 견디면서도 나름 즐기려 애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Marcel Rieder, A vigil by the sea
멋진 야외 풍경을 배경으로 테이블 위에는 잘 차려진 티 타임이 연출되어 있는 저무는 밤, 역시나 조명 하나에 의지해 바다와 풍경을 지켜보는 두 인물이 'A vigil by the sea'에서 보인다. 그런데 좀처럼 어두워서 표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없는 채로 그저 상상에 의지할 뿐이겠다. 친구 아니면 자매 아니면 앉아있는 여성과 서 있는 여성이 주종관계든 무엇이든 두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건 무언의 기다림 혹은 조용한 회상의 시간으로 느껴진다. 원래 좋은 시간에는 정말 좋았던 과거를 더더욱 상기하게 되고 마니까. 나로서는 아주 맛있는 케이크와 밀크티를 마시면 어느새 얼어붙은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려, 그리웠던 과거를 반추하고 마는 나를 종종 발견하고 말기에.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에 기대자면 '사랑은 여자들에게 많은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함정일 수 있다' 고 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실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남녀 불문 사랑이란 결국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견디게도 만드는, 인생 최고의 선물일 수 있음을. 물론 양육을 전담하는 기혼녀의 시선에서 다각도로 생각하자면 그녀 말처럼 누군가를 향하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반대로 자신이 원치 않은 많은 것들을 어쩔 도리 없이 피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게 만드는 최적화된 함정과도 같은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확실히 부정하기 힘들지만. 그이를 선택한 내 선택에, 다둥이를 낳고 기르게 되어버린 다소 무자비하고도 축복스러운 인생의 흐름들 앞에서. 사실 후회라는 게 전연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일 테지만. 그저 매 순간의 선택에 책임과 최선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 두 사람이 여전히 '함께 있다'는 사실이 결국 중요하다는 것. 나는 요즘 그 마음을 자주 상기하려 애쓴다.
Songeuse devant la cheminée
부쩍 아픔을 호소하는 그이의 뒤척이는 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달리 없어서 다만 물심양면 그이와 아이들의 안위를 적극적으로 챙기면서 조용히 슬퍼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감춘 채로. 처음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서로에 대한 긍정적인 요소들이 어느새 돌연 부정적으로 변하거나 두 사람의 진심은 때때로 어긋나 버려 우리의 마음은 각자 서서히 훼손되어 버릴지언정. 더 이상 흥분되지 못하고 마는 관계는 서로를 은은하게 위태롭게 만든다는 걸 느끼더라도. 이것을 기억하면 되는 것이겠다.
그래도 우리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래도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를 놓지 않을 것임을.
다만 중요한 것은 ‘함께 있다’는 사실. 함께 하지 못했을 때의 슬픔을 떠올리면 현재 곁에 함께 하고 있다는 현존 그 자체에 새삼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겠다. 또한 그것이 바로 진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몸 어딘가 불편해서 뒤척이다 잠든 당신을 지켜보고, 곁의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준 후, 새벽에 조용히 거실로 나와 혼자 향초를 켜고 멍하니 불빛을 바라보며. 혼자 있는 공간에서 나는 나와 만난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그런 당신과 요즘의 우리들을 지키고 더 사랑하려 애쓰는 나를. 그렇게 우리는 사랑으로 곁에 존재하고 있음을.
11주년의 추억- 달리기에 진심이었던 세 사람 그리고 그걸 내내 지켜본 한 사람
애쓰는 당신을 알고
우리는 사랑으로 이 시절을 지나는 중이었음을, 오래 기억할 것